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원전 여론 불구 원전 재가동으로 정책 급선회
천문학적 무역 적자 Vs 비우호적 국민 여론 난제

▲ 일본 아베 정부가 발전연료 수입으로 무역적자가 심화되자 원전 재가동에 드라이브를 걸고 있다. (사진은 도쿄전력의 오히 lng화력발전소) <사진제공-도쿄전력>

[이투뉴스] (난감한 표정을 짓더니)“… 미안합니다. 저는 뭐라 할 말이 없네요.”(30대 여성·회사원), “정부 계획대로 되기는 어려울 겁니다. 그렇지만 남을 의식할 사안은 아니라고 봅니다.”(50대 남성·자영업자), “정부가 고민해서 잘 결정할 문제라고 생각합니다.”(40대 남성·서비스업)

26일 오후 일본 도쿄 시나가와구 오사키역. 낯선 한국기자로부터 ‘아베 정부가 경제회복을 명분으로 원전 재가동을 준비하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을 받은 현지인들의 반응은 매우 조심스러웠다. 대부분 즉답을 피한 채 긍정도 부정도 아닌 태도를 취했다.

3.11 후쿠시마 원전 사고 발발 3주기를 열흘 가량 앞둔 일본은 외형상 대지진 이전의 평온을 완전히 되찾은 듯 했다. 이날 주요 방송사들은 시즈오카현의 사쿠라(벚꽃) 조기 개화와 ‘살인진드기(SFTS 바이러스 감염증)’ 사망자 확산 소식을 주요 뉴스로 다뤘다.

동일본 대지진 관련한 보도는 후쿠시마로 귀향하지 못한 집단 이주민들의 삶을 다룬 <NHK>방송의 ‘원전 피난 3년, 희망은 어디에?’란 제목의 기획물이 유일했다. 이들에게 3년전 참사는 가능하다면 빨리 잊고 싶고, 그래서 재삼 거론하기 꺼려지는 주제가 된 듯 보였다.

앞서 아베 내각은 전날 각료 회의를 열어 중장기 에너지정책 방향을 담은 에너지기본계획을 의결했다. 원자력 발전을 ‘중요 기저부하 전원’으로 규정한 이 계획은 가능한 한 원전 의존도를 줄여야 한다면서도 향후 원전 수요에 대한 계량이 필요하다며 신증설을 위한 여지를 남겼다.

모테기 도시미츠 일본 경제산업성 장관은 이날 각료 회의 이후 기자회견에서 "원전 제로 등의 근거 없이 보여주는 식의 정책은 책임 있는 에너지정책이라 할 수 없다”고 밝혔다. 이달초 도쿄도지사 선거에 '탈원전'을 기치로 출마했다 낙선한 모리히로-고이즈미 전 총리 연대를 겨냥한 발언이다. 

◆ 日 에너지정책, 탈원전에서 원전 재가동으로 선회
일본 정부에 따르면 재가동 원전인 오이 3,4호기가 작년 9월 정비에 들어가면서 전체 48기의 원전중 현재 가동원전은 ‘0’기다. 전력생산의 최대 30%를 책임지던 원전의 공백은 LNG와 석탄화력 등이 대체하고 있다.

경제산업성 통계에 의하면 일본내 전원비중은 2010년 석탄화력 43.5%, 원자력 22.3%, LNG화력 13.8%, 수력 4.3% 순에서 2012년 LNG화력 42.5%, 석탄화력 27.6%, 석유 18.3%, 원자력 1.7% 순으로 뒤바뀌었다.

이 과정에 동경전력 등 9개 발전사들의 연료비는 2010년 약 3조6000억엔에서 2012년 7조엔으로 급증했고, 연료 수입증가와 엔저 상황에서의 수입액 증가로 2012년 일본 무역적자는 무려 6조9000억원엔을 기록했다.

아베노믹스 성패가 원전 재가동을 통한 무역수지 적자 감축 여부에 갈리게 된 셈이다. 일본 정부가 원전에 대한 비우호적 여론을 무릅쓰고 원전 지역주민 및 지자체 설득작업에 나서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작년 7월 기준 일본 원자력규제위원회에 원전 재가동을 위한 안전심사를 신청한 원전은 규슈전력의 센다이 1호기 등 모두 17기다. 당국은 이중 약 10여기의 원전이 올여름 전력피크 이전에 가동될 것으로 보고 있다.

여기에 원자력을 ‘중요 기저부하’로 정의한 이번 에너지기본계획에 따라 건설·계획원전 11기의 신증설 여부도 조만간 쟁점화 될 전망이다. 일본 에너지정책의 균형추가 급격히 원전 재가동으로 쏠리는 모양새다.  

◆ 발전연료 수입액 폭증으로 '아베노믹스' 무력화
후쿠시마 원전 방사능 유출이 현재 진행형이고 수습조차 어려운 상황임에도 일본 정부가 원전 재가동에 드라이브를 거는 이유는 막대한 무역적자와 전기료 인상에 따른 산업경쟁력 약화 우려 때문이다.  

원전 가동정지 이후 발전사들은 연료비 증가로 사상 최대의 적자를 내고 있다. 원전 비중이 각각 28%, 44%였던 동경전력, 간사이전력은 2012년 각각 6852억엔, 2243억엔의 적자를 기록했다. 원전비중이 높을수록 적자폭은 컸다.

이들 발전사는 이같은 이유로 2012년 하반기부터 지속적으로 전기요금을 인상해 정부 가격규제를 받는 가정용까지 2010년 대비 20%나 요금을 올렸다. 원전 재가동이 늦어지면 추가 인상의 가능성도 높다.

이 때문에 산업계와 언론은 원전 재가동을 위한 여론몰이를 본격화하고 있다. 최근 전기산업협의회는 원전 신증설의 차질없는 이행을 촉구하는 의견을 정부 측에 전달했다. 또 보수성향의 언론 등도 아베 정부의 에너지정책을 두둔하고 있다.

<요미우리신문>은 ‘원전활용 에너지계획은 타당하다’는 제목의 26일자 사설에서 “원전 정지로 전체 전력의 90%를 화력에 의지하면서 전기료 폭등과 거액의 무역적자 등 폐해가 심각하다”며 “자원이 부족한 일본의 원전활용은 가장 현실적인 에너지 전략”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대다수 일본 국민은 여전히 원전 재가동에 우호적이지 않다는 게 아베 내각의 고민이다. 지난달말 <교도통신>이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일본 국민의 60.2%는 '원전 재가동을 반대한다'고 응답해 '찬성한다'는 비율(31.6%)을 압도했다.

작년 6월 <아사히신문>이 같은 내용으로 찬반을 물었을 때보다 오히려 반대 여론이 증가했다. (당시 재가동 반대 58%, 찬성 27%, 무응답 14%)  저성장의 깊은 늪에 빠진 일본이 어떻게 후쿠시마 트라우마를 극복하고 아베노믹스를 성공 궤도에 올려놓을 지는 여전히 안갯속이다.

<도쿄=이상복 기자 lsb@e2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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