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탄소 시대로의 전환 '가시밭길'

◆분산에너지시대 서막 열었다
우리나라가 집중형 에너지공급시스템에서 분산형 시대로 가는 새로운 문이 열렸다. 특히 지역별 전기요금 차등제를 도입근거도 마련, 향후 전력자립률에 따른 요금차등 적용 등 상당한 변화를 이끌 것으로 전망된다.

정부는 지난 6월 분산에너지 활성화 특별법 제정안을 공포했다. 분산에너지법은 대규모 집중형 에너지공급시스템으로는 더 이상 지속가능성이 없다는 판단에 따라 국회에서 발의됐다. 해당 지역에서 에너지를 생산해 소비하는 시스템을 만들겠다는 목표다.

이에 따라 법이 시행되는 내년 6월부터는 일정규모 이상의 개발사업은 물론 대형 신축건물의 경우 분산에너지 공급시설을 반드시 설치해야 한다. 또 전력계통영향평가를 비롯해 분산에너지 특화지역 지정, 한국형 통합발전소(VPP)가 새롭게 도입됐다.

다만 분산에너지 편익을 산정은 하되 연구개발 및 실증 비용, 사업화 초기비용만 융자·지원할 수 있도록 제한을 둬 한계로 지적됐다. 여기에 관심을 받던 분산에너지 특화지역 등에 대한 사업모델 역시 사업자가 적극 뛰어들만한 유인책이나 인센티브가 없다는 분석도 나온다.

신고리 원자력발전소 5,6호기 전경.
신고리 원자력발전소 5,6호기 전경.

◆신규원전 밀어붙이기 속 가스발전 어부지리
윤석열 정부는 제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2024~2038)을 통해 신규원전을 건설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2036년까지 수명이 만료되는 원전 12기 10.5GW를 연장운전하고 신한울 3,4호기 건설을 재개하는데 이어 문재인 정부가 백지화한 원전건설 계획까지 되살려 비중을 높이겠다는 의도다. 이를 위해 정부는 원자력에 우호적인 인사를 포함시켜 수립위원회를 꾸리고, 장기 수요전망을 높여 신규원전 건설의 명분을 만드는데 안간힘을 쓰고 있다.

하지만 전 정부에서 공론화로 건설재개가 결정된 새울원전 3,4호기(신고리 5,6호기)조차 765kV 송전선로 고장 시 발생할 수 있는 광역정전 대책을 세우지 않아 준공이후 정상가동이 어려울 것이란 관측이 나오는 등 다양한 난관에 봉착한 상태다. 탈탄소정책으로 조기 폐쇄되는 석탄화력의 공백은 대규모 신규 가스발전소들이 어부지리격으로 메우고 있다.

정부는 제주에 신규 LNG복합 2기를 건설하고, 용인반도체 클러스터에 3GW규모 대형 복합화력을 건설하는 별도계획을 승인한 상태다. 2036년까지 예정된 발전5사 석탄대체 가스발전소는 28기 14.1GW이다.

◆정책·제도 큰 틀 바뀌는 LNG시장 
민간 LNG직수입자에게도 비축의무를 부여하는 대신 제3자에 판매를 허용하는 자원안보특별법이 국회 상임위 전체회의를 통과하며 본회의를 남겨놓았다. 하지만 LNG직수입자의 제3자 판매허용이 사실상 천연가스 시장 민영화의 첫발로, 에너지 공공성을 뒤흔든다며 민노총이 투쟁을 선언해 향후 진통이 적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와 함께 정부 차원에서 민간LNG직수입자들이 한국가스공사의 배관망을 안정적으로 이용할 수 있도록 배관망 이용에 대한 사항 전반을 중립적으로 관장하는 ‘배관시설이용심의위원회’가 신설·운용된다. 그러나 천연가스 도입·수급·요금 등 천연가스산업의 독립적·중립적인 총괄기구인 ‘가스위원회’ 설치 법안은 이번 21대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해 사실상 좌초될 것으로 전망된다. 

포스코인터내셔널 광양 LNG터미널 전경.
포스코인터내셔널 광양 LNG터미널 전경.

