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와 쟁점] 타당성 및 전략 부재 맹목적 논의
日과 100년 기술격차…시장 적은데 기업 자생?
“韓 잘할 수 있는 스마트 제어기술로 승부해야”

[이투뉴스] 전 세계 수력발전 설비용량은 2021년말 기준 1230GW로, 재생에너지 가운데 아직 태양광(849GW)이나 풍력(825GW)보다 비중(40.1%)이 높다. 양수발전(165GW)을 제외하고도 그렇다. 수력은 특성상 특정국에 편중된 자원이기도 하다. 중국이 391GW로 전체의 28.8%를 점유한 가운데 브라질(109.4GW), 미국(101.9GW), 캐나다(82.3GW), 러시아(55.7GW), 인도(51.4GW), 일본(49.6GW), 노르웨이(33.4GW) 등 상위 10개국에 70% 가까이가 몰려있다.

한국수력산업협회(2021년말 기준) 통계를 보면, 국내 수력 설비용량은 10MW 초과 일반수력 1.6GW, 소수력 184기 223MW 등 모두 1.84GW이다. 양수발전 4.7GW를 포함하면 6.52GW 규모다. 그래도 전 세계 설비량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극히 적다. 정부는 재생에너지 변동성 대응과 장주기 에너지저장장치(ESS) 확충을 위해 양수발전을 적극 확대하고 있다. 2036년까지 3.55GW를 추가 건설해 누적 8.25GW를 확보할 계획이다. 한국수력원자력이 착수한 홍천‧포천‧영동 3개 양수발전 외에 3개 대형사업이 추가 추진될 예정이다.

국내 수력‧양수 6.52GW…2036년 양수 3.55GW 확충
일각서 제기하는 주기기 국산화 명분 놓고 설왕설래

발전업계는 이들 프로젝트에 투입되는 전체 사업비(토목공사+주기기)가 10조원에 육박할 것으로 보고 있다. 이처럼 큰 시장이 열리자, 최근 일각에서 해외 제작사와 기술에 의존하는 수력발전 발전기와 터빈 등 주기기를 국산화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주로 공기업 측에서 운을 띄우면, 관련 산‧학계 일부서 맞장구를 치는 형태다. GW급 석탄화력 터빈과 원자로 등도 국내 기술로 개발‧생산하는데, 수백MW급 수력 주기기라고 자체 설계‧제작을 못하란 법이 있냐는 접근이다. 이러한 수력발전 주기기 국산화 논의는 과연 명분과 타당성, 국가적 득실을 충분히 검토한 상태에서 제기되고 있는걸까?

전문가들은 지금까지 왜 수력기기 기술자립이 안됐는지를 먼저 곱씹어 볼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그리고 그 실마리를 수자원과 수력시장 규모에서 찾는다. 세계은행의 국가별 수력발전 통계(2016)에 따르면, 중국이 연간 8721억kWh로 가장 많고 뒤이어 브라질(4153억kWh), 캐나다(3806억kWh), 미국(2982억kWh), 러시아(1673억kWh) 순이다. 반면 한국은 76억kWh로 세계 8위 일본(836억kWh)의 10분의 1에도 못 미친다. 전체 발전량 중 수력 비중도 마찬가지. 1971년 12.5%에서 1990년 6.0%, 2000년 1.3% 순으로 줄다가 2021년 현재 1.2%를 기록하고 있다. 알바니아(100%), 브라질(61.8%), 중국(19.0%), 일본(8.2%) 비중(2016년)과 비교된다.

한국전쟁 이후 한‧일 양국의 전력산업 변천사를 비교해 보는 것도 중요한 단초다. 한국은 전후 북한의 수력전력 공급이 중단되자 서구의 화력과 원자력 기술을 발 빠르게 도입해 고도 경제성장기에 필요한 전력을 조달했다. 자연스럽게 수력비중과 기술개발 필요성이 감소했다. 반면 일찌감치 서양문물을 받아들인 일본은 광산개발용 모터를 자체 개발하고 1900년대부터 히타치와 도시바 등의 기업이 수력발전기와 수차를 국산화 해 국내외로 공급했다. 일본 정부의 전략적인 기술경쟁 유도도 주효했다. 제작사들이 경쟁하면서 기술을 성장시킬 수 있도록 전력회사들이 도시바와 히타치, 미쓰비시 등 3사에 균등하게 발전기를 발주하도록 했다. 특정기업이 독점하는 산업은 가격 및 품질경쟁이 이뤄질 수 없다는 사실을 염두에 둔 조치다. 발전기기 전문기업 A사 관계자는 “제작사의 과감한 도전과 이들의 고른 성장을 뒷받침한 정부의 컨트롤이 일본 수력산업의 발전 비결”이라며 “제작사끼리 경쟁하면서도 연구회와 학회, 협회를 통해 기술규격과 법규를 만들어 가는 과정이 있었기에 오늘날 국제규격 수준을 뛰어넘는 일본의 관리기준이 만들어졌다”고 설명했다.

전후 화력‧원자력 눈돌린 韓, 복수기업 경쟁시킨 日
“수요 적은 국내서 비효율 연구 반복 바람직할까”

수력기기 특성상 표준화가 어렵고 기기개발에 막대한 비용과 장기투자가 필요하다는 사실도 국산화 논의에서 간과되는 부분이다. 설계 전문가들에 의하면 화력이나 원자력은 발전원 차이 외에 차별성이 적어 설계 시 표준화가 쉽다. 하지만 수력은 입지 조건에 따라 유량과 낙차, 수손실 등이 다양해 사실상 표준화가 불가능하다. 유량‧낙차에 따라 수차 타입과 비속도(모델 수차의 회전속도. 수차의 특성 추정지표) 역시 달라진다. 여러 비속도에 대한 설계값을 확보하려면 다양한 입지에서의 수많은 경험과 데이터가 필수다. 자본과 기술력만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란 뜻이다.

