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사와 도시가스사 CEO의 공통분모는 ‘公益’

“소명의식으로 사회에 기여하고 싶다”…지역주민 행복 앞장

내부의 소통, 고객과의 소통, 지역과의 소통이 경영 키워드

벌칙위주 규제는 임시방편…자율에 맡기고 컨설팅 이뤄져야

▲ 황인규 사장이 종합상황실에서 도시가스 공급현황을 설명하고 있다.

[이투뉴스] “검사 때는 내가 결정할 일만 있는 줄 알았는데, 기업 경영에 나서보니 내가 결정할 일이 그리 많지 않은 걸 알았다. 세상은 혼자 사는 게 아니라는 것을 더욱 실감하고 있다. ‘운칠기삼(運七技三 )이라는 말이 있는데 내게는 ‘운구기일(運九技一)’이 맞는 말이라 생각된다. 민간기업의 CEO가 된 것도 내가 원한 게 아니라, 알 수 없는 운명이 나를 여기까지 끌어왔다. 내게 맡겨진 소명(召命)이라는 생각도 든다 ”

1991년부터 시작된 24년간의 검사 생활에 이어 2014년 3월 충남도시가스 대표이사를 맡은 황인규 사장은 검사시절과 기업 CEO의 차이점을 묻자 이렇게 답했다.

그의 원래 꿈은 외교관. 중·고등학교를 다닐 때 장래희망으로 삼은 게 외교관이다. 이후 국가발전에 뭔가 도움을 주고 싶다는 생각에 역할을 찾은 게 행정고시를 통한 공무원이었다.

하지만 아버지인, 대한도시가스(現 코원에너지서비스) 창업주 故 황순필 회장의 반대로 사법고시로 진로를 바꾸게 됐다. 서울대 법대에 진학해서도 특허를 전문으로 하는 국제변호사가 될 생각이었으나 집안에서 판·검사를 기대해 1991년 서울지검 검사로 법조계에 발을 들였다.

“판·검사를 선택하는데 나는 검사를 원했다. 판사는 기록을 통해 모든 것을 판단한다. 기록 안에 묻혀 있는 셈이다. 현장을 파악하고, 세상과 직접 부딪히는 검사가 내 적성에 맞다고 생각했다. 원래는 검사생활을 3년 정도 한 뒤 특허분야 국제변호사의 길을 가려했으나, 아버지가 병환으로 쓰러지면서 행로를 바꾸지 못했다”

당시 일각에서 황순필 회장의 장남으로서 지분을 통해 대한도시가스 경영에 참여하는 게 아니냐는 설이 퍼졌다고 전하자 본인은 전혀 그럴 마음이 없었다며 선을 그었다. SK E&S와 공동경영체제에서 경영에 뛰어들 생각이 없었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운명은 또다시 그를 불렀다. SK E&S와의 한집 살림이 지분정리를 통해 각각 단독경영체제를 갖추게 된 것이다. 2011년 11월 SK E&S는 대한도시가스의 개인 대주주인 황인규 대표 외 3명이 보유한 지분 전량을 인수하는 대신 대전지역에 도시가스를 공급하는 자회사인 충남도시가스의 경영권을 양도하는 맞교환이 이뤄졌다. 양사 주식가치를 평가해 대한도시가스의 개인 대주주 지분 전체와 SK E&S가 보유한 충남도시가스 지분 일부를 맞바꾼 것이다.

이후 충남도시가스 공동대표를 맡았던 노승주 부회장의 병환이 깊어지면서 그는 불가피하게 최고경영자로서 도시가스업계에 발을 들여놓게 된다. 2014년 2월 인천지검 부천지청장을 끝으로 검사생활 24년 만에 새로운 길을 걷게 된 셈이다.

◆가업과 운명이 검사에서 CEO로 이끌다

“도시가스업계와 인연을 맺은 건 어찌 보면 가업과 운명으로 이미 정해진 소명이 아니었나하는 생각이 든다. 사회생활 전반부 24년이 관직으로 국가에 봉사하는 시간이었다면, 후반부는 도시가스사업을 통해 또 다른 방식으로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기회라 본다. 검사와 도시가스사 CEO의 본질은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검사는 벌을 주기 위한 것이 아니라, 사회 질서를 유지하고 모든 사람들이 정상적인 삶을 영위하도록 돕는 첨병이다. 도시가스사업도 다르지 않다. 단순한 수익 창출만이 목표가 아닌 모든 소비자, 바로 우리의 이웃들이 안전하고 안정적으로 저렴한 연료를 사용해 보다 안락하게 생활할 수 있도록 돕는 지원군이다”

법이 정의를 구현하는 것이라면, 도시가스사업이 추구하는 것은 안전·안정적 공급을 통한 이웃의 행복이라며 검사와 도시가스사 CEO의 공통분모는 공익(公益)이라고 강조한다. 그는 아버님이 생전에 지인들과 건배를 나눌 때 늘상 ‘안전’이라고 제창한 것이 기억난다며 미소를 지었다.

