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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재조명 받는 재난대응 분산형 에너지 ‘LPG’
처마 밑 비축기지 기능 갖춘 ‘LPG’의 가치·위상 재인식
일본은 국가에너지계획에 중요성 반영, LPG 비중 확대
[427호] 2016년 10월 10일 (월) 07:43:03 채제용 기자 top27@e2news.com

[이투뉴스] 지난 9월 12일 오후 7시 44분께 경상북도 경주시 남남서쪽 9km 지점에서 규모 5.1 지진이 발생, 울산, 대구 등 경북지역은 물론 부산, 양산 등 경남 일대서도 강한 흔들림이 감지됐다. 이어 같은 날 오후 8시 32분께 경주 남남서쪽 8km 지점에서 첫 번째 지진보다 강도가 센 규모 5.8 지진이 잇따라 발생했다. 두 번째 지진은 수도권에서도 건물이 좌우로 흔들릴 만큼 강도가 셌다. 한반도에서 규모 5.8 이상의 지진이 발생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 1978년부터 지난해까지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지진 진앙지 분포도.

지난 2일까지 규모별로 1.5~5.0 등 모두 455회의 여진이 이어졌다. 지진에 대한 공포가 한반도 전역을 뒤흔들었음은 물론이다. 기상청 지진 자료에 따르면 1990년 이후 수도권 내륙에서 관측된 지진은 모두 12차례다. 규모는 2.0∼3.0으로 피해가 발생할 정도는 아니다.

다행스럽게 아직까지 원전이나 가스공급시설 등 에너지 기반시설에 별다른 피해가 없는 것으로 확인돼 한숨을 돌렸다.

문제는 지진에 대한 예측이 불가능한 데다 언제라도 지하에 에너지가 쌓여 지진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이다. 수도권의 경우 인구가 밀집된 데다 고층빌딩이 많아 지진이 발생할 경우 큰 피해가 우려돼 불안감을 증폭시키고 있다.

국내에서 내진설계 의무규정이 처음 도입된 건 1988년. 당시 건축법에는 층수 6층 이상, 연면적 10만㎡ 이상 대형 건물만 내진설계 대상에 포함됐다. 2005년 7월 건축법 시행령이 개정되면서 3층 이상, 연면적 1000㎡ 이상 건물은 반드시 내진설계를 하도록 의무규정이 강화됐다. 이후 2009년부터는 ‘처마 높이 9m’ ‘기둥 거리 10m’ 이상이라는 기준이 추가됐고 지난해에는 3층 이상 또는 연면적 500m²로 대상이 확대됐다. 2009년부터 지금까지 적용된 내진설계 강도는 규모 6.0~6.5다. 그러나 학계 일부에서는 규모 6.5를 넘는 지진이 한반도에서 일어날 가능성이 있어 지진 강도 기준을 높여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도시가스 배관 내진설계는 2004년 의무화됐다. 1989년부터 도시가스 공급이 시작됐으나 2004년 이전의 배관은 내진설계가 반영되지 않았거나 현재 기준에 못 미친다는 얘기다. 전국 도시가스 33개사의 가스배관 총 4만1728km 중 약 54.6%인 2만2777km의 가스배관이 내진설계에 미달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LPG수입사 지하비축시설은 규모 6.5의 지진을 견딜 수 있으며, 지상 저장시설은 규모 6.0의 지진에 견디도록 설계됐다. 충전소도 진도 5.5~6.0 수준의 내진설계가 이뤄지고 있다.

◆에너지 복구시스템은 또 하나의 과제

경주지진이 발생하자 산업통상자원부를 비롯해 한국전력, 한국수력원자력, 한국가스공사, 한국가스기술공사, 한국가스안전공사 등 에너지관련 유관기관에 초비상이 걸렸다. 주형환 장관이 직접 지휘하는 지진상황대책본부가 설치됐으며, 우태희 제2차관이 경주로 급파돼 에너지 유관기관 전문가팀과 함께 긴급점검에 나서고, 에너지자원실장이 반장이 된 비상점검반이 가동됐다.