◆붕괴 우려되는 재생에너지산업 
태양광을 비롯한 재생에너지산업에 대한 현 정부 거리두기가 점차 가시화되고 있다. 태양광 및 풍력사업에 대한 감사가 2년째 이어지고 있는 것은 물론 시장도 확연하게 축소되고 있기 때문이다. 표면적으로는 원자력-재생에너지 균형발전을 외치고 있지만, 현실은 정반대다. 

특히 지난해 상반기 태양광 고정가격입찰 물량을 1GW로 공고했으나, 3분의 1에 못 미치는 272MW만 선정됐다. 가격이 훨씬 높은 현물시장이 있는데 계약시장에 굳이 들어갈 필요가 없던 셈이다. 이후 정부는 신재생에너지 공급인증서(REC) 현물시장에 상한가를 설정하는 등 가격 낮추기에 나섰다. 

심지어 국가 REC를 매도해 현물시장에 대한 가격개입 의사를 분명히 했다. 재생에너지발전업계가 정부가 시장가격에 개입하는 것은 위헌 및 위법행위라고 반발했지만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러한 분위기가 계속되면서 재생에너지산업 전체가 갈수록 힘을 잃고 있다. 실제 태양광모듈 제조업체는 생산량을 줄이거나, 아예 공장 가동을 멈추는 사례도 늘고 있다.

◆유류세 인하, 올해만 4번째 연장
정부가 유류세 인하조치를 내년 2월까지 이어간다. 5월과 9월, 11월에 이은 네번째 연장이다. 최근 추경호 경제부총리는 기자간담회에서 “유류 수급상황이 여전히 불확실한 면이 많다”면서 현행 유류세 인하조치를 연장할 뜻을 밝혔다. 본래 정부는 올해 단계적으로 유류세 일부를 환원하려 했었다. 60조원에 이르는 역대급 ‘세수펑크’가 직접적인 이유다.

하지만 애꿎게도 그때마다 변수가 생기면서 정부 발목을 잡았다. 4월에는 OPEC+ 감산, 10월에는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으로 국제유가가 일시적으로 급등했다. 일각에서는 내년 4월 총선 때문에 환원 시기를 자꾸만 놓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국내 기름값이 안정세를 보이는 점이다. 지난 10월부터 휘발유·경유값 모두 10주 연속 내림세다. 

지난 10월에 열린 산업부의 석유시장 점검회의 모습.
지난 10월에 열린 산업부의 석유시장 점검회의 모습.

◆경직성 전원 과다, 송전선로는 태부족
에너지전환정책에 따라 재생에너지 설비용량이 28GW까지 증가하자 미리 충분히 준비하지 않았던 전력계통과 망운영에 일대 혼란이 빚어졌다. 봄철에는 LVRT(Low Voltage Ride Through) 기능을 갖추지 않은 태양광 인버터로 전력망에 경고등이 켜졌고, 급기야 산업통상자원부와 전력당국이 전력계통 태스크포스팀을 꾸려 계통안정성 확보 종합대책을 만들었다.

하지만 이는 서막에 불과했다. 전력수요는 연중 가장 적고 태양광 발전량은 가장 많은 계절이 되자 호남지역에서는 한빛원전이 연휴기간 감발운전에 들어갔다. 출력조절이 어려운 원전과 태양광이 한정된 전력망 용량을 놓고 다툼을 벌이다 연료비가 '0원'이자 수효가 많은 재생에너지가 우선권을 가져간 셈이다.  결국 가을철 특수경부하기간에 일부 원전은 정비일정을 앞당겨 조기 정지했다. 8~10차 송변전설비계획을 통해 확충한 송전선로는 765kV 5c-km, 345kV 153c-km에 불과하다.

◆비축사업으로 핵심광물 '중국 리스크' 최소화
미-중 갈등으로 자국 보호주의 양상이 거세지고 있는 가운데 정부가 핵심광물 공급망확보를 위해 비축사업을 확대한다. 과거 직접 해외로 나가 광산투자를 했던 전략과는 대비되는 부분이다. 광물을 쟁여 놓을 곳간도 추가로 짓기로 했다. 새만금에 2400억여원을 들여 핵심광물 비축기지를 구축한다. 기존 군산비축기지는 포화도 98%로 이미 꽉 찬 상태다.

