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묘수찾기 대신 본질 해결에 매달려야"
"전력·가스산업 전근대적, 결국 국민 비용"

▲ 손양훈 인천대 교수

[이투뉴스] 지난 6일 오후 인천시 송도동 인천대 송도캠퍼스 경영대학.날을 흐렸지만 서해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맑았다. 고즈넉한 캠퍼스 풍경에 넋을 놓고 있다가 약속시간을 조금 넘겨서야 514호 문을 두드렸다. 달포 전 손양훈 경제학과 교수(前 에너지경제연구원장)에게 “따로 한번 만나자”고 했는데, 이날 그가 강의가 비는 시간을 내준 터였다.

인터뷰어 입장에서 그는 기본은 보장되는 인터뷰이다. 사안을 입체적으로 바라보되 본질을 건드려 핵심을 끄집어내고, 그걸 명쾌하게 정리하는 능력이 탁월하다. 경청만하면 군더더기 없는 문장이 됐다.
시점도 나쁘지 않았다. 그는 작년말 임기를 2년여나 남긴 채 돌연 연구원장직을 내려놓고 강단으로 돌아왔다. 배경을 놓고 무성한 풍문이 돌았지만 침묵했다.

뒤늦게 그걸 확인하려 이날 그를 만난 것은 아니다.장(長)보다 교수일 때 왠지 더 그다운 진면목과 마주할 수 있을거란 판단에 시기를 엿봐왔을 뿐이다. 예상대로 손 교수는 막힘이 없었다. 그는 “에너지는 항상 정부 정책들 가운데 후순위”라면서 “전문가는 많지만 국가 주요 의사결정을 하는 곳에는 별로 없고, 전문성을 정책결정에 투영할 채널도 여의치 않다”고 지적했다.

또 정치권의 자원외교 공방에 대해선 “미래 우리나라를 설계하는데 중요한 일을 해야 하는 영역을 소진해선 곤란하다”고 했고, 전력산업 구조개편에 관해서는 “정치적 설득력을 갖추지 못해 국민들이 비용을 지불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원장직 사임 배경에 대해서도 처음 입을 열었다. “오래전부터 (교수로)돌아가는 게 낫겠다는 생각을 했고, 사정상 가야 했다"는 게 골자다.

다년간 정책과 학계 중심부에 머물면서 자신만의 독보적 아우라를 구축해 온 손 교수와의 100여분 남짓한 인터뷰를 여과없이 지면에 옮긴다.

- 교수로 돌아왔다. 그간 어떻게 지내셨는가.

“원래 오랫동안 대학교수를 하다가 연구원에 가서 공무원으로 일하다가 너무나 당연하게 학교로 복귀했으니 특별히 어떻게 지냈는지 물어볼만한 것도 없다. 다만 연구원에서 결제하는 대신 강의를 해야 하는, 그런 차이 밖에 없다.”

- 최근 들어 에너지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과거보다 부쩍 높아진 느낌이다.

“당연한 거다. 전 세계적으로도 에너지를 과거보다 훨씬 많이 쓰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도 오랫동안 에너지가격이 안정적이었다. 싸게 언제든 사올 수 있었던 아주 운 좋은 나라였다. 그런데 중국이란 거대 국가가 성장과정에 들어가면서 전 세계 에너지시장에 큰 변란이 일어났다. 수요가 늘어나니까 가격이 폭등과 폭락을 거듭하고 있는 중이다. 에너지시장의 안정성이 과거보다 훨씬 더 떨어진 상태로 볼 수 있다. 하지만 에너지의 특성 자체가 공급하는 쪽이나 쓰는 쪽이나 가격이 변한다고 갑자기 바꿀 수 있는 게 없다보니 수요와 공급 모두 가격탄력성이 아주 낮다. 좀 남으면 가격이 폭락하고, 좀 모자라면 폭등하고 하니까 시장 안정성이 분명 과거보다 좋지 않다. 특히 우리나라처럼 산업 활동이 많고 에너지를 전적으로 수입하는 나라로서는 굉장히 상황이 어렵다. 미래를 걱정하는 사람들은 에너지안보 확보가 가능한 지를 크게 걱정하고 있는거다. 게다가 에너지는 구하는 것도 어렵지만 쓰는 것도 어려워졌다. CO₂를 배출하니 그만큼의 국제적 책임이 생겼다. 즉 에너지를 확보하고, 쓰고, 책임지는 모든 과정에서 과거와는 다른 압박을 느끼고 있다. 그것이 아마 요즘 사람들이 에너지에 대해 관심을 갖는 이유가 아니겠나 생각한다. 또 그런 면에서 우리도 미래를 설계할 때 에너지를 빼놓을 수 없는 나라가 됐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치·경제에서 에너지는 중요한 대접을 받지 못하고 있다.

