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 단 두곳 남은 연탄공장 '고명산업' 방문

▲ 신희철 고명산업 전무가 저탄소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현재 이곳에는 3만톤의 무연탄이 비축돼 있다.

[이투뉴스] 지난 15일 오전 7시 서울시 구로구 금천구청역. 출근 길에 나선 사람들이 바쁘게 역으로 향하는 계단을 오르는 가운데 한쪽 편에서는 2톤 트럭이 쉼없이 사라졌다 나타나길 반복한다. 한때는 우리나라 경제발전을 주도했지만, 이제는 사양산업이 돼 한켠으로 물러난 연탄. 금청구청역 왼쪽 한켠에는 서울에 단 두곳남은 연탄공장중 한 곳인 고명산업이 있다.

입구에서 볼 때는 바닥에 가로 2m, 세로 7m 크기의 흙탕물 웅덩이가 있고, 위로 아치형 간판에는 '고, 명, 산, 업' 이라고 한 글자씩 씌어 있다. 외관만으로는 이곳이 연탄공장이라고 짐작하기 어려웠다. 흙탕물 웅덩이 옆 인도를 통해 안으로 들어서자 입구에서 쉼없이 들어갔던 2톤 트럭들이 왼편에 줄지어 서있다. 트럭 옆으로 10m는 족히 돼 보이는 트랙이 돌고 있었고, 그 위에는 연탄이 가지런하게 놓여 있었다. 트럭을 타고 온 기사들은 두명씩 짝이 돼 트랙을 따라 이동하는 연탄을 부지런히 담고 있다.

이곳에서 나간 연탄은 서울과 경기도, 충청도 지역으로 배달된다. 고명산업은 연간 12만5000톤에서 13만톤의 무연탄을 사용해 연탄 3400만장 가량 생산한다. 하루 판매량은 30만장 정도다. 9월 중순인 지금은 여름내 한가했던 공장이 가동을 시작하며 슬슬 몸을 풀고 있다. 겨울철 소비가 많은 연탄은 봄, 여름 비수기를 지나 10월부터 성수기다. 신희철 고명산업 전무는 "성수기에는 오전 6시부터 저녁 9시까지 하루 15시간씩 일한다"며 "탄을 받아 연탄을 찍어내고, 트럭에 실려 내보내는 일을 반복하면 어느덧 하루가 간다"고 말했다.

고명산업은 대한석탄공사 도계광업소와 장성광업소, 화순광업소로부터 무연탄을 조달한다. 여기에 수입탄을 섞어 연탄 품질 기준을 맞춘다. 철도를 통해 화차로 무연탄이 들어오면 보통 3~4차씩 들어오는 데 한 차에 평균 54톤을 담고 있다. 화차에 담긴 무연탄을 포크레인으로 퍼내 저탄장으로 옮겨진다.

 

▲ 윤전기가 부지런히 연탄을 찍어내고 있다.

저탄장은 공장 입구에서 사무실을 지나 오른쪽 가장자리로 걸어 들어가야 나온다. 신 전무는 "이 계단을 올라가야 잘 보인다"며 앞장서 나무로 된 계단을 성큼성큼 올라갔다. 4m 가량된 높이의 다리에 올라 그 길을 따라갔다. 길은 양 끝이 철구조물이고 그 사이 나무 판대기들로 메워 만들어 졌다. 이따금 삐걱대고, 중간중간에는 한 두개 나무가 썩은 듯 사라져 고명산업의 오랜 역사를 몸소 실감케 했다.

길을 따라가니 저 앞에 까만 탄이 쌓여 생성된 봉우리가 보인다. 봉우리 윗부분에서는 포크레인 두 대가 부지런히 움직이고 있었다. 신 전무는 "현재 저탄장에 비축된 무연탄 양이 3만3000톤이다"며 "원래 비수기에는 3만톤만 비축하는 데 석탄공사가 지난해 수급불안정을 겪으며 올해도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비축량을 3만5000톤까지 늘리도록 주문했다"고 말했다.

저탄장에 쌓인 무연탄은 연탄으로 만들기 위한 반죽을 위해 물을 뿌린다. 무연탄의 수분 함량이 8%가 돼야 연탄을 만들 수 있다. 반죽된 무연탄은 저탄장 옆 공장 라인으로 들어간다. 거기서 돌을 골라낸 후 운전기로 넣어 연탄을 찍어낸다. 완성된 연탄은 입구 중앙에서 보았던 트랙을 타고 나와 배달 기사들의 품으로 간다.