박근혜대통령은 이번엔 잘 넘어갔지만 더 큰 지진이 났을 때 우리가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가 국가적 과제라며 모든 재난에 완벽히 대비할 수는 없지만 완성도를 높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에 따라 산업부는 원전 안전성 제고 차원에 기존 원전의 내진성능을 규모 6.5에서 7.0까지 견디는 수준으로 강화하기로 했으며, 2011년 후쿠미사 원전사고 이후 추진 중인 24기 모든 원전의 내진보강 작업을 2018년 4월까지 완료키로 했다. 또한 2019년 말까지 예정된 전 원전에 대한 스트레스 테스트도 1년 앞당겨 지진 발생지역 인근 원전인 월성·고리 원전은 내년 말까지, 나머지 한울·한빛 원전은 이듬해말까지 스트레스 테스트를 완료한다는 계획이다.

아직까지 이상이 발견되지 않았으나 주요 가스 공급시설의 내진성능을 강화하는 방안도 검토된다. 현재 141개소인 가스시설 지진가속도 계측기를 내년까지 147개소로 늘리는 한편 규모 5.0~5.9까지 견디도록 설계된 주요 시설의 내진성능 보강이 필요한지를 전문기관에 용역을 의뢰해 결과를 바탕으로 후속대책을 마련하기로 했다.

하지만 이는 지진의 피해를 최소화하려는 내진설계 대책으로, 신속한 에너지 복구시스템 구축은 또 다른 과제다.

이번 경주 지진은 에너지정책 측면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비상 시 에너지 안정공급을 위한 제도 및 대책정비 등 대응체계의 시급함이 단순한 지적에 그치지 않는다는 방증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가 더 이상 지진에 대해 안전지대가 아니라는 걱정이 현실화됨에 따라 비상시를 대비한 에너지공급시스템 구축이 시급하다는 목소리에 힘이 실리는 이유다. 강진이 발생할 경우 건물 및 도로붕괴로 이어져 전기, 통신, 가스 등 각종 설비 파손으로 인한 막대한 손실과, 그에 따른 2차 사고의 피해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는 점에서다.

전기와 도시가스 등은 송전선과 배관 등 망(網)을 통해 공급되는 에너지인 만큼 지진 등의 재난·재해에 취약하다. 신속한 대응조치가 가능한 분산형 에너지가 새롭게 부각되는 배경이다.

◆동일본 대지진 후 일본의 정책 변화 주목
   
▲ 일본의 재해대응형 LPG공급시스템

특히 일본이 동일본 대지진 이후 재해 시 에너지 공급의 최후의 보루로 규정한 LPG의 가치가 다시 조명을 받고 있다. 자연재해와 같은 위기가 발생할 경우 초기에 외부지원을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각 가정에 에너지를 안전하게 공급하고, 전기나 도시가스 공급이 끊긴 후 신속한 에너지 복구체계를 갖추는 재해대응 에너지로서의 역할이 높게 평가받고 있는 것이다.

2011년 3월 발생한 동일본 대지진의 피해 복구작업 때 신속한 에너지 공급원으로 LPG를 적극 활용한 일본은 이후 에너지기본계획을 수정하고, LPG공급체계 강화와 이용 형태 다양화, 수송부문에서의 역할 증대 등을 법규에 명기했다.

일본 경제산업성 자원에너지청에 따르면, 일본 정부는 지진과 쓰나미 피해를 본 도호쿠 지방의 가정과 택시의 안정적 연료공급을 위해 국가가 비축한 약 4만톤의 LPG를 방출했다.

