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 위한 체질강화 필요…변화 피할 수 없는 상황 직면
정부, 개발·생산은 민간기업, 공기업은 탐사개발로 분담

▲ 하울러 광구 산출시험(dst) 장면.

[이투뉴스] 특별한 사건이 일어나지 않는 한 올해 산업통상자원위원회 국정감사에서는 해외자원개발 공기업들이 중심에 설 것으로 관측된다. 해당 위원회 의원들이 공개석상에서 "이번 국정감사에서 봅시다"라는 말을 주저 없이 할 정도다.

한 의원은 "석유공사 사장에게 올해 내 부실자산을 정리해야 한다고 제안해 그렇게 하겠다는 답을 들었다"라고 말했다. 결국 서문규 사장은 "캐나다의 하베스트를 매각하기로 결정했다"고 공식 발표했다. 업계에서는 이를 시작으로 부실자산 매각이 본격화 될 것이라고 내다보고 있다.

지난 정부에서 급격하게 성장했던 자원개발 공기업들이 이번 정부 들어 연일 계속되는 외부 공세에 맥을 못 추고 있다. 한 공기업 관계자는 "납작 엎드리고 있어야 할 시기"라고 말한다. 또 다른 공기업 관계자는 "지난 정부에서 시켜서 한 일인데 우리한테만 쏟아지는 비난이 억울하다"고 항변한다. 대응은 다르지만, 이들의 운명은 같다.

지금은 변화가 필요한 순간이라는 점이다. 새 정부는 자원개발 공기업에 '부실자산을 정리하고, 내실화를 기하라'고 주문한다. 해당 공기업들은 "공기업 평가시스템이 자원개발 공기업의 특성을 고려하지 않아 가혹한 면이 있다"고 평가 개선을 요청한다. 전문가들은 "정부 말도 일면 맞고, 공기업 말도 맞는 부분이 있다"며 양측 모두에 변화를 주문한다.

◆자원개발 공기업 내부 역량 키워라
해외자원개발 공기업들의 역량 부족을 지적하는 면에서는 정부와 전문가들이 의견 일치를 이룬다.

이번 정부는 출범부터 일관되게 '해외자원공기업 내실화'를 정책 목표로 내걸며, 한편에서는 자원개발 예산을 삭감하고, 다른 한편에서는 자산매각을 준비하고 있다. 지난 정부에서 과대해진 덩치를 줄인다는 측면에서 일맥상통한다.

에너지정책을 지휘하는 윤상직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이미 인사청문회에서 "에너지 공기업의 해외자원개발 사업을 철저히 평가해 수익성이 떨어지는 부분은 구조조정을 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올해 초 대통령 업무보고에서는 "수익성 미흡·소규모 자산 매각 등을 통해 해외사업 구조조정 및 재무 건전성을 개선 하겠다"고 못 박았다.

전문가들도 정부의 이 같은 정책방향에 동의한다. 허은녕 서울대 에너지시스템공학부 교수는 "정부 정책은 현재 해당 공기업의 자질과 능력으로는 사업을 잠시 쉬는 게 낫다는 것으로 보인다"며 "내부 역량을 키울 때까지 정부가 기다리겠다는 입장인 것 같다"고 설명했다.
 
그는 "물론 잘못된 사업들을 이 기회에 자르며, 부실자산을 팔고 나야 여유자금도 생길 것"이라며 "공기업의 해외자원 개발을 그만하자는 게 아니라 더 큰 성장을 위한 체질강화"라고 덧붙였다. 정부의 해당 공기업 예산 삭감, 자산 매각을 두고 업계에서 근시안적인 판단이라는 비판이 나오는 걸 염두에 둔 말이다.

결국 이들 공기업이 지난 정부에서 몸집 키우기에 역량을 집중했다면 이번 정부에서는 내부 인력양성, 기술력 등 질적 성장을 이뤄야 할 상황에 처한 것이다.

◆분야별 각각의 역할에 역량 집중 
지난 정부에서 덩치 키우기에 집중하던 공기업들이 이번 정부에서 '내실화'를 이루는 방안은 리스크가 큰 탐사개발 추진이다. 정부는 대규모 투자가 소요되는 개발·생산을 민간기업이 담당하도록 역할분담을 마쳤다.  

탐사개발은 구체적으로 탐사광구 비중을 현재 5%에서 2017년 20%까지 확대하고, UAE·이라크 등 중동과 베트남·미얀마 등 동남아시아 같이 도입이 용이한 대형광구 및 셰일가스 개발에 역량을 집중시키는 것이다.

민간기업이 대규모 투자가 소요되는 개발, 생산 부분에 적극적으로 나설 유인책도 마련한다. 성공불융자 지원액을 늘려 투자 동력을 불어넣는 것이다.

유법민 산업부 자원개발전략과 과장은 국회에서 열린 '해외자원개발사업의 문제점 및 추진 방향' 정책세미나에서 "올해 성공뷸융자 지원액을 지난해 보다 증액시키겠다"고 업계에 약속했다. 성공불융자 지원액은 이번 한해 1000억원으로 3년 전 한해 3600억원과 비교해 3분의 1로 줄었다.

