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진 단국대 행정법무대학원 탄소중립학과 교수 / "협소한 정치 공약속에 기후공약 들어설 자리 없어" / "원자력 이렇게 많이 하는 나라에 폐기물 대책 없다니" / "獨 사민당과 기민당도 대연정으로 탈원전 유지 합의" / "어려운 일 하는 게 정치의 책임, 보수언론 눈치만 봐"

김수진 단국대 행정법무대학원 탄소중립학과 교수
김수진 단국대 행정법무대학원 탄소중립학과 교수

[이투뉴스] 문재인 정부가 의욕을 갖고 추진한 에너지전환정책은 이태도 못가 뻘밭에 발이 빠졌다. 대통령의 탈원전 선언부터, 시작은 창대했으나 끝으로 갈수록 미약했다. 어쩌면 첫 발짝부터 단단히 발이 꼬였다. 정부는 ‘탈원전해도 전기료 오를 일 없다’며 보수언론의 눈치만 살폈고, 훗날 당대표가 된 한 인사는 취소 원전을 다시 짓자며 청와대와 엇박자를 냈다. 정권이 바뀌자마자 ‘탈원전’이 ‘탈(脫)탈원전’으로, ‘재생에너지 확대’가 ‘원자력 확대’로 회귀했다. 

김수진 단국대 행정법무대학원 탄소중립학과 초빙교수<사진>는 한국의 의회정치·정당정치의 부재가 에너지전환과 기후위기 대응을 한층 어렵게 하고 있다고 진단한다. 최근 2000년대 이후 치러진 각종 선거의 기후정책공약을 분석한 보고서와 책을 펴내 주목을 받고 있다. 김 교수는 인터뷰에 앞서 “한국이 독일과 가장 다른 건 정치가 없다는 것, 정치가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는다는 것”이라며 “한국의 기후위기 대응이 이렇게 늦은 것도 결국 정당의 무책임 때문”이라고 직격했다.

- 독일 유학 생활은 어땠나

“베를린자유대 환경정책연구소에서 2000년 슈뢰더 정부 때 이미 탈원전을 추진한 독일과 그렇지 않은 한국을 비교하는 연구를 했다. 유학 생활 자체는 힘들었다. 환경경제학은 정량적으로 연구하지만, 거기선 정성적으로 해야 했다. 왜 두 나라가 다르냐고 질문을 던지니, 여러 원인이 복합적으로 연결돼 곤란했다. 그러다 찾은 게 하버마스의 위기 경향성 이론 보고서다. 합리성의 위기, 정당성의 위기, 시민사회 수용성의 위기 등 실제 위기 개념으로 독일 탈원전 과정을 설명하니, 상호작용을 강화한 측면이 있다는 걸 알게 됐다. 우리에게 대입해 왜 끊임없이 핵폐기물 반대운동이 일어났음에도 탈원전이 안 됐는가를 봤다. 국회 회의록, 국정감사 기록을 많이 봤다. 아이러니 한 건 국회의원들이 매번 핵폐기물 문제를 지적하면서도 정작 본인들이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른다는 점이다. 결국 국회가 결정할 문제다. 관료 몫이 아니다. 하지만 오랫동안 산업통상자원부가 하는 일이 되다 보니 정작 자신들이 무엇을 해야겠다는 생각은 않는다.”

- 국정감사 관련 기록을 살펴보니 어떤 생각이 들었나?

“국회의원들이 매년 20년째 똑같은 말을 반복하고 있더라. 문제가 있다는 건 아는데 뭔 해결책은 없다. 독일도 1970년대에 그런 문제를 겪었다. 당시만 해도 사용후핵연료를 재활용한다는 개념이 있었다. 민간기업들이 연합해 재처리공장을 만들려 했다. 그런데 1979년 스리마일섬 원전 사고가 터졌고, 영국·프랑스에 위탁하겠다고 하면서 그대로 (논의가) 없어졌다. 민간발전사들도 부담스러워하며 섣불리 행동으로 나서지 못했다. 그때 독일 정부는 방폐물 처분 방법이 없다면 신규원전을 건설하지 못한다며 심하게 압박을 넣었다. 실제 1977년부터 1981년까지 독일 신규원전이 없다. 다른 나라서 한창 건설하고 있을 때다. 대책이 없다면 신규를 허락하지 않는다는 일종의 모라토리엄이다. 그러다 1980년대로 넘어가 보수 연립정부가 들어서고 고준위는 고어레벤에서 처리한다고 하니 건설 재개를 허락했고, 그래도 3기밖에 새로 못 지었다. 국가가 사업자가 아니다 보니 철저하게 규제자 역할을 할 수 있었던 거다.”