“공감한다. 우리나라에도 동력자원부가 90년대 중반까지 있었는데, 당시에 에너지가격이 매우 쌌고 LNG도 사올 수 있었다보니 (전담부처가)의미가 없다고 판단하고 부처를 없앴다. 그런데 그 사이에 에너지와 관련된 여러 여건이 크게 바뀌었다. 정부조직도 변화해야 했지만 사회적 모멘텀을 확보하지 못해 결국 독립된 부처가 없는 나라중 한곳이 됐다. 그렇다보니 에너지가 항상 정부 정책들 가운데 하나이거나 후순위일 수밖에 없다. 예를 들면 국가 재정이라든가 물가, 산업, 농업, 복지, 환경 등 모든 것들이 에너지와 관련된 정책들인데 그보다 에너지정책이 후순위로 밀린다. 그러나 에너지라는 게 어느 정도까지는 신축적으로 갈 수 있지만 지나고 나면 더 큰 비용을 지불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장기적으로 투자해야 하고, 사용도 무계획적으로 하면 안 된다. 우리가 사회적으로 그런 걸 할 수 있는 시스템이 부족하지 않은가 그렇게 판단한다.”

- 통렬히 느껴야 할 문제인데, 어디부터 개선해야 하나

“실제 국가의 주요 의사결정을 하는 국무회의나 청와대 수석회의, 혹은 국회 주요이슈를 다루는 곳에 전문가가 별로 없다는 게 큰 한계인 거 같다. 사실 에너지전문가는 굉장히 많다. 에너지산업도 규모가 크고 여러 전공에 걸쳐 있다. 나는 경제학을 했지만 전기공학이나 원자력공학, 기계․화학 공과대학 등의 엔지니어도 많다. 또 에너지 공기업을 비롯해 민간기업도 많다. 하지만 그런 전문성을 정책결정에 투영할 수 있는 채널을 구하지 못했다는 것은, 뭐랄까 쉽지 않은 환경이다. 요즘 관련 활동을 하면서 늘 드는 생각이다.” 


"에너지정책, 관련 정책보다 후순위로 밀려. 국가 주요 의사결정 하는 국무회의나
청와대 수석회의, 국회 주요이슈를 다루는 곳에는 전문가 없다는 게 큰 한계"
 


- 전 정부의 해외자원개발 과실을 놓고 정치권의 공방이 거세다. 어떻게 보나 (그는 답변에 앞서 “진행중인 사안이라 조심스럽다. 다 아는 것도 아니고, 그런 활동을 한 것도 아니다”고 단서를 달았다.)

“우리는 오랫동안 에너지를 쓰기만 하는 나라였다. 바이어로서 에너지를 하다보니 시장이 안정적일 때는 큰 문제가 없었지만 시장이 진폭을 거듭하면 좋았다가, 나빴다가 진폭이 너무 컸다. 그러다보니 다른 나라에 비해 업스트림이나 미들스트림이 약한데, 그런 걸 같이 균형을 어느 정도 잡아놔야 외부 변화에 대응할 수 있다. 또 장기적으론 에너지확보라는 게 필요하다는 취지에서 자원개발에 나선 것은 그리 나쁜 선택이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자원개발이란 게 굉장히 전문성과 경험이 있어야 하고, 또 축적된 인력이나 지식이 있어야 한다. 그게 잘 안 돼 있는 상태에서 마음만 급해서 정치적으로 하면 안 된다. 그런데 당시엔 ‘중국이 자원을 싹쓸이 하고 있다. 우리도 해야 한다’ 그런 얘기들이 나오니까 정치권에서도 준비가 됐든 안됐든 빨리 하자, 이런 게 한동안 우리사회에 상당히 만연했다. 혹자의 표현을 빌리자면 아마추어랑 프로랑 붙다보니 잘 하지 못한 것도 많이 있었고, 앞으로 조사하면 나오겠지만 룰을 어기거나 그런 것도 있었을 거라 생각한다. 그런 걸 조사해서 올바른 방향으로 가자는 것을 반대할 리는 없다. 다만 누군가를 공격하기 위해 자원개발을 소재로 쓴다거나 미래 우리나라를 설계하는데 중요한 일을 해야 하는 영역을 소진해 버리거나 하다보면 이전보다 아주 힘들어질 수 있다. 좀 더 장기적으로 본다면 에너지를 많이 쓰는 나라이기 때문에 잘 사오려면 스스로 생산도 해봐야 한다. 우리 경제규모가 작을 때는 그런 것까지 필요 없었지만 이제는 그런 것도 해봐야 어떻게 해야 잘 사는 것인지 배울 수 있다.”

