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민 연료 등유수급 최전선 '마도농협주유소'
하루 등유 3만ℓ 나르고 배송기사만 3명 고용
배달비 받지 않고 현장서 어르신 민원도 해결

장부에 등유와 경유 배달주문이 빼곡히 적혀 있다. '최대한 빨리 가져와 달라'는 주문도 있다.
장부에 등유와 경유 배달주문이 빼곡히 적혀 있다. '최대한 빨리 가져와 달라'는 주문도 있다.

[이투뉴스] "현재 등유 배달해 달라고 전화 온 것만 20건이 넘어요. 전화받고 배달가고 정신없네요. 여기 지금 완전 짜장면집이라니까요.(웃음)"

지난달 4일 오후 2시 경기도 화성시 마도면 마도농협주유소. 수원역에서 서쪽으로 30여분 거리다. 도심지를 빠져나와 국도로 들어서니 고즈넉한 농촌풍경이 펼쳐졌다. 드물지 않게 들어선 주유소도 눈길을 끈다. 이 국도에는 정유4사 주유소, 알뜰주유소, 무폴주유소 등 모든 상표의 주유소가 다 있다. 17km 길이에 28개 주유소가 영업을 하고 있다. 내부경쟁에 사활을 걸고 있는 지역이다. 

"요즘 너무 바쁘네요. 하하."

김지설 마도농협주유소 소장의 첫인사다. 여기는 농협주유소 중 매출 상위로 이름을 알린 곳이다. 이날 유가정보판에 표기된 가격은 휘발유는 리터당 1615원, 경유 1505원, 등유 1290원이다. 승용차와 화물차들이 주유소 안으로 쉴새 없이 들어섰다. 요소수를 구입하려고 사무실로 들어온 고객도 있다. 

매출의 일등공신은 단연 경유다. 경유 저장 유류탱크 크기만 19만리터에 달한다. 하루에만 100여대의 덤프트럭이 이곳을 찾는다. 휘발유 탱크 크기는 9만리터다.

겨울철에는 등유도 판매하고 있다. 현재 국내 주유소는 수익성을 이유로 등유를 판매하지 않는 곳이 매년 늘고 있다. 유가정보시스템 오피넷에 따르면 이달 기준 전국 주유소수는 1만800여개로, 그 중 6700여개소만이 등유를 취급하고 있다. 3년새 1000여개소가 넘게 줄었다.   

"겨울철에 더 바빠요. 딱 요맘때쯤부터 등유 판매량이 급증하거든요. 여기 장부 좀 보세요. 벌써 3페이지를 넘겼네요." 

도심지와 떨어져 있는 지역인 만큼 아직 등유보일러를 사용하는 가구가 많다. 도시가스 보급률이 20% 정도에 불과하다는 게 김 소장의 설명이다. 난방용 등유는 11월부터 판매되기 시작해 2월까지 집중적으로 팔린다.

난방용 등유보다 많이 팔리는 것은 농업용(면세유) 등유다. 벼 건조, 화훼작물, 육계농장 등에 등유보일러가 쓰인다. 마찬가지로 겨울철이 성수기지만 다른 계절에도 수요는 있다.

말통을 들고 직접 받아가는 소비자도 있지만 대부분 전화 주문이다. 주문을 받으면 주유소는 목적지까지 차량으로 배달한다. 마도농협주유소에는 벌크로리(유조차)가 4000리터짜리 2대, 5000리터짜리 1대가 있다. 소장을 포함한 주유소 전체 직원이 7명인데, 이중 배송기사가 3명이다. 별도 배달비는 없다. 경유에만 붙인다. 

"농업인(조합원)을 위한 조직인 만큼 등유에 대한 배달비를 받지 않아요. 받을 수 없다는 표현이 더 정확하겠네요. 최소 마진으로 등유를 판매하고 있어요. 배달비를 책정한 일부 농협 주유소도 있지만, 다른 주유소와 비교할때 현격히 작은 수준이에요." 

◆배송기사 한명이 하루 20여건 배달

김 소장이 벌크로리 차량을 유도하고 있다. 오른쪽 끝에 보이는 작은 창문이 보일러실이다.
김 소장이 벌크로리 차량을 유도하고 있다. 오른쪽 끝에 보이는 작은 창문이 보일러실이다.

"어르신, 안녕하세요. 기름 넣으러 왔어요. 별일 없으셨죠."

주유소에서 차로 15분가량 떨어진 마도면 백곡리 한 농가. 5m쯤 되는 가파른 언덕을 오르자 그 위로 가정집이 보인다. 전동휠체어를 탄 80대 할머니가 반갑게 맞이한다. 

마당에 벌크로리를 주차한 뒤 능숙한 솜씨로 주유호스를 풀어댄다. 차량 바로 왼편에 보일러실이 있다. 

"이 정도면 아주 작업하기 좋은 환경이에요. 보일러실이 외진 곳에 있거나, 차량을 가까이 붙이기 어려운 곳이라면 주유호스를 끌고 직접 올라가야만 해요. 호스 길이가 전체 50m인데, 절반 이상 풀어야 하는 곳도 많아요."    

보일러실 한쪽 창문으로 열어 내부로 호스를 연결한다. 이번에 어르신은 등유 한드럼 반(300리터)을 주문했다. 보통 두드럼이면 한겨울철 기준으로 한달 반가량을 지낼 수 있다.  

