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층진단] 전력대란·송전대란 원인과 해법
공급도, 수요관리도 실패…적정투자와 대안 시급

[이투뉴스] 한국은 지난 수년간 전례 없는 전력수급난을 겪었다. 전기가 모자라 순환정전을 실시했고, 혹서기와 혹한기 때마다 가슴 졸이며 냉·난방기를 꺼야했다. 수요를 따라잡지 못한 공급능력 탓이다. 다행히 대규모 발전설비가 확충되는 향후 수년간은 이런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큰 고개를 넘었다 했더니 더 높은 준령이 나타났다. 전력산업은 지금 미증유의 송전난과 맞닥뜨려 있다. 수급난이 ‘보이는 적(敵)’이라면 송전난은 ‘보이지 않는 적’이다. 이미 적신호가 켜진 계통은 언제, 어디서 터질지 모르는 지뢰밭이다. 이대로 가면 위기의 시간은 그만큼 앞당겨진다.

본지가 한전이 발전자회사와 전력거래소, 민간발전사 등으로부터 집계한 통계자료를 토대로 전력산업 구조개편이 태동한 2000년부터 2012년말까지 12년간의 국내 전력수요 추이와 발전·송전설비 확충 현황을 들여다봤더니, 최근 수급난과 당면한 송전난의 원인은 명확하게 드러났다.

먼저 전력수요(판매량)는 2000년 23만9535GWh에서 2012년 46만6592GWh로 2배 가까이 급증했다. 인구 1인당 소비량은 6144kWh에서 9752kWh로 1.58배 늘었고, 한전의 고객호수도 1560만호에서 2047만호로 증가했다. 과거보다 더 늘어난 소비자가, 이전보다 더 많은 전기를 썼다는 얘기다.

이런 추이 자체를 비정상으로 단정하기는 어렵다. 어느 나라건 경제성장과 산업화, 소득수준 향상에 비례해 전력소비는 늘어난다. 그러나 10여년 만에 수요가 배나 불어난 것을 정상으로 보기는 어렵다. 불꽃에 기름을 끼얹은 것은 정치적 포퓰리즘에 볼모로 잡힌 전기요금 탓이 크다.

본지 통계분석에 의하면 2000년 이후 8년 사이 전력수요는 1.6배 뛰었으나 같은기간 전기료는 고작 kWh당 4.1원 올랐다. 물가상승률을 감안하면 오히려 요금이 내린 셈이다. 정부는 이후 발전연료 가격 폭등에도 물가안정을 이유로 요금현실화를 계속 미뤘다. 한전의 누적적자는 이 기간에 쌓였다.

한전의 매출액대비 순이익률은 2000년 9.8%에서 정확히 2008년부터 적자(-9.4%)로 돌아서 내리 4년간 마이너스 행진을 이어갔다. 2007년 93.7%였던 원가회수율은 2011년 87.4%로 되레 주저 앉았다. 방만경영을 지적하는 시각도 있으나 12년간 한전의 1인당 생산성(판매량 기준)은 2.7배 상승했다.

송전사업자인 한전의 경영난은 필수투자의 축소로 이어졌다. 전력산업연구센터에 따르면, 원가와 요금의 비대칭이 심화된 2007~2010년 사이 전체 전력투자는 늘었으나 이 기간 송·변전 투자비중은 33%에서 18%로 급감했다. 2000~2012년 발전소가 1.6배 늘어난 사이 송전선은 겨우 1.2배 확충됐다.

이창호 전력산업연구센터장은 “1960년대부터 2010년까지 발전설비는 207배, 최대수요는 234배 증가하는 동안 송전설비는 6배 늘어 상대적으로 미미한 증가율을 보이고 있다”며 “대규모 전원의 급속한 확대로 고장전류가 증가하고 전압 불안정이 심화되는 등 계통환경이 악화되고 있다”고 말했다.

물론 송전선로 확충은 의지만으로 해결될 사안이 아니다. 밀양 사태에서 보듯 전력설비에 대한 수용성은 어느 때보다 낮다. 국책 연구기관의 한 관계자는 “송전선 건설갈등은 결국 보상의 문제”라면서 “ 발전소주변지역지원에관한법률로 보상받는 발전소와의 격차가 송전선 문제를 키우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 관계자는 “송전선 확충이 어렵다고 분산형 전원을 늘리자는데 이는 매년 수조원대의 국가적 편익을 포기하자는 주장”이라며 “본질적인 문제는 따로 있는데 모두 책임지기 싫어하고 일시적인 모면에만 급급하다. 민간에 사업을 맡긴 뒤 추후 되사는 방법을 고려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거시적 시각에서 지금이라도 발전·송전 투자를 늘려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문영현 연세대 전력공학부 교수(前 대한전기학회장)는 “발전설비는 수요에 비례해 늘려야 하나 현재지표는 설비부족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면서 “특히 송전선은 2000년대말 건설계획이 취소된 전례가 있다"고 말했다.

문 교수는 “연초부터 정부는 ‘통일 대박론’을 들고 나오고 있다. 어떤 식으로든 남북 화해협력이 필요하게 되었고, 그에 상응해 제일 먼저 거론될 수 있는 것은 전력지원”이라며 “충분한 설비확충은 여러 측면에서 시급히 해결해야 할 급선무”라고 강조했다.

이상복 기자 lsb@e2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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