- 우리가 쓴 사용후핵연료는 여전히 발전소 수조에 방치돼 있는데

“핵폐기장 반대운동이 80년대부터 시작됐는데, 해결책이 없는 상태에서 여태껏 발전만 하는 거다. 국가가 하라고 하니 공기업인 한수원도 어떻게 되겠지 한 거다. 2000년대부터 사용후핵연료가 포화한다고 했는데, 새 원전으로 옮기면서까지 미루고 있다. 무책임한 거다. 안전도 그렇다. 사용후핵연료가 갈 데가 없으니 발전소 부지에 그대로 있다. 사용후핵연료는 발전소에서 꺼낸 직후가 가장 위험하다. 경수로 습식저장은 안전수준이 낮고, 밀도까지 높인 상태라 더 위험하다. 임시저장시설은 맥스터든 뭐든 중간저장소에 준하는 엄한 기준을 충족해야 한다. 법적용어도 아닌 임시저장이니 단기저장이니 그런 개념으로 넘어가려 한다. 독일의 경우 적록연정 이후 탈원전하겠다고 했고, 재처리는 국내서도 국외서도 안된다고 법으로 명시했다. 최종처분장이 만들어질 때까지 발전소 부지 안에 임시저장소 만들어 보관하라고 한 거고, 임시저장소는 중간저장소에 준하는 엄한 기준을 적용했다. 보잉-747 여객기가 연료를 가득 싣고 부딪혀도 저장소가 무너지지 않을 정도다. 과연 우리는 그렇게 하고 있나. 후쿠시마 사고 이후 안전기준을 높였지만, 확률이 극이 낮다면 확률이 없는 것으로 간주하는 게 우리 수준이다. 원자력이란 항상 가상의 사고를 염두에 둘 수밖에 없다.”

- 시민사회 역시 임시저장 안전에 대해서는 목소리를 내지 않고 있다.

“문제를 제기하면 그게 당장 중요한 게 아니라는 식이다. 안전하지 않으니 안전할 때까지 (운영을) 멈추라고 할 수도 있을 텐데 그러지 않는다. 안전하지 않으니, 보강하라면 (원전이)계속 간다고 생각하는 거다. 그렇다고 안전하지 않은 걸 묵과하고 가도 되는 건가. 튼튼하게 지으라고 요구하면, 그걸 여기에 지으라는 말이 된다고 보는 거다. 역설적 상황이다. 안전하지 않은 걸 반핵단체가 문제를 제기하지 않는 아이러니한 상황이다.”

-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선언과 이후 민주당 행보는 어떻게 평가하나

“대통령이 탈원전을 선언해 탈원전이 되는 상황도 낯설었다. 내각제라 우리와는 다르지만, 독일의 정책이란 정당 간 치열한 논쟁의 산물이다. 대연정을 하더라도 원자력에 대해 서로 다른 입장을 가진 정당이 치열하게 논쟁한다. 독일어가 철학적으로 매우 세분된 언어인데, 정치(policy)와 정책(politics)이 그냥 ‘politics’ 하나다. 이렇게 철학적 언어가 발달한 나라가 왜 둘을 구분하지 않을까. 정치 행위가 정책이 되니까 그렇다. 그런데 우린 대통령이 탈원전을 선언한 뒤 국회에서 아무런 움직임이 없었다. 그냥 전력수급계획에 반영돼 산업부가 수명연장을 않겠다고 했다. 신규 원전 금지 입법화와 수명연장 금지 입법화가 필요하다고 했지만 민주당은 나서지 않았다. 그러는 순간 당시 야당이었던 국민의힘과 대치정국을 형성하고 보수언론이 엄청나게 떠들 거라고 겁을 냈던 거다. 그런 와중에 송영길 의원은 신한울 3,4호기 건설 재개 얘기를 한다. 대통령 혼자의 탈원전 선언이었고, 과연 민주당 내부에서 얼마나 거기에 동의했을까 묻고 싶다. 조용히 있고 싶은 거다. 보수언론이 떠들면 공격받는 게 싫은 거다. 정치는 용기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 윤석열 정부도 마찬가지 아닌가.

