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희찬 한국환경정책·평가연구원 연구위원

[이투뉴스 칼럼 / 강희찬]  협상의 결과에는 항상 승자가 있고 패자가 있다. 누군가는 가벼운 마음으로 귀국길에 오르는 사람이 있는 반면, 누구는 빈털터리로 무거운 발걸음을 돌려야 하는 경우도 있다. 협상에는 항상 뒤에 실질적인 조정자가 있다. 일국의 대표가 협상을 하고 있지만 그 뒤에는 국민이 있고, 기업이 있으며, 정부가 있다. 협상장에서 쉽게 양보해준 덕에 실질적 조정자가 몹시 곤욕스러운 결과를 맞아야 하는 경우도 존재한다.

이번 UN 기후변화협약 19차 당사국 총회는 폴란드 바르샤바에서 열린다. 150개가 넘는 많은 국가의 협상 대표들이 자국의 이익을 대변하여 열띤 논쟁을 벌일 예정이다. 전세계 기후변화 영향을 최소화하는 대의를 위해 모인 각국 대표들이지만 뒤에 있는 국민, 기업 그리고 정부의 이익과 관심을 절대 저버릴 수 없다. 개도국은 기상재해로 인한 피해를 최소화하는 동시에, 자국의 빈곤퇴치와 경제개발의 우선순위를 놓칠 수 없다. 반면 선진국은 과거 기후변화 유발에 심각한 영향을 미쳤다는 ‘원죄’를 씻어야 하는 동시에, 감축 부담 가중으로 인해 자국의 국민과 산업에 미칠 경쟁력 약화를 최소화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선진국은 이제 과거의 유령에서 벗어나고 싶어 한다. 그리고 최근 경제성장으로 온실가스 배출량이 급격하게 늘어나는 중국, 인도 그리고 한국 등과 책임을 나누고 싶어 한다.

하지만 한국을 포함한 이들 신흥개도국들의 불만도 만만치 않다. 선진국들은 과거 아무런 제재 없이 온실가스를 배출하며 경제성장을 이뤘으면서, 정작 이제 경제성장에 박차를 가하려고 하니 이를 막고 있다고 볼멘소리를 한다.

그러나 선진국도 논리가 있다. 현재 중국 등이 배출하는 온실가스 배출량과 가까운 미래의 배출량까지 합치면, 과거 선진국들이 배출한 량에 맞먹는다고 주장한다. 한국도 이런 논리에 자유로울 수 없다.

한편, 중국 등 신흥개도국을 제외한 개도국들의 상태를 한마디로 말한다면 ‘단단히 삐져있다.’ 2009년 이후로 선진국의 협상 제안을 받아들여 개도국들도 온실가스를 감축하기로 했다. 그러나 이에는 하나의 단서가 있었다. 즉 선진국이 개도국에 대해 충분한 돈을 지원해 주고, 필요한 기술도 지원해 주고, 전문 인력도 지원해 준다는 조건을 걸고 합의해 준 것이다. 하지만 개도국 주장에 따르면 돈, 기술, 인력을 지원해준다던 선진국은 다른 개도국 일반지원 사업(ODA 사업 등)을 마치 기후변화 대응 개도국 지원사업으로 포장해서, 실질적 내용도 없이 생색만 내고 있다고 주장한다.

선진국의 불만은 마찬가지다. 기후변화 대응을 위한 다양한 개도국 지원 사업을 해왔고, 이를 위한 여러 기구들(GCF, TEC, AF 등)도 만들어서 운영하고 있는데, 개도국의 요구가 지나치다는 입장이다. 최근에는 경기침체로 자국도 이를 타개하는데 온통 정신이 팔려 있는데, 사정을 좀 봐달라는 입장이다.

이번 폴란드에서 열리는 COP19은 선진국과 개도국 모두의 상한 마음을 어떻게 달래줄 수 있느냐에 따라 그 성패가 갈릴 것이다. 선진국, 개도국 모두 지금의 경제가 얼마나 힘든 상황이냐에 대해서는 서로 동감을 하고 있다. 하지만 각국의 실질적 이해당사자들에게 큰 영향을 주지 않으면서도, 복잡하게 엉킨 실타래를 풀 수 있는 대안들 하나둘씩 정도는 뒷짐에 숨기고 있다.

문제는 언제 그 숨긴 패를 꺼내 놓을 것이냐일 것이다. 선진국은 지금보다 더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높일 수 있다. 그러나 개도국이 협조하지 않겠다고 나오면 선진국은 한발자국도 움직이려 하지 않을 것이다. 또한 지금처럼 감축 실적을 적절히 보상받지 못하는 상황에서는 자국 국민과 기업의 지지를 끌어낼 수 없다. 한편 개도국도 온실가스 감축 노력에 동참할 여지가 있다. 그러나 선진국의 충분한 지원이 확실히 보장되지 않는 한 협상에 동참하지 않을 것이다.

한국은 이러한 선진국과 개도국 간에 벌어진 갈등의 상황에서 어떤 결정을 내려야 할 것인가? 협상의 진전도 중요하고 그 만큼 우리나라의 부담도 최소화해야 한다. 이 두 가지 목표를 동시에 달성할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은 한국이 잘할 수 있는 것, 그리고 선진국과 개도국 모두에게 도움이 되는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 그것은 바로 선진국에게는 감축 상향에 대해 적절한 보상을 해주고, 개도국에게는 충분한 지원이 돌아가게 할 수 있는 대안을 찾는 것이다.

이를 위해 첫째, 한국은 GCF 유치국으로서 선진국으로부터 개도국으로의 자금이 원활하게 흘러갈 수 있는 대안을 강구하는 동시에, 자금, 기술, 인력지원이 중복되지 않고 효율적으로 지원될 수 있는 통합적 메커니즘을 제시해야 한다. 둘째, 개도국의 감축 실적이 보다 명확하고 비교가능할 수 있도록 한국의 노하우를 공유해야 한다. 셋째, 선진국의 감축 실적이 적절히 보상받을 수 있는 보다 유연한 시장메커니즘을 제시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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