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성봉 숭실대 경제학과 교수

조성봉
숭실대 경제학과 교수
[이투뉴스 칼럼 / 조성봉] 전력시장이 출범한 지 15년이 됐다. 2001년 한전으로부터 분할된 6개의 발전자회사와 지역난방공사 및 수자원공사 등과 같은 공기업 그리고 소수의 민간 발전사들이 전력을 판매하고 이를 독점 송·배전 및 판매사업자인 한전이 구입하는 구조로 전력시장을 구성했다. 전력거래소가 시장을 운영하여 전력시장의 균형가격인 전려거래가격을 계통한계가격(System Marginal Price)을 통해 결정하여 변동비를 보상하도록 하였고 발전설비와 같은 고정비는 용량가격으로 보상하도록 했다.

전력시장도 여러 변화를 겪었다. 원전과 석탄화력 발전소와 같은 기저부하 발전기의 변동비 원가가 전력가격과 너무 큰 차이를 보여 처음에는 이른바 기저부하시장과 첨두부하시장으로 나누어 이원화하였으나 나중에는 기저발전기에 상한가격을 두었으며 또 몇 년 후에는 정산조정계수를 도입하여 기저부하 전력가격을 적당히 조절하는 제도를 도입했다. 2011년과 2013년 사이에는 전력이 크게 모자라서 어려움을 겪고 전력거래가격이 크게 오르자 SMP 상한제도 도입했다. 또한 용량가격에 지역별 용량가격계수를 도입하였고 예비율을 반영한 성과연동 용량가격계수도 도입했다. 여기에다가 사용하는 전기를 아껴서 전력거래가격을 받을 수 있는 수요자원시장도 개설했다.

이처럼 전력시장은 외적 환경의 변화에 따라 시시때때로 시장규칙을 변경하면서 적응하여 온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자세히 그 내용을 들여다보면 전력시장의 모습은 본질적으로 2001년 전력산업 구조개편이 시작되었을 때와 크게 다르지 않다. 15년이 지났지만 그 틀은 거의 그대로다. 발전사들에 의한 일방향 입찰, 변동비 반영 풀(Pool), 일물일가에서 벗어나는 이원화된 가격 등 전력시장의 기본적인 구조는 바뀐 것이 없다.

외형적으로 전력시장은 전력시장운영규칙에 따라 정해진 룰에 의하여 운영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전력시장을 제대로 보려면 멀리서 크게 볼 필요가 있다. 고목나무에 붙어 있는 매미는 나무껍질은 볼 수 있을지 몰라도 고목나무 전체의 모습은 볼 수 없다. 때로 우리가 가진 틀 자체를 의심해 봐야 하고 도대체 이 틀이 결국 무엇을 하자는 것인지 생각해 보아야 한다.

전력시장에서 거래의 대부분은 사실상 한전의 내부거래이다. 한전이 100% 지분을 갖고 있는 발전자회사가 생산한 전력을 한전이 사는 비중이 90%에 가깝기 때문이다. 물론 다른 공기업과 민간의 발전자회사들이 전력시장에 구색을 갖추어 끼어들고 있지만 전력거래의 대부분은 한전 그룹사의 내부거래인 셈이다. 이미 정해진 전력시장의 규칙이 있기 때문에 이 내부거래의 틀을 한전이나 한전의 발전자회사도 어찌 할 수 없다고 항변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한전과 한전의 발전자회사는 배당금이라는 민간의 발전회사들은 생각할 수 없는 별도의 수익 재배분 메커니즘을 갖고 있다. 즉, 시장규칙에 의해서 한전이 수익을 많이 가져가고 발전자회사의 수익이 줄어들게 되면 모회사인 한전이 배당금을 적게 가져가면 되고 그 반대로 한전의 수익성이 줄어들면 발전자회사로부터 배당금을 많이 가져가면 되는 것이다.

민간의 발전회사들은 꿈도 꿀 수 없는 수익 재배분 장치를 보유한 한전과 한전의 발전자회사는 일종의 보험을 들고 있는 셈이다. 게다가 사실상 정부가 그 뒤를 받쳐주고 있는 셈이라는 이른바 공기업 특유의 연성 예산제약(soft budget constraint)까지 생각한다면 민간은 한전과 한전의 발전자회사에 비하여 전력시장에서 살얼음판 위를 걷고 있는 셈이라고 할 수 있다.

현재 민간 발전회사들은 전력거래가격의 급락과 불경기로 인한 전력수요의 정체로 인해 유례 없는 수익성의 위기를 겪고 있다. 정부는 한 때 잘 벌었으니 어려울 때도 있지 않겠냐는 반응이다. 전력시장 안에서는 조정계수를, 전력시장 밖에서는 배당금을 조절하며 수익성을 안정화시킬 수 있는 한전과 그룹사들, 게다가 어차피 정부가 뒷감당을 해주는 공기업과 민간의 발전회사들이 경쟁하는 구조는 처음부터 잘못된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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