“이제 와 상대에게 그걸 비판할 수 있겠나. 당시에도 대통령 말 한마디로, 지금도 대통령 말 한마디로 10차 전력계획이 다 바뀌고 있다. 일종의 ‘계획의 관성’이다. 2년마다 15년 앞을 내다보고 수급계획을 세우면서 원전도 점점 늘어나고 있다. 산업부 소관이니 국회도 여기에 대해 책임지지 않고, 입법화해야 한다는 생각조차 않는다. 전 정부는 당시에 신규원전은 않지만 수출은 하겠다고 했다. 논리가 굉장히 웃긴다. 안전한 대한민국을 위해 탈원전을 했다면서 다른 나라는 괜찮다는 건가. 나는 신고리 5,6호기 공론화나 대통령의 탈원전 선언이 충분히 의회에서 공론화가 되지 않은 상태에서 이뤄졌다고 본다. 선언만 했지, 그걸 뒷받침할 논거가 없었다. 월성 1호기도 안전하지 않아 닫는다고 하면 될 걸 수명연장 할 때의 경제성 논리를 가져와 결국 감사원 감사가 들어오게 했다. 탈원전이 문재인 대통령 후보 시절 가장 인기 있는 공약이었는지 모르지만, 후쿠시마 사고부터 집권까지 몇 년이 흘렀는데 원내 정당들이 심각하게 논의한 적이 없다. 그걸 지속하면서 대통령이 탈원전을 선언하고 입법화하는 과정을 거쳤어야 한다. 여전히 이런 정책은 국회에서 논의한다는 생각 자체를 못하고 있다. 민주당이 다수 의석인데 안한다. 지금도 윤석열 정부가 수명을 연장한다고 할 때 민주당이 진심으로 탈원전을 하고자 한다면 법으로 맞서면 된다. 안 하잖나.  민주당이 굉장히 잘못했다고 생각하고, 지금은 할 말이 없을 거다.”

- 민주당은 그런 수세적 대응으로 임기 내내 불필요한 공격을 자초했다.

“공약을 분석해 보니 민주당이 야당이었을 때 후쿠시마 사고가 터졌다. 박근혜 정부였고 당시 대선공약이나 총선공약을 보면 원전을 더 이상 안 하겠다든지 탈원전해야 한다든지 수명연장을 안 하겠다는 공약들이 있다. 그런데 민주당이 여당이었을 땐 그런 공약이 없다. 굳이 논쟁이 될 만한 공약은 안 넣는 거다. 국민의힘도 여당 시절 후쿠시마 사고가 일어났고 민주당이 그런 공약을 낼 때 한마디도 않다가 야당이 되자 탈원전을 탈탈원전해야 한다고 공약을 내건다. 서로 피하고, 그러니 의회에서 논쟁이 안 된다. 논쟁이 되지 않으면 시민들도 왜 문제가 있는지 모른다. 사용후핵연료는 기술적으로 어려운 문제다. 끊임없이 국회에서 논쟁하고 언론에서 다뤄져야 아무 대책이 없고, 그렇다면 더 짓는 걸 생각해 봐야 한다는 반응이 나온다. 국회의원들도 ‘화장실 없는 아파트’란 표현을 쓰면서 논쟁 자체를 안한다. 용기가 없다고 본다. 정치인은 최소 용기가 있어야 한다. 자기가 신념을 갖고 말한 건 비전을 제시해야 한다. 지금은 비전이란 게 장기적인 건 없고 순 유권자의 단기적이고 경제적인 이해관계가 맞추는 것들이다. 최근 공약의 트렌드를 한번 보라. 세대 맞춤형이다, 지역맞춤형이다 그런 협소한 공약 속에 기후변화공약이 들어설 공간은 없다. 원자력을 이렇게 많이 하는 국가에서 이렇게 폐기물에 대해 아무런 대책이 없는 국가도 없다.”