엔지니어링사 한 관계자는 “최근 국내기업들의 해외 수력사업 수주가 늘고 있지만, 현장서 이런 실증을 할 순 없다. 실적을 쌓기 위한 국내 자원이 없다는 건 딜레마”라면서 “아무리 좋은 실험설비와 시뮬레이션툴을 갖춰도 실전 실적 없이는 프로젝트 참여가 어렵다. 국내기업이 개발한 풍력터빈의 형식인증에 필요한 풍황곡선을 충분히 만족할 정도의 풍속 데이터가 없어 쩔쩔매는 것과 유사하다. 수차의 유체설계 효율은 CFD (컴퓨터흐름해석)기술로 높일 수 있어도 구조설계는 실전 경험 몫”이라고 지적했다. 이 관계자는 “연구개발비는 보통 기기 구입비의 3배가 든다. 수요가 적은 국내시장서 채산성 없는 연구사업과 실증사업을 반복하는 것이 과연 바람직한지 의문”이라고 부연했다.

수력‧양수기술 확보에 드는 많은 비용과 시간도 고려사항이다. 설계 전문가들은 같은 타입의 수차라도 용량간 기술차이가 커 업력이 100년을 넘긴 일본 대기업들조차 대용량 설비 안정화에 애를 먹는다고 한다. 마찬가지로 역사가 유구한 후지전기, 메이덴샤, 니폰코에이 등의 중견기업들이 중‧소수력에 집중하는 이유다. 신규양수 수요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너무 쉽게 국산화를 거론하는 우리와는 분위기가 다르다.

해외 수력산업 한 전문가는 “특정 대기업이 지금부터 주기기를 국산화하겠다며 설계사를 설립해도 설계자 교육과 모델 실증, 실전 검증까지 상당한 투자가 필요하다”며 “그렇게 성과를 얻어도 10~20년 뒤면 국내 노후수력‧양수 개보수와 신규양수 건설이 끝난다. 20~50년은 족히 걸릴 국산화까지 기업을 유지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성능개선 시장에 대해서도 “30년 이상 정부가 전폭적으로 지원하고 수의계약이 불가능한 공기업 프로젝트까지 몰아주지 않는 한 자체육성은 불가능하다”면서 “항공기를 직접 만들지 않듯, 특정 발전소용 수력기기를 자체 설계인력과 기기로 구축하는 게 정답은 아니"라고 덧붙였다.

에너지컨설팅기업 B 대표는 최근 일각의 주기기 국산화 논의와 관련, “반드시 국산화를 해야 할 정도로 확보해야 할 기술이나 기기이거나 국산화의 결과로 세계시장에서 국산 제품이 선택될 수 있을 정도의 차별성이 있어야 한다. 이 두가지를 충족하지 못하는 맹목적 국산화 논의는 지양해야 한다. 왜 국산화가 필요한지 명쾌하게 답할 수 없다면 곤란한 논의”라고 지적했다.

예천양수발전소 상부저수지
예천양수발전소 상부저수지

표준화 어렵고 국산화에 막대한 비용과 투자 필요
엔지니어링‧유지보수‧보안관리‧운영기술이 유망

전문가들은 100년 가까이 뒤처진 설계기술이나 주기기 분야보다 한국이 더 잘할 수 있고, 미래 전력산업 효율화에 기여할 수 있는 분야로 국산화를 도모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얼마 되지 않는 내수시장에 막대한 연구개발비를 들이기보다 엔지니어링 기술과 유지보수, 보안관리, 운영기술 등에 투자하는 게 승산이 높다는 분석이다. 일례로 일본은 거의 대부분의 수력‧양수를 원격제어로 운영하고 있고, 최근 댐운영에도 인공지능 기술을 접목하고 있다. IT선진국이라며 고정비가 많이 드는 수력운영 방식을 고수하고 있는 우리와 비교된다.

수력 전문기업 한 관계자는 “최근 건설된 스위스 최신양수 발전소 기기가 스위스산은 아니다. 인구가 1억명이 되지 않는 국가의 중공업 유지는 쉽지 않고, 기술도 기술이지만 경제성도 중요 관건”이라며 “앞으로 건설하는 양수는 장기운영비와 고정비를 최소화해야 한다. 그러려면 설계나 제작기술 못지않게 운영기술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앞서 일본은 경제산업성 주도로 수력발전 보안관리와 유지보수 등의 스마트화 가이드라인을 제시했다.

이 관계자는 “굳이 주기기를 국산화 한다면, 전 세계적으로 수요가 많은 중‧소수력 위주로 가는 것이 현실적 선택이며, 그러려면 정부차원의 지원과 기회제공이 필요하다”면서 “다행히 한국은 소수력 분야서 오랜 경험을 쌓아 일본까지 진출한 제작사를 보유하고 있다. 국가차원에서 이런 기업을 보호‧지원하고, 기술개발기간이 짧으면서 활용범위가 넓은 스마트 제어기술(원격감시제어)은 국산화를 서두를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국내외 프로젝트에 직‧간접적으로 관여하고 있는 공학전문가는 “기술개발과 국산화를 거론하기에 앞서 근래에 노후수력 현대화 사업, 화력발전소 냉각 수방류를 이용한 해양소수력과 수자원공사 댐소수력을 제외하고 민간 소수력 프로젝트는 매우 드물었다.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개발 자원의 부족을 의미하는 것”이라며 “수요를 창출하는 시장이 있어야 기술이나 기업이 존재하고 존속할 수 있다. 시장 가능성을 우선 파악하고, 명분보다 무엇이 국익인지 심사숙고한 연구개발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상복 기자 lsb@e2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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