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층분석] 10.31 계통 주파수 하락 사고, 그날 전력망에 무슨 일이
FR용 ESS 10분내 완전방전 2차 때 불능…일부 석탄은 비정상 응동

▲ 작년 10월 31일 전력계통 주파수 추이. 오전 10시 39분 동두천복합(동두천드림파워) 1,2호기가 동시 정지한 뒤 전력계통 주파수가 59.71hz까지 떨어졌고, 이후 14분 뒤 삼천포화력 3호기가 추가 정지했다. 당시 주파수조정용 ess(배터리)는 1차 발전기 고장 때 10여분 만에 완전 방전됐다.

[이투뉴스] 지난 10월 31일 오전 10시 39분 48초 동두천시 광암동 동두천드림파워. 시간당 약 60톤의 천연가스를 태우며 최대출력으로 전력을 생산하던 1716MW급 LNG복합발전소가 갑자기 멈춰섰다. 시험작업 중 누군가 가스배관을 잘못 건드려 연료공급이 중단됐기 때문이다. 2015년 준공된 이 발전소는 경기 최북단의 대용량 전원(電源)이다. 1기당 설비용량이 858MW에 달하는 대형 LNG복합 2기가 동시정지한 것은 매우 드문 일이다.

같은 시간 경기 안성·용인, 충남 계룡, 전북 김제, 전남 화순, 경남 의령, 울산 울주, 충북 충주 등에 분포한 한전 초고압변전소. 동두천 LNG발전소가 정지한 지 0.3초도 지나지 않아 이들 지역에 설치된 236MW 주파수조정용(FR) ESS가 일제히 배터리를 방전하기 시작했다. 수도권 북부 환상망(345kV 신포천~신덕은 구간)에 물려있던 1747MW의 발전력이 계통에서 증발하자 59.978Hz였던 국내 전력계통 주파수가 10초만에 59.710Hz까지 곤두박질쳤기 때문이다.

현행 전기사업법은 표준주파수 60Hz에서 ±0.2Hz만을 변동 범위로 허용한다. 그 이상을 벗어나면 일단 비상상황이 된다. 2011년 9.15 순환단전(정전) 직전 기록한 59.25Hz가 역대 최저치다. 계통에서 주파수는 사람으로 치면 맥박이다. 모든 발전소 터빈이 초당 60번씩 회전하고, 이 전기를 동력으로 바꿔주는 산업체 모터도 같은 속도로 돈다. 앞서 한전은 FR ESS를 도입하면서 석탄화력발전기로 확보하던 주파수조정 예비력 중 일부를 ESS로 대체해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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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두천복합이 정지한 직후 직선거리로 약 400여km 떨어진 경남 하동군 금성면 하동화력. 500MW급 3~8호기가 갑자기 출력을 20~28MW씩 높였다. 계통 주파수가 급락하자 발전기들이 이를 알아차리고 스스로 반응한 것. 전문용어로는 가버너 프리(Governor Free, GF)운전이라 부른다. 이런 식으로 당진·보령·태안·삼천포·영흥 등 전국 석탄 29기가 10초내 높인 출력은 655MW. 이와 별도로 서인천·신인천 등 가동 LNG발전소들도 10~20MW씩 발전량을 높였다.

FR용 ESS와 석탄화력 및 LNG복합이 제때 개입한 덕분에 주파수는 동두천 고장으로부터 약 30초, 최저 주파수 기록 후 20초 뒤 다시 정상범위(59.8Hz)로 진입했다. 하지만 이후로도 일정시간 주파수는 불안한 파형을 그리며 정상치를 회복하지 못했다. 때마침 제철소에서 전기로(爐)를 가동해 약 350MW의 부하가 발생해서다. 수백MW씩 수시로 전력을 끌어쓰는 제철사들은 전기로 가동여부를 전력당국에 별도 통보하지 않는다. 사전 제어가 안되는 대용량 부하다.

그럼에도 계통 주파수는 전국 발전기들의 자발적 GF 참여에 힘입어 동두천고장 4분 28초 뒤 59.9Hz를 회복했고, 늦가을 월요일 오전 발생한 계통 응급상황도 그렇게 해프닝으로 마무리 되는 듯 했다. 계통 주파수가 정상을 벗어나는 일은 많아야 연간 2~3회, 길어도 10분을 넘기지 않는다는 게 계통 전문가들의 전언이다. 하지만 한숨 돌리려는 찰나 예기치 않은 고장사고가 또 터졌다. 오전 10시 53분 53초, 동두천복합 정지로부터 14분 2초가 지난 시점이다.