- 정의당의 경우 민주당보다 진보적인 목소리를 냈지만, 그때뿐이었다.

“너무 소수정당이다. 우리나라 정치는 연합하는 정치가 아니다. 보통 연립정부는 내각제에서 많이 하고, 내각제는 다수 의석을 해야만 정부를 잡는다. 과반이 안되고 정부를 잡는 경우는 거의 없다. 소수정당의 경우 국민과 약속한 정책을 밀어붙이기 어렵다. 그러다 보니 독일도 선거만 끝나면 어떻게 연정할 것인가가 최대 관심사다. 색이 맞는 정당과 합쳐 50%가 안 되면 엄청난 게임에 들어가는 거다. 어쩔 수 없이 대연정을 하기도 한다. 지금처럼 색이 다른 신호등 연정이 된다. 자유민주당은 굉장히 시장경제를 추구하는 정당이고, 기독민주당은 굉장히 보수적인 정당이다. 녹색당은 굉장히 진보 진영 당이다. 이 세 당이 모여 연립정부를 구성했고, 항상 연립정부는 어떤 정책을 어떻게 하겠다는 계약서를 쓴다. 가령 2005년 사민당과 기민당이 대연정을 했을 때 '원자력에 대해서는 생각이 다르지만 대연정 기간은 이전 정부의 탈원전정책을 유기하기로 한다'는 서약을 한다. 그 문구가 나오기까지 얼마나 많은 협상을 했겠나. 나는 그게 정치의 책임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어려운 일을 하라고 공적 임무를 주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 정치는 그런 일을 안 한다. 고작 보수언론에 욕먹기 싫다고 쉬쉬하고, 입법도 않는다.”

- 이런 국면이 지속되면, 에너지 문제든 원자력 문제든 해결이 요원하다.

“정치가 책임을 져야 한다. 이제 총선정국이다. 지역 단위별로 공약을 내겠지만, 이제라도 민주당이 국가 전체에 해당하는 비전을 내야 한다. 에너지정책은 RE100만 이야기할 게 아니고, 원자력에 대한 자신들의 견해가 무엇인지 명시하고, 그럼으로써 논쟁해야 한다고 본다. 정의당 얘기를 좀 더 하자면, 우리는 연정을 안 하니 소수정당이 정책협상의 대상이 되지 않는 거다. 우리가 연립정부의 정치적 관행이 있다면, 충분히 민주당과 정의당이 정책적인 협상을 하고 사퇴나 지지 선언하면서 소수정당도 목소리를 낼 수 있다고 본다. 소수정당이 뭔가 정책협상의 대상이 되려면 비례대표가 엄청나게 늘어야 한다. 그런데 지금 게임의 룰을 정하는 건 민주당과 국민의힘이다. 지금의 룰은 그들이 이익을 보니 안 바꿔 줄 거다. 한국에 와서 비례대표를 늘리는 제도개혁을 해야한다고 말했는데, 가만히 보니 공허하더라. 그래서 생각을 바꿨다. 비슷한 효과를 낼 수 있는 연정을 하면 된다. 정책협상으로 소수정당이 최소 자신들이 지키려 하는 정책을 실현할 수 있다. 대신 조금 현실적이 되어야 한다. 너무 이상적으로 녹색의 가치를 실현하겠다고 하면 안된다. 현실정치에 들어온 이상, 더 이상 운동단체가 아니잖나. 양보할 건 하고 지킬 건 지켜야 한다. 가령 정의당 경우는 고용노동부나 환경부를 맡으면 국민 입장에서도 수권 능력이 있구나 하면서 표를 더 줄 수 있지 않을까.”

