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생원료 사용 의무화로 2025년 이후 원료난 심화 불가피
​​​​​​​시멘트업계 쏠림현상으로 이미 쟁탈전 심각…정부가 나서야

[이투뉴스] 코로나19 여파 등으로 플라스틱과 비닐 등 생활쓰레기가 쏟아지고 있다. 지금까지는 재활용과 함께 최대한 소각을 통해 에너지를 회수하고, 일부는 매립했다. 하지만 앞으로는 폐기물 직매립이 금지된다. 쓰레기는 늘어나지만 처리할 곳이 없어 지자체마다 소각장을 증설하느라 고심하고 있다.

하지만 최근 들어 폐기물 열분해가 각광받고 있다. 열분해는 물리적 재활용과는 달리 횟수에 제한이 없다. 폐플라스틱 혹은 폐비닐을 300∼800℃의 고온으로 가열해 다시 원유를 만든다. 희석 및 정제를 거쳐 휘발유·경유와 같은 연료는 물론 나프타 등 화학제품 원료로도 쓸 수 있다. 석유로 만든 플라스틱을 가열해 다시 석유(원유) 상태로 되돌리는 것이어서 ‘도시유전’으로도 불린다.

열분해유는 향후 플라스틱 순환경제의 총아로 떠오를 전망이다. 한동안 소각을 통한 에너지 회수(SRF, 폐기물 고형연료)가 대세였으나, 민원 등으로 더 이상 사업하기가 어려워지면서 새로운 해법으로 등장했다. 

기존 10∼30톤 규모의 소규모 설비가 대부분이던 열분해 시장도 격변하고 있다. SK와 LG, 한화 등 정유 및 석유화학사가 대거 뛰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재생원료 30%를 의무적으로 사용하는 2030년이 되면 현재보다 열분해 수요가 100배 가량 증가할 것이란 전망까지 나온다.

하지만 원료 확보가 여전히 문제라는 평가다. 우선 시멘트업종에서 석탄을 대체하는 연료로 많은 폐기물을 빨아들이고 있어 열분해에 필요한 원료확보조차 어렵다는 목소리가 크다. 여기에 폐플라스틱과 폐비닐류에 대한 별도의 회수시스템 마련을 비롯해 제대로 된 선별을 통해 적재적소로 공급하는 방안도 반드시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한국폐기물에너지산업협회 관계자들이 시흥시 선별장을 찾아 폐플라스틱 공급문제를 협의하고 있다.
한국폐기물에너지산업협회 관계자들이 시흥시 선별장을 찾아 폐플라스틱 공급문제를 협의하고 있다.

◆열분해는 선택이 아닌 필수
열분해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것은 단순 폐기물처리 때문만이 아니다. 여러 가지 측면에서 활용도가 크다. EU 등 선진국과 ESG 경영에 앞장서는 글로벌 기업을 중심으로 2025년을 전후로 재활용 플라스틱을 의무적으로 사용하도록 규제에 나서고 있기 때문이다. 컨설팅업체인 맥킨지가 폐플라스틱 재활용시장 규모를 2050년 600조원으로 전망한 이유다.

먼저 유럽연합은 페트병과 포장재에 재활용 소재를 30% 이상 반드시 쓰도록 이미 법제화했다. 2030년 기준 페트병은 30%, 음료용기 10%, 모든 플라스틱 포장재 역시 30%의 재생원료를 사용해야 한다. 미국에서도 캘리포니아 등 일부 주(州)를 중심으로 2030년까지 재생원료 50% 이상 사용을 의무화하는 방안이 논의되고 있다.

RE100(100% 재생에너지 사용 선언)과 마찬가지로 플라스틱 제로 사회를 만들기 위해 글로벌 기업들도 재생 플라스틱 의무사용에 앞장서는 분위기다. 물론 아직은 새 제품보다 재활용 플라스틱이 2배 넘게 비쌀 뿐더러 공급물량도 확보하기 쉽지 않다. 하지만 앞으로 갈수록 포장재를 비롯해 가전제품, 휴대폰, 자동차 등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확산될 게 유력하다.

우리나라 역시 플라스틱 열분해 산업 활성화를 위해 적극 나서고 있다. 환경부는 폐플라스틱 열분해 처리 비중을 2021년 기준 0.1%에서 2030년까지 10%로 높여 순환경제 및 탄소중립 실현을 선도한다는 계획이다. 지난해에는 열분해유를 나프타 및 경유 등 석유·화학 제품의 원료로 재활용할 수 있도록 폐기물관리법을 바꿨다. 이로써 이전 소각에 포함됐던 열분해설비가 재활용시설로 범주를 변경했다.