이러한 비축사업을 통해 중국의존도를 현재 80%에서 50%로 낮춘다는 구상이다. 특히 올 하반기 국내 자원업계는 중국영향을 크게 받았다. 9월 중국정부는 갈륨?게르마늄을, 이달부터는 흑연 수출통제를 시작했다. 대부분을 중국서 들여오고 있어 바싹 긴장할 수밖에 없는 국내다. 최근에는 중국세관이 요소수출 통관을 돌연 보류하면서 요소수 품귀소동이 일었다. 이에 정부는 “요소수 재고 4개월치를 확보해 놓은 상황”이라고 밝혔다. 

한 수소충전소에서 수소버스에 충전하는 모습.
한 수소충전소에서 수소버스에 충전하는 모습.

◆여러 악재로 수소산업 활성화 주춤 
수소자동차를 비롯한 모빌리티 보급과 수소충전소 구축이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는 등 산업이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지자체 수소차 구매 지원사업 등을 통해 수소승용차 확대정책을 이어갔으나 충전인프라가 부족해 부쩍 힘이 달리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특히 충전소는 판매가격을 2022년 12월 기준 kg당 7000~8800원에서 지난해 12월 기준 7700~1만2100원(전국 평균 약 9720원)으로 올렸음에도 적자 운영이 이어지고 있다. 초기 목표대로라면 수소생산가격 감소를 달성해야 하나 러시아·우크라이나 사태 등 외부요인으로 국제 에너지가격이 오르면서 생산가격이 올랐다.

반면 지자체가 직접 혹은 산하기관을 통해 운영하는 경우 상대적으로 낮은 가격에 판매하고 있어 민간사업자도 쉽사리 가격을 올리지 못하고 있다. 적자가 이어지자 업계의 충전소 구축, 운영사업 참여 또한 줄어들고 있다. 전문가들은 운전자와 충전소 운영사업자 모두 만족할 수 있는 해법이 시급하다고 조언했다.

◆갈등, 철퇴, 훈풍 뒤섞인 LPG시장 
한국가스안전공사가 전담팀을 통해 LPG충전·판매사업자의 공급자의무를 확인·평가하는 LPG공급자 평가전담제를 도입해 시범사업에 들어갔다. 하지만 LPG판매사업자들이 사실상 또 다른 규제이며, 가스안전공사의 책임을 사업자에게 전가하려는 부당한 조치라고 맞서면서 격돌이 일었다.

올해 9월에는 판매단가 인상, 거래처 물량침탈 금지 등 담합에 나선 제주 LPG충전사업자들이 공정위로부터 25억원 규모의 과징금과 함께 담합을 주도한 2개 사업자가 검찰에 고발되는 철퇴를 맞기도 했다.

매년 수요가 줄어들던 수송용 LPG시장에는 오랜만에 훈풍이 불었다. ‘소상공인의 발’인 1톤 트럭 시장에 10여년간 산·학·연 기술개발을 통한 신형 LPG트럭이 출시되고, 출시 일주일 만에 계약물량이 3만대를 넘어서면서 기대감을 키웠다. 

◆확 뒤집힌 정부 4대강 정책
윤석열 정부가 이전 정부의 4대강 정책을 전면 수정했다. 4대강에 설치됐던 보를 대거 철거하려던 기존 정책을 뒤집어 보를 재정비함과 동시에 정상화를 꾀한다는 방침을 분명히 했다.

최초 감사원이 나서 기존의 4대강 보 철거·해체 결정이 불합리·불공정하겠다는 결과로 시작된 정책변화는 국가물관리기본계획 변경을 통해 최종 확정됐다. 이로써 철거예정이던 모든 보를 존치하는 것은 물론 준설을 통해 조만간 정상 가동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단순히 4대강 정책 뿐만 아니라 치수정책 전반도 변경된다. ‘자연성 회복’을 강조했던 이전 정책에서 벗어나 적극적인 치수·이수 정책으로 변화를 선언한 것이다. 실제 정부는 내년에 신규 댐 10개에 대한 기본구상 및 타당성 조사에 나서는 한편 퇴적토 준설에도 본격 착수하겠다고 밝혔다.

한화진 환경부 장관이 금강 세종보를 찾아 가동 정상화를 위한 보수작업을 둘러보고 있다.
한화진 환경부 장관이 금강 세종보를 찾아 가동 정상화를 위한 보수작업을 둘러보고 있다.

이투뉴스 특별취재팀 e2news@e2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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