- 이 문제는 어떻게 접근하고 정리되는 것이 바람직한 방향인가

“일단 에너지·자원개발과 관련된 전후방 산업이 생각보다 폭넓다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예를 들면 플랜트 산업이라든지, 철강․소재산업이라든지, 에너지를 옮기는 조선산업 등도 에너지와 관련이 깊고, 에너지를 쓰는 자동차의 효율이라든지 더 나아가 에너지신산업으로 분류되는 스마트그리드 등 다양하고 새로운 산업들이 있는데, 그들 중 많은 것들이 에너지를 개발해보지 않고는 하기 힘든 경우가 많다. 단적이 예로 조선산업중 고부가가치 선박은 대부분 자원을 개발하는 드립십이나 플로팅 설계와 연관돼 있다. 우리가 세계에서 배를 제일 잘 만든다고 하는데 자원개발을 해본 적이 없다보니 핵심기술은 외국에 의존하거나 우리 산업과 매칭이 잘 안돼 어려움을 느끼고 있다. 자원개발을 해봐야 그런 노하우가 생기고 데이터도 축적하고 전문인력도 양성되는 거다. 어떤 기술도 어느날 갑자기 생길 수가 없지 않은가. 정쟁 속에 너무 빠져 그게 과잉되면 자원개발의 미래가 어두워지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어쨌든 지금은 조사가 진행중이니 앞으로 결과가 나오면 지금까지 우리가 했던 일들을 아주 객관적이고 정통성 있는 집단에 의해 재평가해 준비 안 된 상태에서 나갔던 것들을 재점검하고 방향도 좀 재정비 하는 작업이 필요한 것 같다. 덧붙이지면 가능가하면 국가나 공기업보다는 소위 창의가 가능한 민간위주로 가야하지 않겠나 싶다. 정치로부터 덕도 봤겠지만, 그래야 정치에 의해 희생되는 것도 줄 것이다. 전 세계적으로 자원개발과 관련된 많은 부분이 민간 쪽에서 나온다. 우리는 국가가 다 하다 보니 재정이나 인력부문에서 문제가 생긴거다.”

- 전력산업, 시장으로 화두를 돌려보자. 최근 LNG발전이 가동률 저하로 위기라고 한다. 전력 전문가이기도 하니 도매시장에서 벌어지는 이 문제를 어떻게 보고 있는지 궁금하다. (그는 에너지경제연구원에서 1990년부터 10여년간 전력정책 연구를 수행했다)