‘안전’에 대한 얘기가 나오자 ‘규제’에 대한 견해를 물었다. 도시가스사업의 특성 상 안전과 규제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이기 때문이다.

“많은 분들이 규제를 없애야 한다고 말하는데 난 생각이 다르다. 규제는 필요하다. 다만 과태료 등 처벌 위주의 규제가 아니라, 컨설팅 등을 통한 개선에 초점을 두는 규제여야 한다. 그러려면 정책 담당자가 현장을 알아야 한다. 미국 FDA의 경우 약품의 효능과 안전성에 대한 관리·감독이 철저하다. 만약 문제가 발생하면 컨설팅을 통해 개선의 기회를 주고, 6개월 뒤 이를 재평가하는 절차를 밟는다. 그런데 모두 그런 것은 아니지만, 우리는 현장을 잘 모르는 담당공무원들이 일단 시끄러우니 제동을 걸고 보자는 식의 규제를 펼친다.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다보니 현장과의 괴리가 생기고 부작용이 적지 않다”

임시방편의 규제는 겉으로는 문제가 해결된 듯하지만 근원적으로 해결된 게 아니라는 점에서 유사한 문제가 또 다시 발생한다는 것이다. 그는 자율적으로 기준을 높여 지키도록 유도하고, 그에 따른 책임을 지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한다.

경영을 맡게 된 후 가장 비중을 두는 게 뭐냐고 묻자 ‘소통’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청주지검에서 일할 때다. 검찰조직이 워낙 수직구조이다 보니 검사 간은 물론 검사와 직원 간 화합이 쉽지 않다. 고심 끝에 합창단을 만들었다. 알다시피 합창이라는 게 어느 한사람이 아니라, 모두가 화합해야 결실을 맺는다. 남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하기 때문이다. 이후 분위기가 한결 좋아졌다”

지난해 10월 열린 창립 31주년 기념행사에서 직접 뮤지컬 ‘지킬 앤 하이드’의 ‘지금 이 순간’ 독창무대를 펼쳐 직원과 가족들의 눈길을 사로잡은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것도 소통의 의미냐고 물었다.

“그렇다고 할 수 있겠다. 노래를 좋아한다. 대법원 강당에서 진행된 법조음악회에서 성악곡을 뮤지컬식으로 불러 호평을 받은 적도 있다. 지금까지 회사의 창립기념 행사 때마다 축구 등의 경기를 많이 해왔다는 말은 듣고, 소통과 화합 차원에서 프로그램을 바꿨다. 뮤지컬과 합창, 아빠 일터 체험, 포장마차 운영, 전 임직원 및 가족 식사 등의 프로그램을 진행했는데 모두가 좋아했다. 올해부터 기존 9단계의 직급을 5단계로 줄이고, 부장이나 과장 등의 호칭 없이 모두 ‘님’으로 부르도록 했는데, 이것도 소통의 일환이다”

지역과의 소통도 강조했다. 도시가스사의 고객이 지역주민이기 때문이다. 지자체나 유관기관과의 협력체제를 다지는 것은 물론 지역경제발전에 앞장서는 게 당연하다는 설명이다. 대전지역에는 ‘먼저가슈’라는 선진교통문화 정착을 위한 시민모임이 있는데, 이 시민모임에는 약 4만여명의 회원이 활동하고 있으며, 황인규 대표는 지역과의 소통 차원에서 이 단체의 회장을 맡았다고 한다.

기업이라는 게 결국 수익을 좇는 조직체 아니냐는 물음에 그는 맞기도 하고, 틀리기도 하다고 말했다. 단기실적에 ‘올 인’하지 말라는 의미라는 설명이 뒤따랐다. 단기실적도 좋지만 여기에만 초점을 맞추면 보다 중요한 긴 안목이 없어진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충남도시가스는 각각 평가에 따른 보상에서도 단기실적과 함께 중장기 차원의 성과도 반영토록 하고 있다고 밝혔다.

◆패러다임 급변 대응…에너지 솔루션팀 등 준비

▲ 본사 부지 내 한켠에 설치된 지구정압기 설비의 운영·관리실태를 설명하는 황인규 사장.

급변하는 글로벌 시장의 변화와 함께 향후 도시가스사업의 패러다임도 변화하지 않겠느냐고 묻자 ‘변해야 한다’고 강한 어조로 답했다.

