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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언대] 영화 판도라가 현실이 되지 않으려면
양이원영 환경운동연합 탈핵에너지팀 처장
[439호] 2017년 01월 09일 (월) 07:00:10 양이원영 yangwy@kfem.or.kr
▲ 양이원영 환경운동연합 처장

[이투뉴스 발언대Ⅰ양이원영 ] 지진이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작년 9월 12일 저녁 양산단층 일대에서 발생한 규모 5.1과 5.8지진 이후 새해 들어서도 이달 6일 새벽 5시반경에 연이어서 규모 3.3과 2.2의 지진이 또 발생했다. 무려 562번째 지진이다. 이례적인 이런 상황은 현재 발생하는 지진이 단순히 9월 경주지진의 여진으로만 그칠 것인지 의문을 갖게 한다. 현재 발생하는 지진들이 여진이 아니라 더 큰 지진의 전진일 수 있다는 거다.

지진발생 후 이견이 있긴 했지만 지금은 경주지진 진앙지가 양산단층이라는데에 학계의 의견은 일치하고 있다. 양산단층은 크게 5번의 활동시기가 있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양산단층은 이대로 활동을 멈출 것인가 6번째의 본격적인 활동시기로 들어간 것인가. 양산단층 남쪽으로는 13기의 원전이 가동 중이고 북쪽으로는 6기의 원전이 가동 중이다. 가장 보수적으로 판단해야 할 상황이다.

영화 판도라에서 원전이 폭발하는 등 사고 장면을 두고 원자력연구원과 한국수력원자력는 현실에서 일어나지 않을 일이라고 일축하는 자료를 만들어서 배포하거나 기자들과 간담회를 했다는 소식이다. 영화에는 다양한 영화적 요소를 위한 과장도 필요한 터라 과학적으로 따지는 것이 궁색해보이기는 하지만 최근 국내 원전 현황을 보면 정말 현실에서 일어나지 않는 일이 될 것인지 확신할 수가 없다. 특히, 월성원전 1호기 수명연장 무효소송 재판 과정에서 확인된 여러 사실들은 영화가 현실이 되지 않기 위해 최소한 월성원전은 가동을 멈춰야 하는 것이 아닌지 반문하게 한다.

월성원전 1, 2, 3, 4호기는 경주지진이 발생한 양산단층에서 20여킬로미터 지점에 있어서 인근부지라고 할 수 있다. 국내 다른 원전들과 달리 월성원전은 캐나다에서 수입한 캔두형, 중수로 원전이다. 천연우라늄을 핵연료로 쓰고 냉각재를 중수(무거운 물)로 쓰다 보니 매일 사용후핵연료를 교체하기 위해 격납건물을 열어야 하고 발생하는 사용후핵연료도 경수로 원전 보다 많은데 핵연료가 380개의 압력관에 나뉘어 들어가 있다보니 지진에 취약하다. 최근에 확인된 캔두6형(월성원전과 동일한 설계) 설계 문서를 보니 설계기준 지진이 발생했을 때 핵연료가 들어있는 원자로 압력관이 견디는 힘은 겨우 1%의 여유도를 가질 뿐이었다. 월성원전의 설계기준 지진은 0.2g(g. 중력가속도)로 지진규모 6.5정도다. 6.5이상의 지진이 발생하면 월성원전 원자로 압력관은 파괴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더구나 2015년 2월 수명연장 허가를 받은 월성원전 1호기는 이번 재판을 통해서 1975년 기술기준을 상향조정하지 않고 그대로 적용하고 있고 원전에서는 헌법과 같은 최상위규정인 안전설계기준 역시 전혀 갱신하지 않아 30여년전 것을 그대로 적용하고 있음을 확인했다. 그 결과, 주요 설비에 대한 내환경검증과 내지진검증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게 된 것이다. 심지어는 내환경검증 대상기기 선정 기준이 중수로가 아닌 경수로의 기준으로 되어 있어서 경수로와 중수로의 차이에 해당되는 기기는 내환경검증이 되지 않은 상태다. 게다가 발생가능한 사고 시나리오와 사고 시 작동하는 안전설비 작동 등을 종합적으로 평가하는 안전해석 코드 역시 최신 코드를 적용하지 않았다.

원자력안전법 시행령 제38조 제2항에 따르면 수명연장하여 가동하려는 원전에 대해서는 ‘주기적 안전성평가의 경우 계통ㆍ구조물ㆍ기기에 대하여 최신 운전경험 및 연구결과 등을 반영’한 기술기준을 활용하여 평가해야 하지만 전혀 지켜지지 못한 것이다. 내환경검증이란 원전에서 일어날법한 사고인 설계시준사고에서 원전의 환경, 즉 압력과 온도, 증기, 방사선량에 따라 관련 계통의 안전설비가 원전사고 시에 제대로 작동하는지를 검증하는 것이고 내지진검증이란 설계기준지진 하에서 관련 계통의 안전설비가 제대로 작동하는지를 검증하는 것이다.