“시장을 좀 더 나은 방식으로 개선하려는 노력을 오랫동안 덮어놓고 가다보니 이런 일이 생긴거다. 장기적으로 에너지시장은 늘 변화에 노출돼 있는데, 한동안은 전기가 모자라 SMP(시장가격)가 높다보니 CP(용량요금)를 받지 않아도 운영이 됐으니까 그런걸 보완하는데 어느 쪽도 관심을 갖지 않았다. 그땐 전기가 모자라지 않았으니까. 그런데 늘 그런 상태가 지속되지는 않는다. 전기가 모자라면 발전소를 더 지을 것이고, 전기가 남을 때도 사업이라는 걸 지속하려면 그런 준비를 했어야 했고, 전문가들도 많은 경고를 했다. 문제는 우리 전력시장 시스템이 시장 시스템이라면 변화에 대해 적응을 미리부터 하겠지만 정부가 드라이브하는 독점시장이다보니 당장 발등에 떨어진 불만해도 바빠 생각할 여력이 없었던 거다. 대부분의 나라가 급격히 LNG가동률이 떨어질 땐 CP제도를 뒷받침해주지만, LNG발전소도 남으면 짓지 말아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도가 개선해 줄 거라고 보고 너무 많이 들어온 게 사실이다. 물론 (사업자들이) 급한 건 이해가 간다. 공기업이야 일단 부채를 쌓아놓으면 되겠지만 민간기업은 그걸 견디기 어렵잖나. 그래서 당장 급하니까 CP를 올려서 불을 끄자고 하는 생각이 강한 거 같다. 근데 그건 임시방편일 뿐이고 결국은 제도를 영속적으로 만들어서 그런 변화에 대한 적응력 높이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언 발에 오줌 누기를 계속 반복해선 동상을 면하기 어려울 뿐이다. 그런데 그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하면, CP는 근본적으로 용량을 유지해준다는 이유로 보상해 주는 건데 밖에선 왜 전기를 생산도 안하는데 돈을 주느냐, 국가가 재벌 대기업에 돈을 준다고 얼토당토않은 얘기를 한다. 국방비를 지출해 군대를 유지하는 이유는 전쟁을 대비해서다. 전기도 마찬가지다. 일시적으로 모자라면 큰 시스템에 난리가 나니까 공학적 배경자체가 어느 정도의 여유분을 확보하고 여부분에 대해선 보상을 해주는 거다. 그런 시스템에 대해 사회적으로 인지하지 못하고 왜 돈을 주느냐의 논리가 횡행한다면 참 어렵다. 근본적인 해결은 제도의 문제다. 우선 현재 우리가 현재 갖고 있는, 전 세계적으로 유래 없이 오랜기간 유지해 온 CBP(변동비반영시장) 제도 틀 속에서라도 개선 방법을 찾아야 하고, 장기적으론 CBP가 아닌 경쟁시스템으로 가지 않으면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다른 모든 나라들이 어렵지만 반대를 무릅쓰고 제도를 개선하고 구조를 바꾸는 이유는 그런 구시대적 시스템, 즉 명령과 통제 위주의 국가주도 전력산업을 갖고는 안된다는 많은 경우의 경험이 있었기에 전력산업에 대한 경쟁과 민영화를 했었던 거다. 그런 것들은 다 덮어놓고 자꾸 국지적으로 문제를 과거 틀 속에서 개선하려고 하다보니 안되는 거다. 이제 그런면에 대한 성찰이 필요하다. ” 


"자원개발 전문성과 경험, 축적된 인력과 지식 있어야. 정치적으로 하면 안돼"
"국가주도 전력산업을 갖고는 안돼 경쟁과 민영화, 과거 틀 속에서 개선하려니 안되는 것"


- 얘기가 나온 김에 더 큰 담론인 전력산업 구조개편까지 나가보자. 우리는 구조개편 중단으로 오랫동안 이도저도 아닌 기형적 산업구조를 유지하고 있다. 그런데 경쟁도입을 반대하는 진영에선 이미 시장경쟁에 실패한 선진국 사례가 있고, 최근 다시 국영 쪽으로 회귀하고 있다고도 말한다. 이 논의에 있어 손 교수는 소위 시장론자로 분류되고 있다.

“(웃음) 경제학을 하는 사람은 원래 시장론자이고, 시장을 연구하는 사람이 시장을 믿지 않으면 되겠나. 실상을 좀 정확히 봐야한다. OECD 국가중 국가소유 독점공기업에 의해 전력이나 가스시장을 완전히 장악하고 있는 나라가 있나, 우리밖에 없다. 그걸 대칭적으로 보고 시장쪽으로 가야하느냐, 다시 원래로 돌아가야 하느냐 마치 양대로 구분하는 것은 늘 개혁을 반대하려는 사람들의 전형적 방식이다. 또 시장으로 가는 과정의 비용이 있으니 천천히 가야한다, 점진적으로 해야한다고 말하는데 세상 어느 나라가 깔끔하게 합의해서 그걸 할 수 있겠나. 당연히 반대하는 측이 있고, 영국처럼 경쟁과 민영화에 성공한 나라도 과거 석탄노조 측이 엄청나게 반대했다. 그때 그쪽을 지지한 글들을 가져와서 다른 나라는 안하고 있다, 아무도 전력산업 구조개편 얘기를 꺼내지 않는다고 하는데 다 이미(개혁이) 끝났으니까 그런거다. 하지만 우린 아직 전혀 진전이 안됐지 않은가. 일본도 2016년이면 소매시장을 전면 개방한다. 일본은 원래 국가가 소유한 회사가 아닌데다 지역독점마저 개방을 곧 끝낸다. 그런 판에 아직도 구태의연하게 세상의 변화에 눈을 감고 하는 얘기들을 갖고 마치 시장론자와 아닌 양대진영인 것처럼 얘기하는 것은 받아들이기 어렵다. 또 그쪽이야 이해관계자들이지만 나같은 사람은 이해관계가 없다. 소비자중 한명일 뿐이다. 나는 노조위원장과 대립된 개념도 아니고 경영자도 아니며 그저 학자다. 시장에 의존하지 않고 해결하는 방법이 늘 그다지 성공적이지 못했다는 내 이론을 얘기할 뿐이다. 정치적으로 그렇게 진영을 구분하는 건 사양한다.”

