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호 한국전기연구원 (경제학박사)

[이투뉴스 칼럼/ 이창호] 벌써 찬바람이 불기 시작한다. 봄여름을 뜨겁게 달구었던 미세먼지도 누진제 요금폭탄도 잠시 숨을 고르고 있다. 그러나 본격적인 겨울에 들어서 난방수요가 늘기 시작하면 언제 또 다시 수면위로 올라올지 모른다. 우리나라 전력산업은 해를 거듭할수록 풀어야할 난제들만 쌓여가고 있다. 온실가스 감축, 신규 원전건설, 미세먼지 대책, 송전망 확충, 전력시장 개선, 소매경쟁, 요금적정성 등 굵직한 것만 나열해도 숨이 벅차다. 이중에서도 온실가스 감축문제는 전력산업에 지속적으로 큰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 우리나라도 얼마 전 파리협정 비준동의서가 국회에서 통과됨에 따라 조만간 발효될 것이라 한다. 이제 협정 당사국으로써 온실가스감축목표 설정과 이에 따른 이행실적을 정기적으로 보고하여야 한다. 특히 발전부문은 온실가스 배출량이 많아 앞으로 실질적인 조치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발전부문 온실가스 감축에 대한 논의는 이미 오래전에 시작되었다. 정부의 에너지 정책이나 계획에 있어 최우선 과제이자 목표의 하나이다. 근래에 수립된 ‘에너지기본계획’이나 ‘전력수급기본계획’ 에서도 지속가능한 에너지믹스와 전원믹스를 강조하고 있다. 이러한 정책과 계획이 잘 마련되어 있음에도 지금까지의 성과는 크지 않은 것 같다. 여전히 온실가스배출량은 지속적으로 증가하는데 반해 실질적인 감축수단이나 성과는 미약하다. 그럴듯한 비전과 목표를 펼쳐보지만 구체적이고 실효성 있는 방안은 잘 보이지 않는다. 모두가 감축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공감하지만, 아무도 실행하지 않는 현상이 이어지고 있다. 발등에 불이 떨어졌지만 남의 일처럼 방관하고 먼 산을 쳐다보는 격이다. 지나간 것은 차치하고라도 앞으로가 문제이다. 지금까지 그랬듯이 ‘어떻게 되겠지’ 하는 안이함으로 수수방관하는 사이 벌써 너무 멀리 오지는 않았는지….

우리나라 발전량은 2015년 기준으로 530TWh이며 온실가스 배출량은 약 2억2000만톤으로 추정된다. 이중 석탄발전이 207TWh로 약 39%를 차지하나, 온실가스 배출량은 1억8000만톤으로 80% 이상이다. 오는 2029년에는 발전량이 830TWh로 지금보다 300TWh 정도 늘어날 것이라 한다. 온실가스 배출량은 3억톤을 훌쩍 뛰어 넘을 것으로 보인다. 설사 노후설비 폐지, 미 착공설비 지연과 같은 조치를 취한다 하더라도 현재보다 7000만~8000만톤 정도의 배출량 증가가 예상된다.

온실가스 감축을 위해서는 온실가스 배출이 많은 전원을 획기적으로 줄이거나 발전소 운전 순서를 바꾸는 수밖에 없다. 예상되는 전원구성이나 현재의 발전소 운전기준 만을 놓고 앞으로도 온실가스 감축이 불가능하다. 전자의 경우, 계획된 석탄설비의 대부분이 건설 중이거나 이미 착공단계로 전원구성을 크게 변경시키기 어렵다. 후자의 경우 또한 석탄과 가스가격의 역전이 이루어지지 않는 한 급전순위가 바뀌지 않아 석탄발전이 줄지 않는다. 현행 시장운영규칙에 따르면 가변비용, 즉 연료비가 낮은 설비부터 가동하도록 되어있어 멀쩡한 발전소를 폐지할 수 없다. 온실가스 감축을 위해서는 결국 발전소의 운전 순서를 바꾸는 수밖에 없다. 즉, 일부 석탄발전을 가스를 사용하는 복합이나 열병합발전으로 대체하는 것이다.