폐기물 매립시설 설치를 의무하도록 돼 있는 산업단지 내 매립시설 부지의 50% 내에서 열분해시설 입지를 허용하기 위해 폐기물시설촉진법도 개정한다. 더불어 석유·화학 기업이 폐플라스틱 열분해유를 석유제품 원료로 활용할 경우 온실가스 감축효과를 고려해 탄소배출권을 인정받을 수 있도록 관련 지침을 개정키로 했다.

이밖에 열분해 과정에서 생산된 합성가스(일산화탄소와 수소 혼합기체)를 원료로 메탄올, 암모니아 등을 생산하거나 수소를 개질·추출해 수소차 충전, 연료전지 발전에 활용할 수 있도록 이를 구체적으로 명시했다.

◆앞다툰 대기업 참여…원료확보 난망
열분해가 고부가가치 산업이자 반드시 들어갈 수밖에 없다는 인식이 늘면서 국내 기업들의 참여도 확대되고 있다. LG화학이 2024년, SK지오센트릭은 2025년 대규모 열분해 설비를 완공할 계획이다. 이밖에 효성, GS, 한화 등 정유 및 석유화학 분야 기업들 모두 공격적인 투자에 나섰거나 뛰어들 채비를 하고 있다.

분위기는 좋으나 열분해유 원료인 폐플라스틱과 폐비닐의 원활한 조달이 과제다. 재생원료 사용의무화가 본격 시행되면 수요가 급증할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일단 폐기물 발생량 자체는 증가추세에 있다. 하지만 최근 2∼3년 새 시멘트 소성로에서 석탄을 대체하는 연료로 폐기물 사용을 늘리면서 환경처리업계가 물량 확보에 어려움을 겪고 있을 정도다.

민달기 가천대 교수는 최근 열린 국회토론회에서 폐플라스틱 30% 이상을 원료로 재활용해야 하는 시대가 도래하면 결국 국내 폐기물 시장에서는 물량 싸움이 일어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재생원료 의무화가 본격 시작되는 2025년이 되면 연간 400만톤의 폐플라스틱이 필요하지만 현재 추세로는 100만톤 정도나 확보할 수 있는 상황”이라며 “시멘트 공장의 폐기물 대체연료 사용을 재활용으로 인정해 준 것이 실착”이라고 평가했다.

열분해업계는 이같은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지자체와의 협업을 본격 추진하고 있다. 소각장으로 가는 물량을 최대한 확보, 자원순환의 가치를 극대화하기 위해서다. 폐기물에너지산업협회는 지난 4월 시흥시 및 시흥도시공사와 열분해유 사업을 위한 폐플라스틱 자원화 협약을 체결했다. 협회는 시흥시 외에 다른 지자체와도 협력사업을 확대한다는 방침 아래 에너지회수효율 인증(열에너지 50% 이상) 컨설팅 등 활발한 접촉에 나서고 있다.

연속식 열분해설비 이미지.
연속식 열분해설비 이미지.

하지만 물량난에 시달리는 열분해 산업 활성화를 위해선 사업자에게만 이를 맡겨서는 안된다는 목소리가 많다. 가격을 내세워 블랙홀처럼 폐기물을 빨아들이는 시멘트업계를 방치해선 해법 찾기가 불가능하다는 이유에서다. 전문가들은 “자원순환 및 탄소중립 효과 극대화를 위해 환경부가 폐기물 배분방안은 물론 법·제도 역시 정비해야 한다”고 해법을 제시했다.

기술적인 측면에서도 더 많은 노력이 요구된다는 분석이다. 아직 일괄투입식(배치타입)이 대부분이어서 사고에 대한 우려가 가시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다행히 폐기물에너지산업협회를 중심으로 연속식 열분해 설비를 개발, 실증을 진행하고 있어 설비고도화 역시 점차 가시화될 전망이다.

[인터뷰] 박중랑 한국폐기물에너지산업협회 회장

“시장원리에 맡겨선 원료배분 해결 불가”

박죽랑 회장
박죽랑 회장

“폐플라스틱을 열분해하면 16개의 탄소+수소 결합체가 나온다. 나프타와 수소까지 고부가치 제품을 만들 수 있다. 문제는 해도 그만, 안해도 그만이 아니라는 것이다. 많은 나라가 재생원료 사용을 강제하고 있어 반드시 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국내에 RDF(고형연료, 지금은 SRF로 통일) 설비를 최초로 들여오는 등 환경 및 자원순환 분야에서만 40년 넘게 종사한 박중랑 한국폐기물에너지산업협회 회장은 열분해는 선택이 아닌 필수라고 강조했다. EU를 비롯해 많은 나라와 기업들이 2025년부터 재생원료 사용을 의무화하는 만큼 수출을 위해선 필수불가결한 업종이라는 의미다.