- 지금 시점에 반드시 짚고 넘어갈 문제는 무엇인가

“중요한 건 사실을 파악해 국민들에게 사실관계를 정확히 얘기하는 것이다. 전력이나 가스와 같은 유틸리티 산업이 경쟁과 민간주도의 산업으로 다 바뀌었는데 우리만 갈라파고스 수준이다. 우리나라는 이미 전 세계적으로 경제규모가 상당히 큰 나라인데 도매전력시장에서 거래되고 있는 방식이나 제도의 진화 상황을 보면 많은 문제가 있다. 해외 에너지전문가들에게 우리나라 전력시장 상황을 설명해주면 좀처럼 이해를 못한다. 삼성전자나 현대차처럼 시장의 효율이 잘 적용되고 그런 걸 철저하게 몸으로 익힌 나라가 어떻게 에너지 사이트는 아직 이렇게 남아있는지 의아해한다. 그럴 정도로 낙후돼 있다. 그러나 알다시피 반대도 워낙 많고 정치적으로 설득할 수 있는 정치력을 갖추지 못했기 때문에 여전히 정체된 상태다. 결국은 국민들이 비용을 지불하지 않을 까 생각한다.”

- 실마리를 어디서부터 풀어야 하나. 어떤 형태로든 새로운 방식으로 에너지시장을 움직일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말한 적이 있는데

“절대 쉬운 문제는 아니다. 우리사회가 그 부분에 대해 상당한 어려움을 겪거나 그런 논란이 본격화되지 않은 상태에서 일부 목소리만 갖고 거대산업이 변한다는 건 어려운 일이다. 한전이 전기료가 올라 최근 적자를 탈출했다 하지만 작년 기준 연결 재무재표로 부채가 105조원에 가깝다. 더욱이 공적 섹터인 공기업 부채는 줄기보다 오히려 자꾸 늘어나는 상황이다. 에너지시장에서 공적 영역이 기여하는 것보다 그게 더 심각한 문제로 국민들에게 받아들여져야 (변화를)시작하게 될거다. 나도 그런 것들을 기대도 하고 연구도 해봤지만 당장 우리가 그런 합의를 갖고 있느냐, 그걸 설득할만한 기술을 갖고 있느냐를 생각해보면 낙관적이지 않다. 모두가 전기는 싸게 쓰고 싶어하고 공기업 종사자는 안정된 직장을 계속 유지하고 싶어한다. 그러나 누군가는 비용을 지불한다. 전기를 절약하는 사람들과 미래 세대들이 그들이다. 그런 사람들이 정치적 발언권이 없다는 이유로 계속 희생해선 되겠나. 그런 문제를 공정하게 다루는 사회가 돼야 에너지문제도 해결의 실마리 풀지 않을까 싶다. 방법 측면에서 보면, 정부도 에너지신산업을 많이 강조하는데 이들 신산업 대부분이 모두 경쟁여건 속에서 보급 되고, 기술 개발이 이뤄지고 대량생산에 들어가 가격이 떨어지는 것들이다. 그런데 시장이 안 열리면 한전만이 유일하게 정부 보조를 받는 싼 가격으로 전기를 공급하면 무슨 재주로 소비자에게 ESS 등을 보급할 수 있겠나. 국가가 부채를 쌓아가며 싼 가격에 전기를 공급하면 새로운 기술이 발을 못 붙일 수 없다. 에너지를 거래하는 시장에서의 공정한, 혹은 경쟁기반 시스템을 만들지 않으면 신산업이 태동할 수 없다. 정부가 지원하거나 공기업이 다 해버리는 식의 신산업으론 원하는 바를 이루기 어렵다. 총론적으로 이런 문제에 대해 정치적 부담이 있으니 제도를 건드리지 않으면서 묘수찾기만 거듭하다보니 오늘날 도매 전력시장 같은 걸 만든거다.”


"국가가 부채 쌓아가며 싼 가격에 전기 공급하면 새 기술 발 못 붙여.
에너지 거래하는 시장의 공정 경쟁기반 시스템 만들지 않으면 신산업도 태동 불가" 


- 정부는 제몫을 잘하고 있나

“최선은 다하고 있다고 본다. 정치적 의사결정이 사회적으로 이뤄지지 않은 상태에서 흔히 얘기하는 부분 최적화를 하려고 무던히 애를 쓰는 것은 인정한다. 문제가 안 풀린 상태에서 하다보니 제약을 두고 특정 문제만 해결하는 일들에 대해선 상당히 뛰어난 능력이 있다고 본다. 그러나 문제의 본질은 그런 묘수찾기가 아니고 정치적 부담을 뚫고라도 본질을 해결할 수 있어야 하는데, 극히 그렇지 않아 보인다.”