LPG는 대피소 등 임시주택을 위한 에너지원으로도 적극 활용됐다. 업계는 이와테현, 미야기현 등 피난처에서 사용될 긴급에너지로 약 100톤의 LPG를 제공했으며, 이와타니산업과 사우디 아람코가 2009년 설립한 ‘긴급재해 시 LPG지원기금’을 통해 휴대용 가스레인지 등을 각처에 지원했다. LPG가 배관에 의해 공급되는 도시가스와 달리 재해가 발생할 경우 공급차단의 가능성이 적고, 재해 후 빠른 복구가 가능한 분산형 에너지라는 것을 입증한 셈이다.

일본의 2014년 에너지기본계획에는 LPG의 역할과 위상이 그대로 드러난다. 일본은 LPG를 발전소에서의 ‘발전용 대체연료’로 인식하고 있다. 여기에는 친환경적이고 화석연료보다 지구 온난화에 긍정적 영향을 미치는 에너지로서 과거 중동에 의존하던 수입 구조를 미국 셰일가스 도입을 통해 다각화해 가격경쟁력을 확보, 안정적 수급이 기대된다는 분석이 자리잡고 있다.

정책적인 측면에서는 동일본 지진사태 이후 에너지 공급 측면에서 ‘Last Resort'로 인식하고, 기업 뿐만 아니라 정부비축기지도 확대하고 있다. 동일본 지진사태 이후 지금까지 150만톤 규모의 정부 저장기지 5곳이 완공됐다.

또한 안정적 공급을 위해 각 지역에 LPG 충전소를 확대하고 있는데 2011년부터 정부예산이 책정돼 지원되고 있으며, 수송용 연료로서의 LPG역할을 좀 더 강화한다는 계획이다.

우리 정부도 2011년 에너지경제연구원에 의뢰한 ‘LNG-LPG 균형발전’ 정책연구과제를 통해 분산형 에너지인 LPG가 지진, 자연재해, 전쟁 등 국가 비상사태 발생 시 비상연료로 활용이 용이해 적정 수준의 수요확보가 필요하다는 결론을 내린 바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에너지 수입의존도가 95% 이상으로 에너지안보 차원에서 적정한 믹스가 필수적이라는 점에서 LPG비중을 4%대로 유지토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같은 정부 스스로의 정책연구과제에도 불구하고 편향적인 천연가스 보급정책과 LPG차 사용제한 규제 등으로 LPG수요는 매년 감소세를 거듭해 LPG비중은 2010년 4.1%에서 2014년 3.3%로 오히려 0.8%P 줄었다.

전 세계적으로 지진에 안전한 나라가 없고, 우리나라도 이제 더 이상 안전지대가 아니라는 것이 현실로 나타난 만큼 전쟁은 물론 지진 등의 비상사태 발생 시 대응연료로서 LPG의 역할을 새롭게 인식해야 한다는 주장의 당위성은 분명하다. LPG는 처마 밑 비축기지로서의 기능을 갖추고 있을 뿐만 아니라 송전선이나 배관에 의해 공급되는 전력이나 도시가스와 달리 재난·재해 시 공급차단의 가능성이 적은데다 신속한 복구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일본이 지진이나 해일 등 대규모 재해 시에도 각 가정에 에너지를 안전하게 공급하고, 전기나 도시가스 공급이 끊어진 후 LPG를 통한 신속한 에너지 복구체제를 갖추기 위해 구축한 ‘재해대응형 LPG공급시스템’은 눈여겨 볼만하다. 300~1000kg 용량의  LPG저장탱크와 계량기, 압력조정기 등 공급설비, 스토브와 난방기, 발전기 등 소비기기를 패키지화 한 시스템으로, 재해 대응용으로 설계돼 높은 내진성이 특징이다. 현재 학교와 복지시설, 마을회관 등 재해 시 대피집합소로 활용되는 장소를 중심으로 설치되어 있다.

더 이상 한반도가 지진 안전지대로 불리기 어려운 만큼 에너지안보 측면에서 국가에너지기본계획에 LPG를 포함시키고, 재난대응 분산형 에너지인 LPG의 중요성을 감안해 LPG의 적정수요를 유지하는 등 역할을 높이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에 한층 힘이 실리고 있다.

채제용 기자 top27@e2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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