아울러 그는 열분해는 폐기물 처리방법 중 가장 친환경적이며, 고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다고 단언했다. 열분해의 경우 황성분이 전혀 나오지 않으며 나프타부터 등유, 수소(가스화)까지 생산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일부에선 탄소-나노튜브 생산까지 검토하고 있을 정도다.

“열분해는 밀폐된 용기나 탱크에 넣고 간접열을 가하는 방법이라 탄소-수소 결합체가 대부분이다. 일부 슬러지도 나오지만, 대기배출 걱정이 없다. 소각은 오염물질 및 온실가스 배출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열분해는 소각에 비해 태우는 비율도 10분의 1 수준이다. 사실상 굴뚝이 없는 셈이다.”

현재 우리 정부는 플라스틱 제로를 위한 다양한 정책을 펼쳐나가고 있다. 유럽에서도 기후변화의 가장 큰 원인을 폐플라스틱으로 꼽고 대책 마련을 서두르는 중이다. 하지만 박 회장은 세계는 이미 플라스틱에 중독돼 있으며, 없으면 생활이 불가능한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심지어 “열분해로 가야 한다는 것은 천하가 다 안다”고 말했다.

대기업까지 줄줄이 열분해 분야에 뛰어들고 있는 만큼 앞으로 열분해를 위한 폐플라스틱과 폐비닐 수요가 증가할 것은 뻔한 상황. 그는 폐기물 확보전은 이미 시작됐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열분해와 소각업계는 처리비로 15만∼18만원을 받지만 시멘트에선 공짜로 가져가 쏠림 현상이 심각하다는 이유에서다.  

“현재 폐기물 가지고 돈 버는 것은 시멘트업계다. ESG나 탄소중립은 핑계일 뿐이고 연료비를 절감하기 위해 무섭게 빨아들이고 있어 폐기물 처리사업을 망치고 있다. 시장경제 논리를 적용해선 절대 해결할 수 없다.”

그는 환경부가 적극적인 중재와 해법을 제시하기보다 자꾸 업계에 떠넘기고 있다고 불만을 표시했다. 시멘트가 기간산업이다 눈치를 보는 거야 어쩔 수 없지만 무너지는 환경처리업종을 방치해선 안된다고 강조했다. 소각을 통한 에너지회수 역시 필요한 만큼 생활폐기물은 놔두고, 산업폐기물의 경우 열분해업종에 20%가량을 우선 공급하는 방안을 제시하기도 했다.

“열분해가 안되면 수출산업의 타격이 불가피하다. 여기에 열분해는 자원순환 고리 중 가장 고부가치화 제품을 만든다. 폐기물 배분에 정부가 나서야 한다. EPR이 아닌 다른 경로로 유통되는 물량이 더 큰 문제다. 폐플라스틱 및 폐비닐 공급 쿼터제 또는 우선공급제 도입이 절실하다.”

박 회장은 열분해가 기술적으로 아직 검증이 완벽하게 안됐다는 것을 개선점으로 지목했다. 열분해설비에 대한 신뢰도를 확보하지 못한데다 가격도 비싸다는 것이다. 열분해 관련 인재육성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것에도 아쉬움을 표했다. 안전 확보는 물론 기술 축적을 위해서도 체계적인 인재육성 프로그램이 필요하단다. 그가 몇몇 지인들과 함께 ‘정유대학’을 꿈꾸는 것도 이 때문이다.

“현재는 100% 중국산이 들어오고 있는 데 열분해설비 국산화도 중요하다. 현재 협회를 중심으로 안전성도 뛰어나고, 고른 반출량이 장점인 연속식 설비를 개발해 울산에서 실증하고 있다. 아울러 열분해업계가 힘을 모아 집단화를 통한 규모의 경제 실현 및 대기업과의 상생발전 방안도 지속적으로 찾을 계획이다.

박죽랑 폐기물에너지산업협회장이 열분해용 원료난의 심각성을 강조하고 있다.
박죽랑 폐기물에너지산업협회장이 열분해용 원료난의 심각성을 강조하고 있다.

채덕종 기자 yesman@e2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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