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동성 확보한다며 사옥매각·사업철수, 부채 돌려막기도
도마 위에 오른 기관장 리더십…노사갈등으로 번지나

[이투뉴스] 석유공사가 잇따른 악재에 신음하고 있다. 공기업으로서는 유례 없는 유동성 위기를 겪으면서 수익성 낮은 사업의 철수, 해외채권 발행, 사옥 매각에 나서는 등 손실을 메우기 위해 극약처방을 내렸기 때문이다. 설상가상으로 최근 울산비축기지 폭발사고까지 발생하면서 구설과 근심이 연일 계속되고 있다. 여기에 올해 초 취임한 김정래 사장의 리더십이 아쉽다는 평가마저 제기되면서 내부결속이 절실하다는 분석도 나온다.

◆ 사옥 매각, 이번엔 적임자 찾을까
석유공사는 사옥매각이라는 전례가 없는 초강수를 뒀다. 건설비용 1860억여원, 감정평가액 2212억원인 울산 신사옥은 '유동성 확보'라는 명목으로 준공한 지 2년도 채 안된 시점에서 주인이 바뀔 처지에 놓였다. 그러나 이마저도 술술 풀리지 않는 모습이다. 1차 입찰에서 매수자가 나타나지 않아 유찰되면서 일각에서 제값도 못받는 것 아니냐는 암울한 전망도 나오는 상황. 지난 19일 재입찰 접수가 끝났지만, 공사는 이에 대해 철저히 함구하며 전보다 조심스런 입장을 보이고 있다. 

석유공사에 따르면 이번 재입찰에서는 입찰 조건을 일부 수정해 5년으로 정했던 임대차기간을 최대 5년 한도 내에서 입찰자가 제시할 수 있도록 하고, 공사의 우선매수청구권 행사시기도 임대차 개시 5년 이후 매년 가능토록 바꿨다.

그러나 수정된 조건도 매수자의 구미를 당기기엔 쉽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사옥과 부지 매각 후 석유공사가 이를 다시 임차(Sale and Leaseback)하고 우선매수청구권이 부여되는 조건에 적잖은 부담이 따랐을 거란 분석이다.

석유공사가 낙찰자에게 주는 임대차 보증금은 219억9400만원, 연 임대료는 85억2700만원(최초 5년간)으로 매수자는 최초 5년까지 646억2900만원을 확보할 수 있지만, 이후 공사가 우선매수권을 행사하지 않을 경우 리스크 발생을 떠안아야 한다. 5년 후 부동산 경기에 따라 희비가 엇갈릴 수 있는 위험을 안고 2000억원이 넘는 사옥을 매수할 적임자가 나타날지 회의적이라는 의미다.

석유공사가 얻을 수 있는 실익에 대해서도 뒷말이 나온다. 한 내부 관계자는 “1800억원을 확보한다 해도 사업 추진에 이용하기엔 애매한 규모”라며 “재정적 효과보다는 자구노력안의 방침으로 매각하겠다는 약속을 이행하는 상징적 의미로 이해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매각 후 다시 임차하는 구조로 유동성을 확보하는 것은 담보대출과도 비슷해 적자손실에 어려움을 겪는 석유공사에 일시적 도움은 될 수 있으나 장기적으로는 더 큰 부담으로 작용할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사업철수·채권발행…자금부족 극복 위한 안간힘
지난 4일 에너지 공기업 국정감사에서는 자원공기업 3사의 이자비용 현황과 부채비율에 대한 지적이 이어졌다. 석유공사가 국감 산업위에 제출한 업무현황에 따르면 올해 반기말 기준 이자비용은 2152억원, 부채비율은 516%다. 사실상 돈 벌어서 이자도 못 갚고 있다는 뜻이다.

자금압박에 시달리는 만큼 사업철수도 이어지고 있다. 2014년 생산사업 2개와 탐사사업 3개를 종료시킨 공사는 지난해에 탐사사업 7개, 올해는 지난 8월까지 5개의 탐사사업을 종료했다. 하지만 공사 관계자는 “수익성에 따른 판단에 근거한 결정이며, 구조조정을 목적으로 한 인위적 판단은 아니다”고 부언했다.

