휘발유보다 경유‧등유 가격 더 올라 '가격역전' 심화
尹정부, 민간주도‧자원안보 강조하지만 관심은 썰렁

▲지난주 전라남도 화순의 한 주유소에 유가정보가 표시돼 있는 모습. 휘발유가 경유와 등유보다 싼 가격에 판매되고 있다.
▲지난주 전라남도 화순의 한 주유소에 유가정보가 표시돼 있는 모습. 경유와 등유가 휘발유보다 비싸게 판매되고 있다.

[이투뉴스] 올 한해 석유업계는 '이레귤러(irregular, 변칙적인‧비정상적인)'의 연속이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경유와 등유의 가격역전 현상, 정유사 횡재세 논란, 주유소 품절소동 등 유례없는 한해를 보냈기 때문이다. 자원업계는 윤석열정부가 민간 중심으로 해외자원개발를 확대하겠다고 공언하면서 잃어버린 동력을 되찾을 수 있을지 주목하고 있다. 

올해 국제유가는 롤러코스터를 탔다. 3월 발발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가장 큰 영향을 끼쳤다. 올 초 배럴당 80달러 선을 유지하던 유가는 야금야금 오르기 시작하더니 3월 들어 100달러를 돌파했다. 6월 120달러 수준으로 피크를 찍고, 현재는 하향곡선을 그리고 있다. 이달 8일에는 세 유종 모두 70달러 선으로 내려앉아 연중 최저치를 찍기도 했다. 정점과 비교하면 50달러 넘게 빠졌다.

고유가 기조와 정제마진 초강세가 겹치면서 올 상반기 국내 정유4사(SK이노베이션, GS칼텍스, 에쓰오일, 현대오일뱅크)는 사상 최대 실적을 달성했다. 상반기에만 합산 12조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했는데 이는 반기만에 지난해 영업이익 7조원을 뛰어 넘은 것이다. 하지만 애먼 곳에서 불똥이 튀었다. 시민단체와 일부 정치권이 나서 "유가 폭등으로 앉아서 횡재를 취했으니 초과이윤세(Windfall Profit Tax, 횡재세)를 내야 한다"고 주장한 것이다. 기름값이 리터당 2000원 가까이 치솟고 있는데 정유사만 그 이익을 향유하고 있다는 논리다. 유류세 인하조치와 국제유가 하락 등으로 기름값이 안정세에 돌입하면서 횡재세 논란은 수그러들었지만, 석유제품 가격역전 심화 등 돌발변수도 만만찮다는 분석이다.

실제 지난 6월 리터당 2100원을 넘어섰던 휘발유 가격은 현재 1600원대를 형성, 하향 안정세를 보이고 있다. 문제는 경유다. 휘발유값을 넘어선 경유가 도통 내려오질 않고 있다. 7개월째 계속되고 있는 휘발유와 경유 간 가격역전은 최근 들어 격차가 230원을 넘을 정도로 심화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글로벌 경유공급 부족이라는 요인과 유류세 인하조치로 휘발유가 더 큰 혜택을 본 요인이 맞물렸다는 분석이지만 고개를 갸우뚱거리는 소비자도 상당하다. 치솟은 경유값에 '디젤차의 배신'이라는 비난이 쏟아지는 이유다. 

가격역전 현상은 등유에서도 나타났다. 현재 등유값은 1500원 후반대를 기록하고 있다. 올 1월대비 절반 가까이 올랐고, 지난해 1월과 비교하면 곱절로 뛰었다. 난방비 폭탄이 예고되는 상황이다. 경유와 마찬가지로 글로벌 공급부족으로 인해 가격이 급등했다는 이유를 대고 있지만  등유가 농어촌, 도시외곽 등 취약계층이 주로 사용한다는 점이 아쉬움을 더한다. 서민연료라는 이유로 등유는 휘발유와 경유 대비 세금도 훨씬 낮다. 휘발유 유류세는 리터당 468.8원(부과세 비포함), 경유 335.6원, 등유는 72.5원이다. 세금을 낮추는 한이 있더라도 등유 소비자를 보호하겠다는 취지지만 올겨울은 추울 수밖에 없다.

연말에 일부 주유소는 기름이 동나는 이례적인 상황도 겪었다. 탱크로리 운전기사 일부가 화물연대 총파업에 참여하면서 수급에 차질을 빚었기 때문이다. 품절주유소라는 신조어까지 생기면서 관련 내용이 연일 언론에 도배됐다. 지난달 29일 최초 21개소로 보고된 품절주유소는 연일 늘어나더니 파업 12일째 되던 날 96개소로 최고치를 찍었다. 전국 주유소(1만1000여개) 중 1% 수준이다. 이후 정부 압박으로 감소하더니 이달 9일 화물연대가 총파업 종료를 발표하면서 품절소동도 일단락됐다. 한국석유공사는 13일 "재고가 소진된 주유소가 없다"는 안내를 마지막으로 집계를 종료했다. 

자원업계는 얼어붙은 동토(凍土)에 활력이 되살아날지 주목하고 있다. 윤석열정부가 민간 중심으로 해외자원개발 생태계 회복에 나설 것을 공언했기 때문이다. 러-우 전쟁으로 각종 에너지 가격이 치솟고 각국의 자원무기화 움직임이 거세지면서 자원안보가 어느 때보다 중요해졌다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 현재 정부는 해외자원확보-비축-재자원화로 연결되는 선순환형 공급망 구축을 추진 중이다. 산업통상자원부 산하에 자원안보를 총괄하는 컨트롤타워도 구축키로 했다. 

이를 뒷받침하기 위한 법적근거도 모색되고 있다. 그간 우리나라는 '석유 및 석유대체연료 사업법', '도시가스사업법', '광업법', '해외자원개발사업법' 등 에너지원별 개별법을 근거로 에너지‧자원 위기에 대응해 왔다. 하지만 국회에서 전체를 아우르는 '자원안보특별법' 제정이 추진돼 관심을 모은다. 여야 모두 관련 법안을 발의했다는 점에서 국회 통과도 기대되고 있다. 15일 양금희 국민의힘(대구 북구갑) 의원은 "국내 산업의 경쟁력 제고를 위해서는 핵심자원 개발에서부터 도입·비축·재자원화로 연결되는 새로운 자원안보체계가 뒷받침 돼야한다"고 법안발의 배경을 설명했다.

다만 이처럼 자원안보가 강조되고 있음에도 나서려는 기업이 거의 없다는 것은 반드시 해결해야 할 숙제다. 분위기는 조성됐지만 플레이어가 없다는 의미다. 일부 기업이 나서고는 있지만 광구개발이 아닌 리튬‧니켈 등 배터리 관련 광물에만 관심이 쏠리고 있다. 공공의 지원 아래 민간이 주도하면 최상의 그림이지만 실행여부는 여전히 미지수다. 먹음직스러운 유인책이 필요하다.

김동훈 기자 hooni@e2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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