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투뉴스] 공공기관 성과연봉제 확대 도입을 놓고 잡음이 끊이지 않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 소관 공기업·준정부기관의 경우 전체 40개 대상기관중 12개 기관 노사가 여전히 평행선을 달리고 있고, 이미 노사합의를 이룬 기관들도 ‘속도전'의 후유증을 앓고 있다. 이런 측면에서 지난달 중순 노조 찬반투표를 통해 성과연봉제 도입을 확정한 전력거래소 사례는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전력거래소는 지난 4월 25일 열린 첫 찬반 투표에서 한 차례 고배를 마셨다. 여기까지는 다른기관과 차이가 없다. 하지만 이후 노사가 합의에 이르는 과정은 달랐다. 노조원의 75% 반대 의사가 확인된 후 전력거래소 CEO는 ‘사랑하는 전력거래소 직원 여러분’으로 시작하는 편지(담화문)부터 썼다.

유상희 이사장의 메시지는 이랬다. “이번 성과연봉제 확대 논의에서 직원 여러분들의 어려움과 깊은 속마음을 헤아리지 못한 점,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 그리고 리더로서 핵심경영철학 조차 구성원들의 이해를 구하지 못한 점 부끄럽게 생각합니다. (중략) 여러분의 지지와 신뢰없이는 한발짝도 나아갈 수 없습니다. 여러분들의 의사를 겸허히 따르겠습니다. (중략) 제 진심이 여러분의 마음속 깊이 도달할 때 까지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한달여간 사측이 주도해 온 설명회는 중단됐다. “노조가 원하지 않으면 나서지 말라”는 CEO의 당부가 있었다. 변화는 이 틈에서 싹텄다.

전력거래소 우리노동조합(위원장 송태용)이 사측을 대신해 직원들을 만났다. 송태용 위원장의 말이다. “최악보다는 차악을 선택해야 한다는 판단이 섰습니다. 이대로 가면 노사 모두가 피해자가 될 것이 분명했으니까요. 현실을 있는 그대로 알려준 뒤 결정은 노조원에게 맡기기로 했습니다.” 노조는 15차례나 직급별·지사별 설명회를 열어 조합원의 목소리를 경청했다. 더러 “왜 노조가 나서냐”는 비판이 나왔다. 하지만 직을 건 송 위원장도 “우리 자신의 일”이라며 물러서지 않았다. 이때부터 전력거래소 전 직원은 ‘노사소통광장’이란 인트라넷 공간에서 실명을 걸고 여과 없이 자신의 견해를 피력했다. 댓글 아래 댓글이 달리고, 때론 지위고하를 막론한 격론이 벌어졌다. 대화재개에 나선 노사는 틈틈이 협상과정을 숨김없이 공개해 불신을 사전 차단했다. 누구도 협상을 재촉하거나 압박하는 이는 없었다.

공감대를 확인한 노조는 정공법을 택했다. 지난달 18일 이 사안이 다시 노조 찬반 투표에 부쳐졌다. 결과는 67% 찬성. CEO의 진심어린 소통, 노조위원장의 결단, 직원들의 민주적 참여가 20여일 만에 정반대 결과를 만들었다. 이번에는 송태용 노조위원장이 노사소통광장에서 펜을 들었다. “우리 전력거래소가 큰 결정을 내렸습니다. 어느기관, 어느 공기업에 내놔도 부끄럽지 않게 민주적인 방법으로 결과를 도출했습니다. 앞으로의 길은 누구도 가보지 않은 길입니다. 노조가 등불의 역할을 하겠습니다. (중략) 반대하신 분들의 뜻을 겸허하게 받아들이고, 믿어주신 분들께서 보여주신 무거운 책임감을 꼭 기억하겠습니다. ”

이상복 기자 lsb@e2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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