공장을 돌며 신 전무는 "성수기에 돌입하며 바빠지긴 했지만 올해 매출은 지난해 대비 30% 가량 감소했다"고 말했다. 고명산업의 매출 감소량은 전국 평균보다는 조금 높은 편이다. 전국적으로는 전년동월 25% 가량이 판매가 감소했다. 매출 감소는 지난해 판매량이 예년에 비해 지나치게 높았던 게 원인이다. 겨울철 이상저온이 될 거라는 기상청 예보와 연탄가격이 오른다는 뉴스가 한바탕 떠들썩한 후 사람들이 사재기에 나선 것. 물론 두 가지 모두 현실로 일어나지 않았으며 연탄은 저마다의 창고에 고스란히 남았다. 

"얼마 전에는 광해관리공단에서 올해 연탄보조금 예산이 소진됐다는 공문이 왔다"며 "지난해에 이어 두 번째다" 매출 감소를 얘기하던 신 전무의 말은 자연스레 보조금으로 이어졌다. 서민연료로 여겨지는 연탄은 정부가 최고판매가격을 고시로 정하고, 생산원가와의 차액을 전액 보조금으로 지원해오고 있다. 지난해 12월 발표한 올해 연탄 공장도가격은 개당 373.5원으로 4년째 동결됐다. 생산 원가 증가분을 고려해 연탄제조업자와 수송업자에 대한 지원은 개당 각각 277.50원과 24.75원으로 인상했다.

연탄 가격은 동결되고, 생산 원가는 증가하니 둘사이의 벌어진 갭은 고스란히 정부 보조금을 늘려 메울 수밖에. 연탄가격 인상은 1989년부터 지난해까지 단 4번에 그쳤다. 2003년에 10% 오른 후 2007년 20%, 2008년 30%, 2009년 30% 인상 후 현재까지 유지되고 있다. 하지만 생산원가는 꾸준히 오르고 있다. 지난 3년 동안 연평균 4.2%가 올랐다. 보조금 증액은 피할 수 없는 현실.

▲ 윤전기에서 방금 막 나온 연탄들을 트럭에 싣고 있는 모습.
하지만 매년 늘어나는 보조금 만큼 기획재정부로부터 예산을 편성받기는 녹록치 않다. 정부가 2011년에 마련한 '석탄산업장기계획(2011~2015)'에서도 중장기적으로 연탄가격을 올리고 석탄산업에 지원해온 보조금도 단계적으로 축소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결국 지난해부터 보조금 예산이 년중에 소진되기에 이른 것. 사업을 담당하는 광해관리공단에 따르면 보조금 예산은 지난해에는 5월, 올해는 8월 소진됐다. 미지급된 보조금은 다음해로 이월 돼 지급된다. 

보조금 예산이 소진되더라도 협회나 광해관리공단에서 보증해 금융권 대출이 가능하다. 운영의 안정성은 보장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같은 상황이 일시적이거나, 개선될 것으로는 전망할 수 없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진다. 

감소하던 연탄 수요가 최근 정체하는 것도 이를 방증한다. 식당과 화훼, 기타 상업부분의 연탄 사용도 상당하다. 저소득층의 서민을 위해 쓰여야 할 보조금이 타 업종으로 새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보조금이 저소득층에 제대로 전달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는 논의가 제기되고 있다. 저소득층에게 바우처를 전달해 구매시 직접 할인을 받게 하는 것도 방법이다. 업계 시각의 주장도 나온다. 최근 연탄업계에서는 현재의 가격 동결 정책을 지속가능 할 수는 없다고 보고 있다. 대한석탄협회 관계자는 "업계에서도 가격 인상에 대한 시각이 나뉘는 것은 분명하다"며 "계속 동결되길 원하는 곳도 있지만, 가격 현실화가 바람직하다는 논의가 부쩍 늘었다"고 말했다.

연탄업계에서는 최근 정부가 연탄산업의 사양화를 따라 업계가 순차적으로 정리할 시간을 줘야한다는 시각이 크게 늘었다. 연탄 가격을 현실화 하는 순간이 와야 한다면 업계가 적응할 수 있도록 점차적으로 인상하는 방안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래야 가수요가 사라지고, 그에 맞춰 공장이 체급을 줄일 수 있다는 것이다. 연탄산업의 출구전략이 필요한 순간이다.

이윤애 기자 paver@e2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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