- 원치 않는 질문일수도 있겠다. 왜 서둘러 학교로 돌아왔나. 어떤 회의감이 있었나 (그는 이 대목에서 상당히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답변에 뜸을 들였다)

“간단한 문제가 아닌데. 우선은 내가 급작스럽게 (사임을)마음먹은 것은 아니다. 오래전부터 학교로 다시

돌아가 과거 활동하던 식으로 하는 게 낫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또 인천대 우리과가 큰 과가 아니다. 여러분들이 밖으로 나가서 활동하다보니 운영도 어려웠다. 내 경우엔 인수위 때부터 시간이 꽤 지나서 학과로 돌아가야 하는 사정도 있었다. 개인적으론 원장이라든가 타이틀로 하는 일이 내게 잘 맞지 않았을 수도 있다. 대학에 있는 전문가로 활동하는 게 낫겠다고 판단했다. 이런 것에 대해 나는 그리 심각하게 생각 안했는데, 밖에서 심각하게 받아들여 사실 부담스러웠다. 자꾸 억측을 하니까. 분명한 건 느닷없는 건 아니다. 오랫동안 심사숙고 했다. 학교에 있더라도 에너지 관련 일을 할 텐데 (기관장으로는) 많이 했고, 그렇지만 공적인 일을 무시하거나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한 건 아니다. 그랬다면 애초 가지도 않았을 거다. 다만 내가 추구하는 바와 달랐고 대학도 나를 많이 원했다. (웃음)누군가가 내게 압력을 넣을 일도, 갈등이 있던 것도 결코 아니다. 그 얘긴 그 정도로 하자.”

- 학자로 돌아와 최근 관심 있게 지켜보고 있는 연구분야는

“사실 원장을 하면서 많은 것을 배웠다. 이전의 관심사가 전기나 가스 등 특정분야의 국내 이슈였다면 지금은 해외이슈에 굉장히 관심을 갖고 있다. 국제 에너지시장이 워낙 급변하고 있다. 어떻게 보면 전 세계가 한 번도 가보지 않은 영역을 가는거다. 에너지가 엄청난 진폭의 변화를 갖는 시점이고 오랫동안 지배해 온 매커니즘이 다 와해됐다. 새로운 질서로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넘어가고 있는데, 우리처럼 수입의존도가 높은 나라가 어떤 방식으로 에너지를 문제를 해결하고 설계해야 하는 지가 제일 관심사다. 과거엔 에너지 문제에 에너지만 있었는데 지금은 에너지가 산업, 기술, 외교나 국방과도 관련돼 있다는 생각을 한다. 개인적으론 사회활동하면서 얻은 큰 소득이다.”

- 새로운 질서로 빠르게 변하는 시대, 우리 정책은 어때야 하나 

“에너지 문제가 전문적으로 진화하다보니 그걸 다루려면 과거보다 전문성이 많이 필요하다. 국가도 그런 설계 역량을 갖춰야 한다. 특히 우리나라처럼 수입의존도가 높은 나라는 내부시스템이 유연해야 한다. '유가가 올라도 전기요금은 못 올린다'다는 식으론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더 키운다. 우리 스스로 외부 변화에 대해 적응력 키워야 하는데, 시장하는 사람들은 (해답을)공정한 경쟁매커니즘이라고 본다. 

<송도=이상복 기자 lsb@e2news.com>

<HE is…> 1958년 대구에서 태어났다. 경북고, 연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경제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미국 플로리다대에서 계량경제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에너지경제연구원 전력부하실장, 전력정책연구팀장 등을 거쳐 인천대 경제학과 부교수를 지냈다. 산업자원부와 지식경제부에서 전기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했다. 18대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경제2분과에서 전문위원으로 현 정부 정책 방향수립에 관여했고, 이후 2013년 7월 에너지경제연구원 10대 원장으로 취임했다. 그러다 작년 12월 중순 원장직을 중도 사임한 뒤 인천대로 복귀해 현재 동북아경제통상대 경제학과에서 자원경제학과 계량경제학을 강의하고 있다. 부인 안론자씨와의 슬하에 아들 둘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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