또한 석유공사는 만기도래한 채권을 상환하고 운영자금을 확보하기 위해 최근 10억 달러의 글로벌본드를 발행했다. 부채와 이자를 갚기 위해 또다시 돈을 빌리는 악순환이다. 물론 석유공사는 다르게 해석한다. 석유공사 관계자는 자금조달에 어려움이 있다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과거 해외자원개발이 활발한 시기에는 채권 발행을 통해 신규투자 자금을 마련했겠지만, 지금은 목적성이 다르다”며 “리파이낸싱을 위해 발행한 것으로 공사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기업들이 통상적으로 진행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고 말했다.

◆ CEO 리더십 "뭔가 부족하다" 평가도
여기에 김정래 석유공사 사장의 리더십도 도마 위에 오르는 양상이다. 김 사장은 지난 2월 취임한 이후 4월 대대적인 자구노력 방안을 발표하고 과거에는 없었던 파격적인 인사조치와 구조조정을 펼치고 있다. 그러나 이에 대한 내·외부의 평가는 엇갈리고 있다.

일각에서는 이전 정부에서의 무리한 사업추진에 따른 연이은 사업 실패와 부실 의혹을 혁파하기 위한 개혁조치라는 평가가 있는 반면, 어려운 시기인 만큼 내부결속과 위축된 구성원들의 사기를 되살리는 데는 아쉽다는 분석도 나오기 때문이다.

국정감사에서도 일부 의원들은 김정래 사장의 태도에 불편한 기색을 감추지 않았다. 전임사장의 책임일 뿐 자신과는 상관없다는 식의 방관자적 태도를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이찬열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전임사장이 저지른 일이라고 방치하면 무책임한 것”이라며 “상황을 빨리 추슬러 사업을 본궤도에 올려 정상화시켜야함에도 방관하는 듯한 자세는 옳지 않다”고 질타했다. 또 저유가 시기에 대우조선의 시추선을 인양해 해외자원개발에 신규투자 할 생각이 없냐는 김정훈 새누리당 의원 질의에는 “우리가 더 힘들어서 할 수 없다”고 대답해 빈축을 샀다.

내부 관계자는 “힘든 시기에 조직을 이끄는 리더는 잘잘못을 따지기 이전에 먼저 구성원들을 끌어안고 품는 아량이 있어야 한다”며 “자신의 취임 전에 있던 일이라며 어쩔 수 없이 책임을 떠맡는 듯한 모습과 구성원들을 방만한 문제아로 보는 듯한 모습에서 팀워크나 조직 발전을 기대할 수 있겠느냐”고 일침을 가했다.

이런 가운데 김 사장은 취임 후 이전 사업에 대한 책임을 묻는 조치로 3급 이상 간부 10여명을 팀원으로 강등시켰다. 이 과정에서 수당의 한 종류인 ‘직무급’을 강등조치된 간부들에게 지급하지 않아 노사갈등으로 확산되는 모습도 보이고 있다.

팀원으로 강등된 만큼 더 이상 직무급을 받을 이유가 없다고 주장하는 사측과, 직무급은 보직에 대한 수당이 아닌 직무에 관련된다는 점, 해당 수당은 원래 받아야 할 기본 연봉에서 떼어내 마련한 만큼 본인에게 돌아가야 한다는 노조측 입장이 대립하고 있다.

석유공사 노조는 이같은 내용을 검찰에 고발하겠다는 입장이다. 뿐만 아니라 노조는 사측을 상대로 제기한 통상임금 소송에서 승소(1심)함에 따라 시간외 수당 체불금이 지급돼야 함에도 불구하고 지켜지지 않고 있다며 크게 반발하고 있다. 

이렇듯 첩첩산중인 석유공사는 최근 발생한 울산비축기지 폭발사고로 인해 또 한 번의 구설에 올랐다. 초기대응 과정에서 사고의 책임을 시공사인 SK건설로 떠미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는 이유에서다.

당초 "계약서 상 안전문제에 대한 책임은 원칙적으로 발주사가 아닌 시공사에 있다고 명시돼 있다"고 밝힌 석유공사는 논란이 거세지자, 김정래 사장이 직접 나서 "공사 측에 아무런 책임이 없다는 뜻은 아니다. 누구의 잘잘못을 떠나 사고 수습에 최선을 다하겠다"는 사과문을 발표했지만, 이마저도 눈치보기 처사라는 비난을 피하지 못하고 있다.

이주영 기자 jylee98@e2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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