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춘승 탄소정보공개프로젝트(CDP) 부위원장

양춘승
탄소정보공개프로젝트
(cdp) 부위원장
[이투뉴스 칼럼 / 양춘승] 지난 12월 12일 프랑스 파리에서 폐막된 제21차 UN기후변화당사국회의에서는 세계 195개 국가가 온실가스 감축에 참여하는 새로운 ‘파리기후협정’이 맺어졌다. 이 협정은 지구의 평균 기온 상승을 산업혁명 이전보다 2℃보다 훨씬 낮은 1.5℃ 이하로 유지하도록 노력하고, 이를 위해 모든 협약 당사국이 각자 자발적 감축목표 즉, 국가별 기여방안(INDC)을 실천하는 한편, 선진국은 개도국의 기후변화 대응을 돕기 위해 연간 1,000억 달러의 기후기금을 출연할 것을 명시하고 있다. 이제 세계는 화석연료에 대한 의존을 줄이고 저탄소 경제로 과감하게 옮겨갈 것이라는 사실을 명확히 한 것이다.

그렇다면 이번 협정은 투자자에게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가? 언뜻 생각하면 온실가스 배출을 세계적 규모에서 줄여나가자는 이번 협정은 산업 활동에 대한 제약을 강요하고 있어 투자자에게 새로운 위험 요인으로 인식될 수 있다. 특히 화석에너지에 기반을 둔 전통적인 에너지기업에 투자한 경우 앞으로 온실가스 배출에 대한 규제가 강화되고 세계적으로 사용 가능한 화석연료 총량이 결정되면, 이들 기업이 보유한 탄광이나 유전 같은 자산의 상당 부분이 이른바 ‘좌초자산’이 되어 막대한 투자 손실을 입을 위험을 가지고 있다. 그렇기에 ‘자본주의4.0’의 저자인 아나톨리 칼레스키도 최근 한 기고에서 석유 메이저들에게 유전이나 탄광을 개발하는 데 연간 6,500억 달러를 투자하는 멍청한 짓을 그만두고 그 절반만이라도 재생에너지 개발에 투자하라고 권고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이번 협정이 투자자에게 새로운 위험 요인을 던지고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훨씬 더 많은 투자 기회도 제공하고 있다는 사실을 지적하고 싶다. 무엇보다도 협정문에서 향후 경제 발전이 과거의 화석연료 의존에서 벗어나 ‘탈탄소화(decarbonization)’를 지향하고 있음을 분명히 밝힘으로써, 투자 결정에 가장 큰 장애물인 ’정책의 불확실성‘을 제거한 점을 높게 사고 싶다.

이처럼 정책의 불확실성이 사라지면서 이미 과잉 상태에 있는 자본에게 새롭고 매력적인 투자 시장이 등장하고 있다. 우선, 앞으로 15년 이내에 세계 인구는 10억 이상이 늘고 경제 규모도 두 배로 커지는데, 이를 수용할 도시 건설, 수송, 에너지, 수자원 등 사회 인프라에 대한 투자 기회가 열려 있다. 통상적인 방식으로 이런 인프라에 소요되는 자금 규모는 매년 6조 달러인데, 여기에 재생 에너지 개발, 컴팩트한 도시 건설, 효율적인 에너지 수요 관리 등 저탄소 방식을 도입하면 연간 2,700억 달러의 추가 비용이 들어간다고 한다. 문제는 정부 예산으로는 이 막대한 자금을 감당할 수 없다는 점이다. 그런데 이번 협정으로 선진국들이 조달하는 연간 1,000억 달러의 기후기금과 연간 6,000억 달러에 달하는 화석 연료 보조금 등의 공적 자금을 지렛대로 활용하여 민간자본을 유치하면 이는 적은 자본비용으로 매우 안정적인 수익을 확보하는 매력적인 투자처가 될 것이다.

이것만이 아니다. 협정은 다양한 형태의 탄소 배출권 거래시장의 형성을 명문화하고 있어 협정이 발효되면 거의 죽어가던 탄소시장이 세계적 규모에서 다시 활성화될 것이다. 이렇게 되면 배출권에 가격이 형성되어 새로운 투자 대상으로서 기능을 되찾게 될 것이다.

또 저탄소 혁신에 대한 투자 기회도 넓어지고 있다. 태양광, 연료전지, 전기차 등 저탄소 에너지 기술은 이미 시장 진입에 성공하였고, 금융 분야에서도 녹색채권이나 크라우드 펀딩 등 새로운 기법이 등장하여 민간 자본을 유혹하고 있다.

이와 함께 디지털화, 신소재, 생명과학, 로봇이나 드론, 청정 생산 공정 등 경제 성장과 배출 감축을 동시에 달성하는 혁신 관련 R&D 투자도 현재 연간 1,000억 달러 수준에서 매년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2016년 한해는 작년의 파리협정의 내용을 채워가는 첫해가 될 것이다. 내용이 채워질수록 투자의 위험과 기회가 무엇인지는 점점 더 분명해질 것이다. 그 내용이 무엇이 될지 아직 확실하지는 않지만, 이번 협정이 공급과잉으로 고전하고 있는 자본에게 저탄소 경제 체제를 만들어가는 막대한 투자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는 점만은 분명해 보인다.

드디어 자본이 자신의 이익을 좇으면서 동시에 세상 모두의 이익에 봉사할 기회를 잡게 된 것이다. 파리기후협정을 계기로 ‘현명한 사리사욕 (enlightened self-interest)’의 앞날이 사뭇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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