물건을 놓고 가는 택배와 달리 등유배달은 기름을 채우는데 시간이 필요하다. 그 사이 배송기사는 의외로 많은 일을 한다. 보일러가 고장났다고 하면 간단히 손봐줘야 하고, 농기구를 옮겨 달라든지 등 어르신 부탁을 처리한다. 무엇보다 말동무가 돼 이것저것 안부를 묻는다.   

등유를 모두 넣는데 소요된 시간은 대략 15분. 계량기에 '38만7000원'이라는 가격이 찍혔다. 작년 겨울철보다는 등유값이 많이 내려오긴 했지만 여전히 서민에게는 부담스러운 수준이다. <관련기사 2023. 04. 13. 기름보일러 쓰는 농촌이 도시보다 난방비 더 든다>

"원래는 현장에서 바로 계산하는데 이 집은 나중에 부녀회장님이 계산해 주실 거예요. 번거로우시다고 해서 통장을 아예 부녀회장님 댁에 맡겨 놨거든요." 

돌아가는 차에서 김 소장의 설명은 이어진다. 보통 하루에 3만리터 등유를 판매한다고 했다. 5만리터짜리 등유 유류탱크가 이틀만에 동나는 셈이다. 

"바쁜 겨울철에는 보통 한 배송기사가 하루에 20건 정도를 쳐내요. 아침 7시부터 오후 6시까지 그야말로 하루 종일 등유를 퍼나르죠. 배달이 많으면 어쩔 땐 8시까지도 일해야 해요. 급한 농가라면 주말에도 나와야 하고요." 

배송기사가 이순선 할머니에게 매출점표를 드리고 있다. 이날 이 할머니는 등유 300리터를 주문했다. 가격은 38만7000원.
배송기사가 이순선 할머니에게 매출점표를 드리고 있다. 이날 이 할머니는 등유 300리터를 주문했다. 가격은 38만7000원.

◆이리 치이고, 저리 치여도  

김 소장이 주유소 등유사업에 대해 말하고 있다.
김 소장이 주유소 등유사업에 대해 말하고 있다.

"일은 일대로 열심히 하고 있는데 어르신들에게 혼날 때도 많아요. 하루종일 기다렸는데 왜 이제 오느냐 하면서 말이죠.(웃음)"

김 소장은 등유배달의 여러 고충을 설명했다. 소비자를 직접 마주하고 있기에 불만이 바로 접수된다고. 

"그렇다고 그 집이 등유가 떨어졌나? 그건 아니에요. 절반이나 남아 있는데도 어르신들은 불안해 하세요. 물론 등유가 한번이라도 떨어지면 1년 농사를 망칠 수 있으니 충분히 이해는 됩니다." 

면세유 개념을 혼동하는 어르신들도 더러 있다고 했다. 면세유인 농업용 등유는 일반 난방용보다 리터당 150원가량 저렴하다. 

"예전에는 주유소 입구에 있는 유가판에도 면세유 가격을 적어 놨어요. 그런데 자신에게는 왜 저 가격에 안 파냐며 따지는 분들이 있었어요. 자꾸 오해가 생겨서 지금은 사무실 벽면에만 면세유 가격을 표기해 놨습니다."  

특히 지난해는 오른 등유가격 때문에 곤란한 적이 많았다고 한다. 실제 작년 이맘때쯤에는 일부 주유소에선 등유가 휘발유보다도 비싸게 거래되는 가격 역전현상이 발생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러시아산 석유제품이 부족, 국제 등유가격이 급등한 탓이다. 현재는 제자리를 찾았다. 

"작년엔 괜스레 욕을 많이 먹었어요. 한때 등유값이 리터당 1600원도 넘었잖아요. 국제유가 흐름대로 받은 것일 뿐인데 현장에선 가격이 비싸다고 한소리 들은거죠. 사실 우리(농협)는 별도 정유사를 가지고 있는 게 아니잖아요. 정유사로부터 계약한 물량을 받아 전달하는 것 뿐이에요."

<관련기사 2022. 12. 03. 등유 쓰는 국민만 서럽다>

등유 배달비도 늘 고민이다. 현재 마도농협주유소는 화성시 송산면, 마도면, 남양읍, 비봉면 등 4개 읍·면에 등유를 배달하고 있다. 경제학적으론 배달비를 받는 것이 당연하지만, 농협이라는 특수성을 감안하면 그러기가 쉽지 않다.

시장가보다 낮은 가격에 주변 주유소 눈총도 따갑다. 어떠한 결정도 뒷맛이 개운치 않다는 하소연이다.

"치킨을 배달해도 배달비가 몇천원이 붙는 세상이잖아요. 직접 차량으로 배달을 하니 유류비, 인건비, 거기에 유지비도 들어갑니다. 그런데 아직 어르신들은 이러한 것들을 인정하지 않는 분위기예요. 게다가 조합원을 위해 만들어진 조직이라는 명분도 있고요." 

고단함은 많지만 김 소장은 그럼에도 해야 하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지역 토박이로서의 사명감이 가득했다.   

"군대를 제외하면 한번도 이 지역을 벗어난 적이 없어요. 상당수 고객들이 다 지인인 셈이죠. 어르신들을 위해서 앞으로도 등유수급에 최선을 다할 계획입니다. 안정적으로 그리고 저렴하게 등유를 받을 수 있게 해야죠."

마도농협주유소 전경. 
마도농협주유소 전경. 

<화성=김동훈 기자 hooni@e2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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