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투뉴스] 잔인한 4월이 가고 무기력한 5월도 속절없이 지나고 있다. 어른들의 부도덕한 욕망과 사회 부조리가 초래한 참사로 우리 아이들이 치른 희생은 감당할 수 없이 컸다. 이렇게 충격적인 사고를 겪고 나서야 뒤늦게 주변과 자신을 둘러보는 우리들 모두가 차가운 바다 속에 아이들을 수장시킨 공범이다. 나와는 상관없다며 외면했던 일, 문제가 있는 줄 알면서도 모른 척 했던 일, 내 이익에 부합하면 과정도 정의도 묻지 않던 일들이 적폐가 되어 삽시간에 세월호를 침몰시켰고, 그 대가를 영문도 모르던 우리 아이들이 억울하게 치러야 했다.

평소 냉철한 이성으로 에너지산업 전환기마다 통찰력을 발휘해 온 한 에너지 전문가가 최근 세월호 사고를 화두로 이야기를 주고받다 건넨 전언은 쉽게 잊히지 않는다. “다음 사고는 아무래도 원전이 될 것 같다”는 섬뜩한 얘기였다. 결코 현실화 되어선 안 될 일인데, 곱씹을수록 쓴맛이 났다. 최근까지 이어진 원전비리 사태와 앞서 일본에서 일어난 후쿠시마 사고 영상이 오버랩되면서 ‘우리 원전은 정말 안전한 것일까?’란 물음이 머릿속을 계속 맴돌았다. 물론 원자력 출입기자로 가까이 지켜본 우리 원전은 다른 원전 운영국보다 상대적으로 안전하게 운영되고 있다는 인상을 줬다. 원전 사태 이후 안전규제와 운영시스템을 쇄신했고, 1조원이 넘는 비용을 들여 안전설비도 대폭 보강했다.

문제는 세월호도 그렇거니와 시스템이나 규제가 아닌 사람이다. 역대 원전 중대사고는 모두 종사자들의 인적 실수에서 비롯됐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쓰리마일섬과 체르노빌은 운전원의 오조작이 직접적인 원인이었고, 후쿠시마는 예측 이상의 해일에 비상발전기를 물에 잠기도록 설계·방치한 원전당국의 자만이 마지막 저지선을 무너뜨린 결과를 낳았다. 제 아무리 안전시스템을 강화해도 종사자들의 인식이 바뀌지 않으면 원전 안전은 공염불이 될 수 있다. 최근 원전 산업계 관계자는 "무너진 신뢰를 회복하는 게 이렇게 어려운 줄 몰랐다"고 하소연한 적이 있다. 사건·사고만 터지면 원전산업이 들러리로 입방아에 올라 얻어맞는다는 푸념이다. 

빠른 신뢰회복을 위해 한 가지 제안을 건넨다면 '안전한 원자력'만을 강조하는 지금까지의 홍보는 변화가 필요해 보인다. '원전은 위험하다, 그러나 우리는 안전을 위해 이렇게 노력하고 있다'는 역발상의 홍보가 국민에 더 믿음을 주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물론 사람이, 각오가 변하지 않으면 진정성을 인정받기 어렵다.

이상복 기자 lsb@e2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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