- 각 당의 선거공약을 분석해 보니 어떻든가

“민주당 공약은 2020년 총선 것이 2022년 대선것보다 더 진보적이다. 2020년에는 탄소세도 검토하겠다고 할 정도다. 정의당과 비슷한 유권자층을 공유하고 있었던 거다. 유권자 경쟁을 한 거다. 그러다 대선에서 가장 보수적인 국힘과 경쟁하다 보니 재생에너지 공약 하나밖에 없었다. 이런 정치 지형에서는 정치가 보수화될 수밖에 없다. 점점 기후정책이 어려워진다. 이런 양극화를 극복하기 위해 이제 연합정치를 할 때가 됐다. 정의당도 대선에서 그냥 사퇴할 게 아니라 결선투표제 효과를 낼 만한 것으로 딜을 해야 한다. 지금까지는 지지하는 당원들을 배신한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정치는 현실이다. 떠나는 당원도 있겠지만, 그렇게 해서 새로 지지하는 사람도 생긴다. 독일 녹색당도 탈원전 이후 강성당원이 많이 떠났다. 하지만 지금도 지지율이 엄청 높다. 다른 국민이 지지한다. 정치는 현실적이고 용기와 책임지는 자세가 있어야 한다.”

- 한편에선 원자력 문제가 과도하게 정쟁화됐다고 비판한다.

“정쟁이라면 건설적이지 않은 것으로 비치는데, 정치적 논쟁은 그렇지 않다. 원자력은 찬성할 수도, 반대할 수도 있다. 가치관이 개입되는 문제라서다. 재생가능에너지는 누구나 쉽게 찬성할 수 있다. 원자력은 다르다. 독특한 기술이다. 사고위험이 낮더라도, 사고가 터지면 돌이킬 수 없다. 과연 이걸 어떻게 판단할 것인가의 문제다. 독일은 후쿠시마 사고 때 일본처럼 기술이 고도화된 나라에서 사고가 났다는 것에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 체르노빌 사고는 통제나 규제가 제대로 안 될 수 있는 폐쇄된 사회였고 원자로도 서방과 달랐다. 그런데 일본 원전은 독일과 같은 비등경수로였다. 양국은 같은 패전국이기도 했고, 가까운 나라였기에 제대로 대응 못 하는 것에 더 놀랐다. 원자력을 얘기할 때마다 말한 최악의 시나리오가 현실로 일어난 거다. 메르켈은 윤리위원회를 만들어 폐쇄시기 검토를 의뢰했다. 정치적 책임이 있으니 모두 셧다운할 수는 없고 경제적 비용편익, 전력수급 등을 다 따져보고 그 시기를 2022년으로 결정했다. 그걸 조금 유예하다가 2023년 4월 15일 모든 원전을 세웠다. 원자력을 판단하는 건 각자의 가치관 문제다. 위험해서 아니라고 생각할 수도, 안전하게 관리하면서 쓰자고 할 수도 있다. 그 합의를 만들라고 있는 게 국회다. 가치관이 대립하는 건 결국 정치적으로 끊임없이 논쟁해야 한다. 스웨덴처럼 엎치락뒤치락할 수 있지만, 그 과정에 국민이 원자력에 대해 충분히 알 수 있게 된다. 시끄럽다고 외면하면 국민의 판단 능력이 점점 사라진다. 독일 사회학자 울리히 벡은 <위험사회>에서 위험사회에 대응하는 최선의 방책은 위험을 드러내고 서로 얘기하는 거라고 했다. 끊임없이 원자력이 어떤지 이야기하고 토론하면서 사회적 합의가 모이는 것이지, 여론조사를 한다고 될 문제가 아니다.

- 독일은 오랜 숙의가 있었지만 우린 신고리 5,6호기 공론화 경험 정도다.