현재 석탄발전은 고장이나 예방정지를 제외하고는 계속 가동된다. 이용률이 90%를 상회하고 있다. 만약 현재의 배출량 수준을 유지하려면 2029년에는 석탄과 가스복합의 이용률이 각각 40%와 80%가 되어야 한다. 2015년 현재 두 전원의 이용률이 각각 90%와 45%인 것에 비추어 본다면 에너지믹스의 획기적인 변화이다. 만약 발전부문 온실가스 배출량을 지금보다 조금 높게 허용해 준다면 석탄과 가스복합의 이용률을 60% 선에서 유지하는 것도 가능할 것이다. 에너지믹스 변화가 요금에 미치는 영향을 차치하고 온실가스 대응이라는 측면에서만 본다면 석탄화력의 이용률 제약과 가스복합이나 열병합발전의 확대하는 방향으로 나가는 것이 불가피하다. 저렴한 석탄대신 비싼 가스로 발전연료를 전환하는 것이 과연 타당한가? 연료가격만을 놓고 본다면 석탄이 가스에 비해 저렴한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온실가스나 미세먼지로 인한 환경비용, 원거리 송전에 따른 제반비용, 분산전원의 편익 등 반영되지 않은 간접적인 비용이나 사회적 편익을 고려한다면 양자 간의 차이가 상당히 좁혀질 것으로 보인다. 최근 연구에 따르면 송전설비 건설 및 전력수송으로 인한 손실비용만 따져도 kWh 당 15원 정도이다. 석탄발전 대비 가스발전의 온실가스 회피비용도 kWh당 10∼15원 수준으로 추정된다. 만약 이러한 것을 모두 반영한다면 실질적 조달비용의 차이는 그렇게 크지 않을 것이다. 이제 연료선택의 문제에 있어서도 다양한 가치를 고려하는 전향적으로 접근이 필요할 것이다.

적정 에너지믹스가 설정되면 이를 기술적으로 실현하는 방법은 얼마든지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시장규칙을 바꾸거나 전원별 조달방식의 변경도 생각해볼 수 있다. 예를 들어 표준협약과 같은 계약방식을 동해 석탄발전의 고정비용을 적정하게 보장해 준다면 설사 이용률이 낮아지더라도 사업자의 수익에는 큰 영향이 없을 것이다. 이러한 조달방식은 현재 우리 전력시장이 봉착하고 있는 여러 가지 문제점도 함께 해결할 수 있으며, 전력시장의 발전방향과도 맥을 같이 한다 하겠다.

올여름 엄청난 폭염으로 최대전력이 크게 증가하였다. 기후 변동성 확대 등으로 앞으로도 수요의 불확실성이 커질 것으로 보인다. 설비구성도 이러한 불확실성에 대한 대응력이 높이는 방향으로 나가야 한다. 한번 의사결정을 하고나면 되돌릴 수 없는 설비보다는 여건변동에 대응할 수 있는 유연한 설비를 늘려나가야 한다. 수요지 중심의 친환경, 고효율, 분산형 설비의 비중을 높이고 이들 설비가 실질적으로 그 지역의 수요에 기여할 수 있는 방향으로 나가야 한다. 그동안 전력산업이 안주해온 틀에서 벋어나야 할 때이다. 더 이상 외면할 수 없는 발전부문의 온실가스 감축을 위해서 실질적이고 유효한 해법이 필요하다. 온실가스 대응이라는 커다란 도전을 통해 우리 전력산업의 미래를 새롭게 만들어가야 한다.

<ⓒ이투뉴스 - 글로벌 녹색성장 미디어, 빠르고 알찬 에너지·경제·자원·환경 뉴스>

<ⓒ모바일 이투뉴스 - 실시간·인기·포토뉴스 제공 m.e2news.com>

저작권자 © 이투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