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은녕 자원환경경제학박사/서울대학교 에너지시스템공학부 교수/국민경제자문회의 및 녹색성장위원회 위원

허은녕
자원환경경제학박사
서울대학교 에너지시스템공학부 교수
[이투뉴스 칼럼 / 허은녕] ‘시장으로, 미래로, 세계로’. 지난 4일 에너지신산업 토론회에서 대통령이 제안한 구호다. 에너지의 미래에 혁신과 창조의 날개를 달자고 하는 주제를 내걸고 진행된 토론회에서 대통령이 제안한 구호는 참으로 우리나라 에너지산업의 현실을 잘 반영하고 있다. 
 
미국, 유럽 등 선진국들은 이미 21세기에 들어서면서 국가차원의 에너지계획을 수립해 실천하고 있다. 유럽은 일찌감치 기술개발을 통한 에너지절약으로 방향을 맞추고 장기적으로 전략을 수립해 시행해 왔으며 10여년이 지난 지금, 크게 줄어든 에너지 사용량을 바탕으로 기후변화협약을 이끌고 있다. 미국은 공급중심적인 정책을 수립해 왔으며, 결국 기술개발을 통한 셰일가스, 셰일오일의 개발 성공으로 유럽국가들 만큼은 아니지만 상당히 여유 있는 자세로 기후변화협약에 참여할 자세를 갖추고 있다. 하지만 한국, 중국, 일본 3개국은 아직 해결책을 만들지 못하고 있는 나라들이다.
 
그렇지만 중국과 일본은 세계적 규모의 에너지 기업들을 거느리고 있다. 중국의 페트로차이나, 시노펙 등은 이미 프랑스 토탈이나 영국의 BP보다 매출액이 더 큰 회사들이며, 일본 역시 미쓰비시, 미쓰이 등 상사와 더불어 굴지의 에너지회사들을 보유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그러나 세계 100위권에 들어 있는 에너지화사가 SK와 한국석유공사 정도다. 지금까지의 정부 정책이, 에너지는 산업(industry)이 아니라 공공업(utility)으로 보아왔기 때문이다.  대통령의 구호는 이를 일시에 뒤집어 우리나라도 세계적 추세에 맞추자는 구호라고 할 수 있어 크나큰 기대가 된다.
 
우리나라보다 경제규모가 큰 선진국들은 모두들 국제가격 변동과 같은 외부 충격에 대처하는 정책을 지속적으로 추구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그러나 10위권의 경제규모에 비해 에너지 자급자족률이나 비축량은 30위권에도 들지 못하는 초라한 수준이다. WEC(국제에너지협회)가 발표한 2013년 회원국 에너지 지속성 지수에서 우리나라는 에너지 안보 지수에서 103위, 환경지속성 지수에서 86위를 기록해 대상 국가들 중 평균에도 들지 못했다. 선진국과의 비교는커녕 개발도상국 수준에도 못 미치는 것이다.
 
21세기 에너지분야의 화두가 바로 기술에너지이다. 신재생에너지나 수소에너지 등 저탄소녹색성장을 대표하는 에너지들이 바로 대부분 기술중심형 에너지들인데, 이는 앞으로는 에너지기술의 확보가 바로 에너지의 확보로 이어질 수 있음을 말하고 있다. 이제 자원이 부족한 우리나라도 기술개발로 세계 수출이 가능하다는 것이며, 대통령의 구호도 바로 이러한 새로운 시장에 바탕을 두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 에너지 기업들의 R&D 규모는 아직 매우 작다. 우리나라 에너지 R&D 총액의 80% 이상이 정부 예산으로 이루어지며, 정부도 대규모 기술개발 프로젝트를 발주하지 않고 작은 규모의 R&D 사업만 실시하고 있다. 미국 등 선진국의 경우 대규모 연구프로젝트 이외에도 첨단기술을 보유하고 있거나 개발 중인 에너지 벤처기업에게 많은 지원을 하고 있다. 지원분야도 다양해 전통적인 석유, 가스 등 화석연료와 신재생에너지 뿐만 아니라 에너지절약, 신재료, 신물질 등에 지원하고 있다. 유럽은 아예 2050년까지 에너지장기계획을 기술개발 중심으로 세워, 에너지원 확보와 에너지 효율화를 동시에 이루고자 하고 있다. 에너지 기술개발에 적극적인 투자를, 특히 민간에서 일으키는 것이야 말로 미래 에너지산업의 발전을 유도하는 지름길일 것이다.
 
신흥국가로의 진출 역시 오랜 동안 제시되어 왔던 방향이다. 2000년대를 전후해 나타난 BRICS에 이어 최근에는 MIST, TIMBIs, VIP, CIVETS 등 다양한 신흥국가군들이 새로운 투자처로 언급되고 있다. 대토론회에 참여한 리처드 뮬러(Richard Muller) 교수의 발표내용 대로, 21세기에는 이들 개발도상국가들의 에너지사용량이 OCED국가들을 훨씬 앞지를 것이며, 이로 인해 해당 국가들에서는 소비지출 증가 및 각종 첨단에너지 인프라 구축의 요구가 높아질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발전시설을 비롯해 에너지 산업의 해외진출을 모색하고 있고, 또 성공사례도 쌓아가고 있다. 또한 상승하던 국제유가가 주춤한 현재, 오일머니를 중심으로 하던 중동국가들을 대체할 새로운 투자지역도 나타나고 있다. 신흥국의 수요를 성공적으로 확보하게 되면, 선진국 노후화된 인프라 교체사업 역시 우리의 새로운 시장이 될 가능성이 높다.  우리나라의 최고 수준의 에너지시설 건설 및 운영 능력을 세계적으로 수출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인 것이다.
 
에너지정책의 패러다임이 지정학 중심에서 기술경쟁력 중심으로 변화하고 있는 이때가 우리나라에게는 절호의 기회이다. 국내부존자원이 없다고 에너지 분야의 세계적 경쟁력을 가진 기술전문기업들이 없으라는 법은 없다. 고부가가치의 기술서비스의 제공을 중심으로 하는 에너지전문 기술서비스 업종의 육성은 그러한 면에서 매우 시급하며 또한 장기적으로 국가 경제를 이끌어 갈 성장동력으로 최고의 선택이라 보인다.
 
시장으로, 미래로, 세계로. 여기에 국민의 관심과 정부의 정책초점이 맞춰지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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