그런데 월성원전 1호기는 이 기준들을 상향조정하지 않은 결과, 검증을 해야 할 다수의 기기들이 검증에서 제외되었다. 내진설계 중의 하나인 배관지지대 요건이 상향되는 것도 제외되었고 지진 발생 시 뒤따라오는 화재에 대한 내환경검증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현재 상태에서 월성원전 1호기는 원전 가동 시에 발생할 수 있는 여러 사고에 대해서 제대로 안전설비가 작동해서 원자로 냉각이 제대로 이루어질지 확인할 수가 없다. 지진이 발생했을 때 배관 등이 안전하게 버텨서 비상급수냉각계통이 제대로 작동할 지도 알 수 없다.

원자력안전위원회는 경주지진에도 불구하고 월성원전 재가동 결정을 하면서 원자로 압력관의 내진여유도가 부족해서 지진 발생 시 압력관이 파손되어도 안전하게 정지하고 냉각만 되면 문제가 없다는 식의 보고서를 채택했다. 하지만 최소한 월성원전 1호기만큼은 설계기준지진 발생에서조차 압력관이 파손되었을 때 안전하게 정지된 후 제대로 냉각될 수 있을지 현재로서는 알 수 없는 상황인 것이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원자력안전위원회는 후속조치를 통해 월성 1호기의 안전성을 향상시켰다고 주장한다. 증기압 폭발을 예방하기 위해 방사성증기를 외부로 방출할 때 방사성물질을 여과하는 여과배기시설을 설치하고 폭발사고의 원인이 되는 수소를 제거하는 수소제거기를 설치하고 전기 공급이 중단되었을 경우를 대비해 이동형 발전차량을 준비시켰다는 것이다.

그런데 여과배기설비를 언제 작동할지 결정하지도 못한 상태라 성급히 작동시켰을 경우에 채 여과되지 못한 방사성물질이 주변으로 유출되거나 너무 늦게 작동하게 되면 증기압으로 격납건물이 파손될 수 있다. 수소제거기는 제거과정에서 발생하는 열 때문에 갑자기 높은 농도의 수소가 높은 압력으로 새어나왔을 경우 작동 즉시 화재가 발생해서 오히려 폭발 촉매기능을 할 수 있다는 점이 스트레스 테스트 민간검증 과정에서 지적되었다. 격납건물 내부를 수천개의 좁은 공간으로 쪼개어 사고 시 원자로에서 방출되는 수소농도를 시뮬레이션하는 유럽과 달리 우리는 20평 공간 전체가 단일한 수소농도일거라고 전제한 시뮬레이션을 하는 바람에 현실을 전혀 반영하지 못했던 것이다. 이동형 발전차량은 높이가 수십센티밖에 되지 않아 지진이 발생했을 때 도로가 중간에 무너져 내리거나 나무라도 쓰러져 있으면 이동할 수 없어 무용지물인 발전차량이 되어 버렸다.

   
원전 사고를 소재로 한 영화 '판도라' 이미지 컷

우리나라에서 신규원전이라고 안전성을 보장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세계적으로 제 3세대 원전은 후쿠시마 원전사고와 같은 중대사고 상황을 고려해서 노심용융물을 가두어 식히는 설비를 추가하고 노심용융물이 바닥으로 떨어지지 않게 하기 위해서 '코어캐쳐'라는 것을 추가했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신규원전인 제3세대 원전(APR1400, 신고리 3,4,5,6)은 코어캐쳐도 없고 냉각 설비도 노심용융물을 충분히 식힐 수 있을 정도로는 부족하다 유럽에 수출하는 EU-APR1400에는 코어캐쳐를 설치하는 설계 변경을 했다. 물론, 제 3세대 원전이 아닌 기존 가동 중인 24개 원전에는 이런 개념은 아예 없다. 영화 판도라는 오히려 극한 원전 사고 상황을 보여주지 못했다.

규모 5.8의 경주지진에서도 도로가 파손된 곳이 곳곳에서 확인되는데 영화 속에서는 지진 규모 6.1에서 모든 도로는 멀쩡했다. 지진으로 원전에 문제가 생길 정도라면 대피할 수 있는 멀쩡한 도로를 찾기 어려울 것이다. 원자로 1차 냉각재로 추정되는 방사능 오염수를 뒤집어 쓴 노동자가 거동이 가능할 정도라는 것도 현실적이지 않다 고농도 방사능오염수를 뒤집어 쓴 사람은 형체를 알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큰 화상을 입을 것이다. 영화에서 원자로는 내부의 핵연료가 녹은 정도인데 후쿠시마 원전사고처럼 녹아내린 핵연료가 원자로를 뚫고 떨어지면서 냉각수를 만나 방사성증기가 대량으로 방출되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는다.

