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차 전력계획(23%)-2차 에기본(29%) 비중목표 실현 요원
운영원전 수명만료·건설원전 안전성 논란·전력수요 둔화 '산너머 산'
전문가 “독립·전문적 계획 필요” Vs “선택의 문제, 사회적 합의 관건"

[이투뉴스] 우리나라 에너지믹스의 중심에 있던 원자력 위상이 흔들리고 있다. 운영원전은 2020년 이후 줄줄이 설계수명 만료로 존폐기로에 놓이고 수급계획에 기(旣) 반영된 원전은 안전성 논란에, 신규 원전은 전력수요 둔화와 수용성 저하 등으로 먹구름이 드리운 상태다.

전문가들은 7차 전력수급기본계획과 2차 에너지기본계획상의 원자력 비중목표 유지가 현실적으로 난망한 만큼 차기 정책계획(8차 전력계획·3차 에기본)의 핵심 쟁점은 원자력 최소비중을 얼마나 가져갈 것인가로 모아질 것이란 관측을 내놓고 있다. 25번째 원전(신고리 3호기) 준공을 앞둔 국내 원자력 설비비중은 8월말 기준 21.9%(21.7GW)다.

16일 정부와 원자력계 내부 관계자들에 따르면, 중장기적으로 전체 믹스에서 원자력이 차지하는 비중은 당초 계획 목표는 물론 현 수준 유지도 어려울 전망이다. 지난해 확정한 7차 수급계획과 2년 전 2차 에기본의 최종연도 비중은 설비용량 기준 7차(2029) 23.4%, 2차(2035) 29%였으나 최근 수년간 여건변화로 목표값 하향 조정이 불가피하다는 뜻이다.

원전 확대 필요성을 강조해 온 진영조차 원자력 비중축소를 기정사실로 받아들이는 일차적 배경은 기존 운영원전 중 무려 12기, 9716MW가 8차 수급계획(2017~2031) 기간에 설계수명이 만료되거나 1차 계속운전 종료(월성 1호기 2022년 11월), 또는 영구폐로(고리 1호기 2017년 6월)되기 때문이다.

1980~1990년대에 집중 건설된 고리 2~4호기·한빛(영광) 1~4호기·한울(울진) 1,2호기·월성 2~4호기의 설계수명은 경수로형이 40년, 중수로형 30년인데 2022년부터 거의 매년 1~2기씩 운영허가가 끝난다. 이중 고리 1호기처럼 일부 원전에 폐로 결정이 떨어지면 원전비중은 그만큼 쪼그라들 수밖에 없다.

원자력정책 핵심 당국자는 “7차 전력계획과 2차 에기본의 원전비중은 전(全) 원전이 최소 한차례는 계속운전(수명연장)을 한다는 전제로 수립된 것”이라며 “그게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본다면 2차 에기본 목표는 고사하고 7차 목표(23.4%) 유지도 어렵다. 건설원전까지 차질이 빚어지면 최저 20%대로 주저앉을 수도 있다”고 내다봤다.

기존 수급계획에 반영된 건설원전과 신규 확정원전의 적기 건설, 또는 건설 이행 여부도 복병이다. 현재 건설 원전은 내년까지 신고리 3,4호기 및 신한울 1호기, 2018년 신한울 2호기, 2021년 신고리 5호기, 2022년 신고리 6호기 및 신한울 3호기, 2023년 신한울 4호기, 2026년 천지(영덕) 1호기, 2027년 천지 2호기 등 10기다.

이 가운데 올해 건설허가가 난 신고리 5,6호기의 경우 다수호기 밀집에 따른 안전성 논란과 9.12 경주 지진 이후 불거진 부지 부적합 논란에 휩싸여 있고, 탈핵 노선을 분명히 하고 있는 야당 측은 건설 중단 및 취소 법안을 쏟아내고 있다. 원전 당국 한 관계자는 “최소 건설공기(工期)가 상당기간 지연되는 상황은 피하지 못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7차 수급계획에 새로 반영된 원전 2기와 2018년 부지를 결정키로 한 신규 2기의 미래도 불확실성이 높다는 게 대체적 전망이다. 2026~2027년 준공을 목표로 하는 천지 1,2호기와 2028~2029년 삼척(대진 1,2호기) 또는 영덕(천지 3,4호기)에 건설예정인 추가 2기는 향후 전력수요 추이와 지역 수용성 개선 여부에 따라 운명이 갈릴 공산이 크다.

특히 에너지다소비산업 침체와 경제성장 부진으로 전력수요가 정체될 경우 건설 중인 발전소만으로도 공급력이 넘쳐 원전 등 기저부하 증설의 당위성은 사라진다. 원자력계가 원전사업 지속성을 좌우하는 최대 변수로 전력소비율을 꼽는 이유다. 업계 한 관계자는 “전력수요 둔화와 그에 따른 공급과잉 고착화는 기존 원전사업의 생존방식을 뿌리째 흔들 수 있는 요인”이라고 말했다.

이런 맥락에서 전문가들은 올해부터 내년 사이 수립할 8차 수급계획과 상위 계획인 3차 에기본이 미래 에너지시장에 대한 냉철한 분석과 전망을 토대로 원점에서 원전 비중을 포함한 최적 믹스를 도출해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손양훈 인천대 경제학과 교수는 "에너지믹스는 매우 전문적 분야로 단편적 지식이 아닌 총체적 접근이 필요하며, 원별 특성이나 각 원에 대한 과학기술적 지식과 미래 에너지시장에 대한 전망을 토대로 수립돼야 한다"면서 "전력수요의 변환기적 특성과 그동안 형식적으로 다루던 기후변화 대응, 국민적 인식 변화 등을 포괄적으로 담아내면서 큰 변화를 추구할 수밖에 없는 시점"이라고 말했다.

손 교수는 "믹스결정은 실질적인 데이터에 근거해 이뤄져야 하는 매우 전문적 분야이며, 이에 대한 논의는 전문성이 확보된 사람들에 의해 독립적으로 논의돼야 한다. 정치나 소위 기득권에 투영된 정책 결정은 곤란하다"고 부연했다.

반면 방향 설정은 어디까지나 선택의 문제로 정치적 판단이 불가피하며, 이를 실현하는 수단은 정치적·사회적 공론화에 따른 합의라는 견해도 있다.

전력당국 한 시장전문가는 "계량은 어렵지만 점증하는 각종 리스크에 대해 정치적 판단이 필요하며, 독립적이고 중립적인 계획 수립은 큰 방향이 선 이후의 문제"라면서 "향후 전원계획의 핵심은 기존처럼 기술적 최적화보다는 정부가 폭넓은 사회적 합의체를 구성해 다기준 의사결정을 내리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상복 기자 lsb@e2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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