▲ 동두천lng복합화력(왼쪽)과 삼천포석탄화력(오른쪽)

이번에는 한반도 최남단 삼천포에서 석탄화력 1기(삼천포 3호기)가 멈춰섰다. 당시 전력수요는 6499만kW. 산업체 조업과 상업용 부하가 한창 늘고 있던 때다. 가뜩이나 계통이 불안한 상황에 엎친데 덮친격으로 530MW를 생산하던 발전기가 불능상태가 된 셈이다. 아직 정확한 원인분석이 나온 것은 아니지만, 앞서 일정시간 지속된 저주파수에 가장 취약한 조건에 있던 발전설비(삼천포)가 고장을 일으킨 것으로 관계자들은 추정하고 있다.

그렇게 60Hz를 향해 상승하던 주파수는 삼천포 추가정지 3분 30초 뒤 또다시 허용범위(59.8HZ) 아래(59.788Hz)로 주저앉았다. FR용 ESS들이 다시 소방수 역할을 수행해야 할 상황이 됐다. 그러나 이미 ESS들은 첫 번째 동두천복합 정지 때 저장된 전력을 모두 계통에 쏟아부은 뒤였다. 불길이 되살아났는데 끼얹을 물이 바닥난 격이다. 한전의 사후분석에 의하면, 동두천복합 고장 때 약 10분을 버틴 ESS는 2차 고장 때 사실상 아무런 역할을 하지 못했다.

이런 상황에 대비한 발전설비가 ‘전통 ESS’인 양수발전소다. 하지만 공교롭게 이날 아침 수요예측 오차(약 300만kW)가 발생하면서 모든 양수는 두 차례의 발전소 고장 전 이미 가동되고 있었다. 게다가 2차 고장정지 후 일부 제철소들은 최대 380MW의 전력을 끌어쓰다가 돌연 450MW만큼 사용중단하는 등 주파수 훼방꾼 노릇을 톡톡히 했다. 이 때문에 계통 주파수는 오전 10시 57분과 11시 7분 2차례나 더 허용치(59.8Hz) 아래로 떨어졌다.

기준치에서 1Hz이상 주파수가 하락하면 전국 각 변전소에 설치된 저주파계전기(UFR)는 정해진 순서와 양만큼 부하를 자동차단하도록 설계돼 있다. 전국적인 광역정전을 막기 위해 중요도가 떨어지는 순서대로 강제 단전하는 최후의 조치다. 현행 중앙급전시스템(EMS)은 이런 지경에 이르기 전 AGC(자동발전제어)로 계통에 연결된 각 발전소의 출력을 조정해 수요-공급간 균형을 맞춘다. 계통 운영상 GF와 AGC는 자동차의 가속페달 미세조작과 같다.

▲ 연도별 한전 주파수조정용 ess 구축 현황 ⓒkepco

이날 중앙전력관제센터는 두 차례의 추가 주파수 하락과 장기간의 회복 지연을 비정상 상황으로 간주하고 각 발전소에 입찰량만큼 최대로 발전기를 가동할 것을 지시했다. 둘쭉날쭉한 GF나 AGC개입으론 주파수 회복에 한계가 있다고 봤다. 하지만 어찌된 일이지 석탄화력 21기는 출력상향 조치 후 되레 발전량이 550MW 급감했다. 그나마 각 발전기 출력이 수분간격을 두고 떨어진 것은 불행중 다행. 여기에 석탄 3기는 출력 상향에 상당시간을 지체했다.

이같은 우여곡절을 겪은 끝에 오전 11시 21분 계통 주파수는 60Hz를 회복했다. 최초 동두천 고장 후 42분이 경과한 시간이자 뒤늦게 급전지시를 받은 LNG발전기들이 전력생산에 본격 가세한 시점이다. 계통 주파수가 이처럼 장시간 정상치를 회복하지 못한 것도, FR ESS가 완전 방전된 것도, 출력 상향 지시에 일부 발전기들이 비정상 반응을 보인것도 모두 처음이다. 전력당국과 발전사들은 원인규명과 재발방지를 위해 아직 머리를 맞대고 있다.

이상복 기자 lsb@e2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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