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호 한국전기연구원 책임연구원 (경제학 박사)

이창호
한국전기연구원
책임연구원
(경제학 박사)
[이투뉴스 칼럼 / 이창호] 최근 한파가 기승을 부렸다. 수도권의 최저기온이 영하 18도까지 떨어지면서 에너지 수요가 급증하고 있다. 며칠 전 차가운 날씨 탓에 최대전력이 8300만 KW까지 늘어나 2014년에 기록된 8000만 kW를 무려 300만 kW나 초과하면서 갈아치웠다. 이렇게 최대수요가 급증하면 어김없이 거론되던 전력공급 문제나 예비전력에 대한 우려도 당분간 없을 것 같다. 아직도 천만 kW 이상의 충분한 여유설비가 있기 때문이다. 얼마 전 만해도 빠듯한 설비 때문에 대책마련에 고심하던 걸 생각하면 전력수급의 여건이 몇 년 사이에 급변한 모습이다.

올해는 제8차 전력수급계획을 수립하는 해이다. 계획수립 시마다 수요예측이나 전원구성의 적정성, 신규설비의 규모나 입지, 선정 등에 대해 많은 사회적 이슈와 논란이 제기되곤 했다. 전력수급계획은 전기사업자나 투자자에게 전력수급과 정책정보를 제공하고 있으며 정부 또한 이를 근거로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전기사업법 제25조에서는 수급계획의 주요내용으로 기본방향, 장기전망, 설비계획, 수요관리 등을 명시하고 있으며 아울러 ‘저탄소녹색성장기본법’에 따른 온실가스 감축목표에 부합토록 하고 있다. 이처럼 다양한 내용이 포함돼 있음에도 불구하고 수급계획은 마치 설비계획, 즉 특정설비를 정하는 과거 전원개발계획의 기능에 치중해 왔다. 따라서 수요예측이나 전원믹스는 그 자체의 중요성 보다는 특정설비를 도출하기 위한 사전적인 절차로 간주됐다. 이는 결국 법의 소제목과 같이 ‘전력수급의 안정’이야말로 무엇보다도 중요한 계획의 목적이자 기능으로 인식돼 왔기 때문이다. 

이제 전력수급의 안정이란 용어를 다른 각도에서 생각해 볼 시점이다. 우리도 발전소가 부족해 늘어나는 수요를 충당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했던 만성적인 설비부족의 시대에서 벗어나고 있다. 입지, 송전, 환경문제라는 장벽에도 불구하고 발전소를 짓고자하는 자본과 투자자를 찾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다. 우리가 발전소 건설과 수요관리에 혼신의 힘을 기울이던 1980~90년대에 이미 선진국은 수요가 정체되고 설비가 남아돌기 시작했다. 전력산업에 경쟁을 도입하는 것도 따져보면 남아도는 여유설비가 있었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비효율적인 설비들을 몰아내기 위해서는 경쟁시스템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공급력의 문제가 해결되면서 대두된 것이 바로 에너지 문제이다. 90년대 이후 본격화된 기후변화라는 지구적인 어젠다와 더불어 전력수급의 이슈도 온실가스 감축을 위한 에너지절약과 친환경에너지라는 에너지문제로 중심이 옮겨가고 있다.

선진국의 경우 우리의 수급계획과 유사한 제도를 운영하는 경우를 살펴보면 대체로 전원공급 즉, 발전소 건설보다는 에너지수급에 초점이 맞춰지고 있다. 어차피 발전소 건설과 같은 문제는 전력회사나 발전사와 같은 투자자의 몫이기 때문이다.

미국의 경우 연방차원에서는 주로 중장기 전망에 치중하고 있다. 에너지부 EIA에서는 20년 이상의 에너지전망(Energy Outlook)을 매우 상세하게 제시하고 있다. 이에 반해 주정부는 전망보다는 정책에 초점을 맞춘 에너지계획을 수립하고 있다. 예를 들어 캘리포니아 주의 경우 2년마다 ‘아이-퍼’라는 ‘통합에너지정책보고서’를 발간하고 있다. 계획 수립시의 여건에 따라 내용이 달라지며, 2015년 계획에서는 에너지절약, 온실가스감축, 수요예측 그리고 신재생에너지 확대에 따른 송전망 확충 등이 포함돼 있다. 이밖에도 주 공익규제기구(PUC)에서는 장기에너지확보계획(LTPP)을 수립하고 있으며, 전력계통운영자(ISO)는 송전망계획(Transmission Planning Process)을 수립하고 있다. 우리의 경우 2014년 발표된 제2차 에너지기본계획을 보면 대부분의 내용이 에너지 전망과 믹스 그리고 이를 구현하기 위한 중점과제로 구성돼 있다. 따라서 정부의 의지가 담긴 정책과제를 제외하면 에너지 전망과 믹스가 중요한 정책목표임을 알 수 있다. 전력수급계획은 별도 과정에 의해 수립되지만 에기본에서 제시된 정책목표의 틀 안에서 수급전망을 보다 구체화하고 이를 토대로 신규설비의 소요를 결정하는 과정으로 볼 수 있다.

최근 들어 기후변화 대응을 위한 온실가스 감축목표가 구체화됨에 따라 전력부분에도 발등에 불이 떨어진 상태다. 전력부문에 할당된 배출권을 기준으로 한다면 건설 중이나 계획 설비는 물론 기존의 설비에 대해서도 특단의 조치가 필요할 것 같다. 전력부분의 배출량은 2013년 기준으로 약 2억3000만톤에 달한다. 수요에 따라 영향을 받겠지만 최근 들어선 신규 설비와 건설이 확정된 설비를 고려하면 배출량은 현재보다도 큰 폭으로 늘어나게 될 것이다. 최근 전력수요 중가가 주춤해졌다고는 하나, 현재의 운영방식이 유지된다면 전력부문에서 온실가스 감축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석탄발전소는 늘어날 것이므로 현재의 추세가 근본적으로 달라지기 어렵기 때문이다. 석탄 이용률 규제, 노후발전소 폐지, 발전연료 전환, CO2 포집 등 여러 가지 대안이 거론되고 있으나 아직까지 제대로 된 분석이나 정책 수단을 찾아보기 어렵다.

제7차 전력수급계획에 따르면 2029년까지 우리의 발전설비는 지금보다도 4000만 kW 이상 늘어 1억3700만 kW에 달하는 것으로 돼 있다. 엊그제 기록적인 한파 덕분에 최대전력을 갈아치웠지만 신규발전소 준공으로 설비문제는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지금 가장 중요한 전력수급의 현안은 온실가스문제다. 앞으로 수급계획은 온실가스 제약 하에서 수립돼야 할 것이므로 에너지믹스에 보다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설비와 에너지는 동전의 양면과 같지만 정책적인 대응은 사뭇 다르기 때문이다.

많은 국가들이 에너지문제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재생에너지를 보급하고 에너지절약을 추진하며 바람직한 에너지믹스와 가격, 조달방안을 강구하고 있다. 우리도 에너지믹스에 대한 정부의 정책기능을 적극적으로 추진해 나가야 한다. 경쟁이라는 미명하에 방치되고 있는 현재의 전력시장도 정책방향에 맞춰 새롭게 재편돼야 한다. 세계 각국이 가고 있는 길을 계속해서 외면할 수는 없다. 이제 전력수급계획도 달라지는 환경과 여건에 맞추어 나가는 살아있는 계획으로 거듭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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