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간 냉소 속 공기업 부담 가중…해외사례 반면교사 재정비 필요

[이투뉴스] 박근혜 정부의 에너지신(新)산업은 잘 돼야 한다. 그동안 나라를 먹여 살린 산업이 줄줄이 쇠락을 길을 걷고 있고, 이렇다 할 돌파구도 보이지 않으니 더 그렇다. 바라기는 “2030년까지 100조원의 신시장과 50만개의 일자리를 창출” (작년 11월 30일 21차 파리 기후변화 당사국 총회 박근혜 대통령 기조연설 中)했으면 한다.

더욱이 에너지신산업은 지금까지 10조원, 2020년까지 32조원이 추가로 투입되는 현 정부 최대 역점사업 중 하나다. 가급적 빠른 시일 안에 걸맞은 성과를 내 성장절벽과 맞닥뜨린 경제의 도약대가 돼야 한다. 그런 맥락에서 ‘시장으로(규제개혁), 미래로(기후변화 대응), 세계로(수출산업화)’를 표어로 내건 신산업의 좌표와 시의성을 부정하는 사람의 없다.

하지만 막대한 예산과 파격적 정책지원을 등에 업은 이 산업의 미래에 대해 최근 들어 일선 현장에서는 적잖은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명분과 의욕만 앞세운 채 지금처럼 정부가 속도전에만 치중하다보면, 자칫 이명박 정부의 4대강 사업이나 해외자원외교처럼 천문학적 손실만 초래하는 '에너지신(辛)산업'이 될 수 있다는 경고다.

‘천문학적 수업료 지불할 수 있다’ 경고음
현 에너지신산업은 사실상 공기업이 주도한다. 한전을 위시한 전력공기업에 ‘마중물’ 역할을 맡겼다는 게 정부의 설명이다. 반면 신산업의 진짜 주체랄 수 있는 민간은 여전히 미온적이다. 정부가 규정한 신산업이 새 성장동력이 될 것이란 확신을 갖지 못한 채 신규투자보다 공적자금 수혜사업 참여에 관심이 크다. ‘주전도, 후보도 없는데 심판만 경기장을 채우고 있다’는 비아냥이 나오는 이유다.

일차적 원인은 정부가 제공했다는 지적이다. 에너지컨설팅기업의 한 CEO는 “신산업이라고 포장했지만 실상은 내용이 없는 사업들을 핵심사업으로 지정해 꿰맞추는 일이 너무 많이 벌려졌다”면서 “글로벌 트렌드나 시장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상황에 탁상공론으로 정책을 밀어붙인 것이 신산업에 대한 민간의 냉소를 부른 결정적 패착”이라고 꼬집었다.

재경 국립대 소속 A 교수도 “기업은 확신 없이 움직이지 않는다. 규제완화나 정책 일관성에 대해 초창기에 정부가 어떤 시그널을 민간에게 줬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며 “거꾸로 어느 정도 여건이 무르익은 최근에는 과도한 관심과 함께 정책개입이 빈번하다. 에너지신산업의 미래 주체가 누구인지 자문해 볼 때다”고 말했다.

정부 과잉개입, 되레 민간 경쟁력 약화
단기 성과 만들기에 매몰돼 면밀한 검토없이 공기업 참여를 강권하거나 특정사업에 편중된 정책을 남발하는 것도 훗날 부메랑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일정규모 내수시장 조성과 육성은 필요하지만, 단순히 시장규모만 키우는 정책은 되레 국내기업의 국제 경쟁력을 떨어뜨리는 독사과가 될 수 있다는 것.

전력공기업 내부 관계자는 “한전의 경우 산업부가 톱다운으로 하달한 계획에 따라 한 해 수조원을 신산업에 투자하고 있는데, 사업성이 없어 내부적으로 이견이 있어도 이의를 제기하기 어렵다”면서 “향후 책임소재를 따질 일이 생기면 기록을 안 남긴 정부는 빠지고 공기업이 독박을 쓸 수밖에 없다. 지난 정부의 자원개발 투자책임이 힘없는 공기업들에 전가된 것과 같다”고 말했다.

일부 국내 대기업이 선점한 특정산업을 뒷받침하는 구조의 정책도 부작용이나 역효과를 부를 소지가 크다는 게 전문가들의 우려다. 일례로 ‘신산업의 총아’로 불리는 ESS는 시장 점유율 대비 양극재나 음극재, 분리막 등의 핵심소재 국산화율이 턱없이 낮다. 원소재 가격은 오르는데 중국, 일본 등 해외기업과의 경쟁이 치열해 지면 매출을 늘려도 '남는 게 별로 없는 장사'가 된다.

정부는 4000억원 규모의 주파수조정용 ESS사업에 이어 최근 '태양광 연계형 ESS사업'을 추가 개발해 내수시장 키우기에 주력하고 있다.

태양광업계 관계자는 “국내 대기업 일감을 만들어 이 산업을 키우면 향후 미래 먹거리 산업이 될 것이라고 보는데 이는 큰 착각”이라며 “이런 형태의 정책지원이 오히려 세계시장에 대한 안목을 저해하고 내수시장 안주를 불러 장기적으론 우리기업들의 경쟁력 도태를 야기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 관계자는 “일본은 후쿠시마 원전사고 이후 발전차액지원제(FIT)를 도입해 태양광에 높은 보조금을 줬는데, 이때 내수시장에 안분지족(安分知足)했던 샤프나 산요 등의 일본 대기업들은 경쟁력을 잃어 주인이 바뀌었고 중국기업에 시장을 내줬다”면서 “특정기업이나 산업을 염두에 둔 우리정부의 탁상공론 정책이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사례”라고 조언했다.

전문가들은 골든타임 사수를 위한 속도전 못지 않게 에너지신산업의 내실을 다지고 미래좌표를 다시 설정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J 에너지컨설팅기업 CEO는 "새로운 것은 항상 옛것에서 나온다는 온고지신의 정신을 살려 과거 정책사업에 대한 냉정한 평가와 반성이 선행돼야 한다. 우물안에서 정부자금을 나눠먹고 성과도 불분명한 선심성 사업을 재탕하는 현 구조로는 신산업의 성공도 담보하기 어렵다"면서 "현장이나 다양한 전문가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 정책을 재정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과거의 실패에서 아무런 것도 얻지 못하고 책임을 지지 않는 사회시스템은 영원히 그 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비극은 엄청난 실패 비용을 국민만이 감당해야 한다는 것"이라고 부연했다.

이상복 기자 lsb@e2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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