부지에서 측정되는 방사선량도 마이크로 시버트 단위라면 후쿠시마 원전사고에서만큼 높은 양은 아니다. 후쿠시마와 체르노빌 원전사고 당시 부지 방사선량 단위는 이보다 천배가량이 높은 밀리시버트 단위였다. 더구나 사고를 수습하기 위해 노동자나 구조대, 소방관이 대피할 수 있는 부지 내 시설이 없이 부지 현장에서 계속 피폭을 받고 있는 것도 비현실적이다. 원전 폭발사고 정도라면 사고수습 작업은 한 두시간 단위로 교대해야 할 정도로 방사능 피폭량이 엄청나다. 방사성물질을 정화하는 시설이 있는 대피장소에서 현장으로 교대를 해야 지속적으로 작업이 가능하다. 후쿠시마 원전사고 당시 후쿠시마 원전 부지에는 이런 대피 시설이 있었지만 우리나라는 어떤 원전부지에도 이런 시설이 없다. 사고수습작업을 하는 이들조차도 10킬로미터 밖으로 대피해야 하는 상황인 것이다.

더 극한 경우 중의 하나는 한국형원전의 경우에 적용되는 시나리오로 격납건물 우회 방사성방출 시나리오다. 영화에서처럼 격납건물이 파손되지 않고 배관 파손으로 인한 우회 경로로 방사성물질이 다량 방출되는 경우인데 이때 인명 피해는 더 심각해질 수 있다. 원전사고를 인지하고 격납건물 손상까지 대여섯시간 이상이 걸리는 기존 사고의 경우, 후쿠시마 원전사고에서처럼 주민들이 피난 가는 시간을 벌 수 있다. 그런데 한국형원전은 증기발생기 세관이 여러개 파손되는 경우에는 주증기 안전밸브와 대기방출밸브가 고장 나면서 한시간 안에 다량의 방사성물질이 방출될 것이고 주민들은 피난갈 틈도 없이 과피폭될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얼마전부터 이런 사고 시나리오를 삭제해 버려 대비도 못하고 있다.

영화 판도라가 제대로 보여준 것 중의 하나는 대피시나리오 없이 수많은 군중들이 꽉 막힌 차도로 걸어서 피난가는 것이다. 원전사고가 발생했을 때 실시간 바람방향, 지형지물을 고려한 방사성물질 확산 시뮬레이션을 미리 해 놓아야 어느 방향에서는 얼마만큼의 방사성물질이 어느 시간대에 방출되었을 때 어디까지가 대피해야하는 지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원전사고가 났을 때 어떤 경로로 어떤 수단으로 어떤 방향으로 대피를 해야 하는지 시뮬레이션을 통한 대피 계획이 이미 나와 있어야 했지만 우리나라에는 없다. 그러니 시민들이 갈팡질팡할 수밖에 없다. 사실, 수백만명이 방사능에 피폭되지 않으면서 동시에 피난가는 대피계획을 세우는 것이 가능할 것 같아 보이지 않는다. 대피 시뮬레이션 작업을 안한 것일까 못한 것일까.

요즘은 과거가 달리 원전사고가 났을 때 사고 사실을 실시간으로 공지하게 되어 있어서 은폐하기가 쉽지 않지만 최근에 한울원전 5호기 1차 냉각재 다량 유출사고를 수위계측기 정비사고로, 단순 누설로 축소하면서 원전사고고장 정보공개 사이트에는 올리지 않은 것을 보면 감당하지 못할 큰 사고에 대해서 영화에서처럼 은폐하지 않을지 장담할 수 없다. 이 영화가 사실적인 것 중의 하나는 원전 안전을 비정규직 하청노동자들이 담당한다는 것이다. 방사능으로 오염된 관리구역, 즉 격납건물 내에서의 정비, 사고 처리, 제염 작업은 한수원 정규직원들의 몫이 아니다. 한전 KPS 노동자들이거나 그들의 하청을 받은 용역 노동자들이다. 이들은 바지사장만 2년마다 바꿔가면 현장을 지켜오고 있는데 일부는 정규직 지위 확인을 요구했다는 이유로 하루아침에 해고되어 현재 소송 중이다.

영화 판도라는 현실을 반영하기도 했고 그렇지 않기도 했다. 원전 안전이 최우선이 되지 않고 있는 현실, 비정규직이 지켜오고 있는 현장, 언제 더 큰 지진이 올지 모르는 현실, 사고에 대비한 안전 설비가 부족한 현실, 대피시뮬레이션과 시나리오가 없는 현실 등이 너무나 비슷하다. 하지만 우리에게 아직 영화 판도라에서처럼 큰 사고가 다행히 일어나지 않았다. 원전사고가 여전히 비현실적이기 위해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너무나 분명하다. 그리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을 수 있다.

양이원영 환경운동연합 탈핵에너지팀 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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