“독일은 30년간 논쟁을 했다. 그게 공론화다. 아무 일도 하지 않다가 국민을 모아서 공론화한다고 하고, 그 결과대로 하겠다는 건 정치적 책임회피다. 독일도 1986년 체르노빌 사고 이전까지 사민당 정부가 경제발전을 이유로 원전을 찬성했다. 그러다 방사능낙진이 독일까지 떨어졌고 사민당도 원전 반대를 당의 강령으로 채택하고 입장을 바꿨다. 전통적으로 노조 지지를 받는 당이었는데, 노조도 돌아섰다. 여당이 된 기민당은 계속가자는 입장이었다. 그러다가 고준위 방폐물을 모아두었던 고어레벤이 쟁점이 된다. 인구가 적고 동·서독 경계지역이고, 1990년대에 슈뢰더가 주지사를 했던 니더작센주 지역이다. 슈뢰더는 중저준위방폐장이 이미 주(州)에 있으니 고준위는 다른 곳을 찾으라 했다. 당시 연방 환경부 장관이 메르켈이었다. 메르켈은 지금까지 투자한 비용이 있으니 책임지고 후보지를 대라고 했다. 니더작센주 주지사와 연방정부가 폐기물 정책을 놓고 불붙은 거다. 언론에서 계속 다뤄지고, 연방선거 때마다 주된 논쟁거리가 됐다. 독일의 역사학자인 라드카오 빌레펠트대 교수는 저서에서 독일에서 단일이슈로 가장 오랫동안 이뤄진 논쟁이 원자력이라고 했다. 30년을 했다. 그 결과로 2000년대 중반만 해도 우리보다 원자력 설비용량이 많았던 나라이고 유럽의 가장 큰 경제대국이 불과 20년 만에 원전을 완전 폐쇄했다. 독일에서 공부할 때 나도 불가능하다고 봤지만, 해내더라. 재생가능에너지가 생각보다 빨리 늘고 안전규제가 높아지니 발전사 입장에서도 원자력이 그리 매력적이지 않았다. 80년대 말 이후 더는 짓지 않았다. 우리는 지금도 짓고 있다. 시민단체까지 정치화가 문제라고 하는데, 원자력은 당연히 정치화돼야 할 문제다. 이런 폐기물 문제가 있다고 자꾸 말해야 하고, 그걸 해결하지 못하고 있으니 해결될 때까지 신규원전은 세워야 한다고 해야 한다. 정치화가 되지 않고 어떻게 해결이 되나.”

- 우리 정치가 그런 역량을 갖췄는지 의문이다.

“아침에 시사라디오 프로를 즐겨 듣는데, 온통 신당 창당한다 탈당한다 누가 불출마 선언했다 대통령의 의중이 뭐냐 그런 얘기뿐이다. 조선시대도 아니고 왜 대통령 의중을 신경써야 하나. 정치 뉴스에 정책 얘기가 별로 없다. 기후변화나 전력산업도 얼마나 논쟁적인 이슈가 많나. 독일에선 항상 정책이 이슈다. 아주 민감한 사안을 놓고 정치인들이 밤새 회의하고, 다음 날 아침에 어떻게 타결했다고 브리핑한다. 그게 정치의 책임이다. 굉장히 어려운 문제를 밤새 풀고, 하여튼 합의한다. 민주당과 국민의힘도 오로지 정책을 갖고 싸우고 연정을 해봤으면 한다. 지금의 정당정치 문화는 내가 잘해서 되는 게 아니라 상대방이 못하면 된다. 어떻게 이런 후진 정치를 하나.”

- 어떻게 에너지 현안을 공론장으로 끌고 나와야 지지를 얻을 수 있을까.