“모두가 잘 아는 미키마우스는 지난 50년 동안 모습이 조금씩 바뀌었다. 그런데 미키마우스보다 더 빠르게 변화하는 게 있다. 우스갯소리 같지만 피카츄다. 피카츄는 스스로 변신한다. 도시가스가 국가에너지 안보와 기후변화 대응 에너지로 분명한 역할을 하겠지만, 변하지 않으면 언제든 외면 받을 수 있다. 일본의 경우 가스산업 전면자유화 등 패러다임이 급속히 바뀌지 않는가. 언젠간 우리나라 도시가스사업도 자유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준비하지 않으면 안된다. 소비자로부터 선택받는 에너지원으로 지속성장을 이루기 위해서는 상품을 파는 게 아닌, 고객과의 소통을 통한 신뢰가 이뤄져야 한다”

에너지산업 패러다임이 빠르게 변화하면서 연료전지, 태양광, 바이오가스 등 신재생에너지에 대한 도시가스사의 관심도 한층 커졌다.

“신기후체제에 따라 장기적인 측면에서 정부 정책이 신재생에너지 위주로 전환되고, 이를 통해 신재생에너지에 대한 기술혁신은 더욱 가속화될 것으로 본다. 기존 기간시설을 가진 도시가스사업자는 위기일 수 있는 상황을 오히려 기회로 만들 수 있다는 게 내 생각이다. 기존 고객의 에너지 사용 패턴에 대한 데이터 등 자료를 활용해 최적화된 고객서비스를 펼쳐 경쟁우위에 설 수 있다는 판단이다. 급변하는 에너지산업 패러다임에 대응하기 위해 에너지 솔루션팀을 신설하는 등 만반의 준비를 해나가고 있다”

충남도시가스는 도시가스사업과 함께 CES(구역전기)사업을 비롯한 집단에너지 사업도 전개하고 있다. 대부분 집단에너지사업자가 적자를 면치 못하는 가운데 CES사업자는 단 한 곳도 예외 없이 모두 운영 자체를 힘겨워하고 있는 실정이다.

정책·제도 등의 구조적 문제라는 점에서 해결책이 쉽지 않은 게 아니냐고 말을 건넸다. 이에 대해 최근 CP(용량요금)가 인상되는 등 정부 차원에서도 이를 해결하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것으로 안다는 그는 충남도시가스가 운영하는 학하발전소의 경우 중앙급전발전으로 등록이 어려워 CP를 받기 어려운 부분이 있고, 높은 원가대비 낮은 요금으로 인해 근본적인 요금구조의 어려움이 많다면서, 어느 곳 한군데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에서 정부와 업계가 지속적으로 고민해나갈 과제라며 말을 아꼈다.

그는 창립 31주년 기념행사에서 기념사를 통해 ‘미래 혁신’을 강조했다.

“급변하는 경영환경 속에서 미래를 대비하는 방법 중 하나는 변화와 혁신을 통해 끊임없이 현재보다 더 나은 수준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작은 지류가 모여 큰 강물이 되듯이, 구성원들의 작은 혁신 활동이 모인다면 미래 기업성장의 큰 원동력이 될 것으로 본다”

그런 의미에서 ‘미래 혁신’을 강조했다고 배경을 설명하는 황 사장은 ‘최고의 경쟁력을 갖춘 종합 에너지서비스 회사’라는 비전이 우리의 혁신이 모여 완성된 충남도시가스의 미래 모습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채제용 기자 top27@e2news.com

WHO?

황인규 대표이사 사장은 1961년 서울 출신으로 지금의 코원에너지서비스인 대한도시가스 창업주 고(故) 황순필 회장의 장남이다.

1979년 서울 대성고등학교와 1983년 서울대 법대 법학과를 졸업한 후 1986년 서울대 행정대학원 정책학과 수료를 거쳐, 1997년 스탠포드대 로스쿨 비지팅 스콜라 과정을 마쳤다.

1988년 제30회 사법시험에 합격, 1991년 사법연수원 제20기를 수료한 후 1991년 서울지검 검사로 법조계에 발을 들였다. 1993년 부산지검 울산지청, 1995년 수원지검 성남지청, 1997년 부산지검, 1999년 법무부국제법무과, 2002년 서울지검 동부지청 검사를 지냈다. 

이어 2003년 서울동부지검 부부장검사, 2004년 대구지검 부부장검사(외교통상부장관 법률자문관 파견), 2006년 청주지검 부장검사(EU 대표부 파견근무), 2007년 인천지검 형사4부 부장검사, 2008년 서울동부지검 형사2부 부장검사, 2009년 서울중앙지검 외사부 부장검사, 2009년 대전지검 서산지청지청장, 2010년 대검미래기획단장, 2011년 제주지검 차장검사, 2012년 의정부지검 차장검사를 맡았다. 

이후 2013년 인천지검 부천지청지청장에 발령된데 이어 2014년 1월 퇴임해 3월 충남도시가스 대표이사로 선임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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