“국민의힘은 탈원전을 폐기해야 한다고 이미 말했다. 민주당은 원자력에 대한 입장을 분명히 해야한다. 그래야 논쟁이 붙는다. 국민은 정치가 자꾸 양극화되다 보니 소수당에 표를 줄 여유가 없어 보인다. 정의당이 의석수라도 많으면 민주당에 위협이 될 텐데. 그래서 정치는 더 보수화되고 있다. 2000~2020년 사이 공약을 분석해 보니 야당이었을 때 복지공약 비중이 여당이었을 때보다 항상 더 높다. 민주당이 여당이었을 땐 야당인 국힘보다 비중이 작았다. 한국 사회는 최장집 교수의 말처럼 남북이 대치된 상황에서 이념적으로 보수화돼 있다. 실제 지표도 그렇다. 지금도 복지공약 경쟁이고 일종의 포퓰리즘이다. 전기료를 올리지 않는 것도 그 때문이다. 독일은 재생에너지 비중이 50%를 넘겼는데, 현지 한 친구는 메르켈이 속도 조절을 해서 더 빨리 못 높였다고 하더라. 전기료가 엄청 올랐지만, 그렇게 말한다. 우리는 조금만 요금이 올라도 요금폭탄이라 한다. 공짜 점심은 없다. 정치인들이 사즉생으로 용기 있게 나서야 한다.”

- 앞으로 연구 활동 계획은?

“에너지전환의 당위성은 확보됐고 누구도 반대하지 않는다. 문제는 과연 어떻게 할 것인가이다. 다른 지점에선 최근 에너지 공공성과 시장이 부딪히고 있다. 참여하고 있는 포럼의 올해 연구주제가 커먼즈였다. 최근 한국 시민사회 진영에서도 커먼즈 개념이 많이 회자하고 있다. 에너지 부문에서도 가령 시민들이 협동조합을 만들어 재생가능에너지를 소유하기도 한다. 하지만 나는 그걸 왜 에너지커먼즈라 하는지 의문이 생겼다. 왜냐면 모두의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소유권이 명확한 거다. 그러면서 에너지의 공공성도 지켜야 한다고 한다. 에너지커먼즈 개념 안에 공공성도 들어가고 자치도 들어가도 되지만 시장은 안된다는 거다. 지금 공기업이 갖고 있는 자산은 이미 좌초자산이다. 재생에너지 늘면 석탄발전과 원자력은 언젠가 줄 수밖에 없다. 그런데 공공성 확보를 위해 재생에너지를 공기업이 해야 한다고 주장하면, 그게 공공성이라고 한다면 에너지커먼즈는 시민참여 모델과 충돌한다. 전기료를 정상화해야 한다는 시민사회 목소리와 에너지는 공공재이니 공공요금을 인상하면 안된다는 공공노조와 부딪힌다. 그런데 에너지전환의 유럽 경험적 모델을 보면 시장이 작동하지 않고선 어렵다. 에너지전환은 시민들도 참여해야 하지만, 결국 시장도 제대로 작동해야 하고 운영 플랫폼도 굉장히 디지털화가 필요하다. 국가는 시장이 제대로 작동하도록, 독과점이 생기지 않도록 규제를 제대로 하면 된다. 시민단체나 진보 진영 일부 학자들이 말하는 모델과 실제 경험적 모델은 다르다."

이상복 기자 lsb@e2news.com

[김수진. She is....] 베를린자유대학교 정치학과 환경정책연구소에서 독일과 한국의 원자력정책 비교 연구로 박사학위(환경 및 에너지정책 정책학)를 받았다. 귀국 후 고려대 BK21플러스 BEF 경제사업팀에서 연구교수로 재직했다. 고려대, 동국대, 고려사이버대에서 기후변화경제학, 지속가능한발전, 에너지기술정책 등을 강의했다. 현재 단국대에서 탄소중립사회론, 전환정치론 강의를 맡고 있다. 저서로는 「기후변화의 유혹, 원자력: 원자력 르네상스의 실체와 에너지 정책의 미래」 (2011), 「지속가능한 생태사회를 위한 가치와 전략. 녹색전환」 (2020), 「생명자유공동체 총서1. 생명자유공동체 새로운 시대의 질문」 (2020), 「생명자유공동체 총서2. 전환의 질문, 질문의 전환」 (2021), 「생명자유공동체 총서4. 전환의 정치, 열 개의 시선」 (2022), 「생명자유공동체 총서4. 기후위기, 전환의 길목에서」 (2023) 등이 있다. 주된 연구주제는 에너지전환, 원자력 안전, 정당정치의 공적기능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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