사실 성공불융자는 쪼그라든 총액과 함께 사업에 대한 평가 없이 일괄 비율 지원으로 업계의 지적을 받고 있는 형편이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과거 50%까지 지원했던 규모가 점차 줄더니 현재는 15%까지 떨어져, 제도 목적인 민간 투자 독려에 별 영향을 못 미친다"며 "더군다나 모든 사업에 15%를 적용해 수익예상 사업과 실패 예상 사업을 걸러내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정부가 개별 사업성을 평가해 그에 맞는 적절한 지원이 이뤄져야 한다는 말이다. 

그는 또 "최근 정부의 성공불융자 증액 계획은 지난 정부에서 공기업 예산 증액 과정에서 감축했던 민간 기업 예산을 되돌려 주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지금의 상황이 오래 가지 않을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 한 관계자는 "가만히 살펴보면 해외자원개발 공기업들을 향한 비판이 개선을 위한 충고가 아닌 정파에 따른 측면도 있다"며 "정부는 지난 정부와 선을 긋기 위해 말 많던 해외자원개발 공기업의 체질변화를 주문하고, 야당은 여당에 대한 공세를 펴는 선에서 그치는 부분이 있다"라고 말한다.

결국 이번 자원개발 체질을 완전히 바꾸기 보다는 개혁을 추진하다 어느 정도 선에서 그칠 공산이 크다는 말이다.  어느 쪽의 시각이 맞을 지 두고 볼 일이다.<인터뷰> 허은녕 서울대 에너지시스템공학부 교수

<인터뷰> 허은녕 서울대 에너지시스템공학부 교수 

"공기업 운영 및 평가시스템 변화 함께 해야 성공"
해외자원개발 공기업만의 사업 특수성 고려 필요
공기업도 사장이든, 프로젝트 담당자든 책임 마땅 

해외자원개발 공기업들에 비난이 쏟아지는 와중에 장기적인 시각에서 이들 공기업의 평가방식을 보완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대통령직속 국민경제자문회의 위원인 허은녕 서울대 에너지시스템공학부 교수다.

"해외자원개발 공기업 평가제도를 어떻게 바꿔야 하냐고요? 이론적으로 옳은 것과 실제로 가능한 게 있습니다. 그런데 그 간극이 굉장히 큽니다" 구체적인 내용을 듣기 위해 허 교수와 약속을 대학 연구실에서 만나 첫 말을 건네자 돌아온 대답이다.

"궁극적인 목표는 하납니다. 해외자원개발을 제대로 하기 위해 공기업의 평가를 바꿔야 한다는 것이죠. 헌데 그 방법이 상이합니다. 첫째 아예 틀을 깨자. 둘째 현실적으로 불가능 하다면 문제가 있으니 개선하자 입니다" 허 교수는 호흡을 고른 후 말을 이었다.

"우선 공기업은 경영평가라는 공식 틀이 있습니다. 하지만 광물자원공사, 석유공사 이 두 공기업은 좀 특이하니 별도로 기준을 적용해 달라는 겁니다"

허 교수는 자원개발을 장기적인 투자의 관점으로 고려한다면 이들 공기업은 그 창구가 된다고 설명한다. 돈을 버는 수단은 자원개발에 한정하기보다 다른 회사에 투자하고, 건설, 지분투자 등도 있다.

우리 정부가 장기적으로 사업을 하는 데 있어 해외 투자,와 우리 기업들이 먹고 살 인프라 구축 등의 부분에서 공기업은 국가를 대표하는 회사가 된다는 것.

"자원개발이라는 명목 하에 자산, 부동산을 사고 팔수도 있습니다. 이때는 현재 공공기업 평가방식으로 하면 곤란합니다. 온 동네에 우리 전략을 다 노출하는 것이니 말이죠. 이때는 완전히 별도의 평가방식을 두고 운영하는 것이 맞습니다"

하지만 이 방법은 현실적으로 아직은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기존의 형태를 그대로 두되, 평가 방식을 보완할 수 있습니다. 이 두 공기업의 특별한 룰을 인정해 주는 것입니다"

허 교수는 대부분의 공기업들이 국내 필요에 의해 생성돼 운영되고 있다고 말한다. 가스공사, 한전도 외국에서 원료를 들여오지만 국내 공급을 통해 국내에서 수익을 창출한다. 반면 석유공사, 광물자원공사는 국내 사업이 없고, 외국에서 수익을 창출해야 한다.

"해외사업은 기본적으로 프로젝트형 사업입니다. M&A로 매년 수익을 내는 게 아닌, 5~10년 투자해 뒤에 가서 대박을 내는 형태이죠. 또 수익 구조도 국제유가나 국제 광물 가격, 해당 국가와 우리나라의 환율 변동 등에 따라 변동이 심합니다. 리스크와 이슈자체가 외국에서 벌어지는데 그걸 한국적 상황으로만 풀이하면 곤란한 결과에 이릅니다"

이에 따라 두 공기업은 평가방식이 달라야 한다는 주장이다. "경영평가를 매년 한다거나, 3년 단위로 한다는 것 자체가 처음부터 맞지 않는 형태 였습니다"라고 강조한다.

허 교수는 이 두 공사에게도 수익사업을 줘 형평성을 보장하거나 자원개발 업무를 맡기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다. 장기적인 시각에서 지켜봐줘야 한다는 말을 극단적으로 표현한 말이다.

본론으로 돌아온 그는 얘기의 깊이를 더했다. 해외자원개발 사업을 성공적으로 운영하기 위해서는 평가시스템 등을 보완해 장기적인 사업 집행을 보장하는 동시에 해당 공기업의 과감한 내부개혁도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이는 허 교수를 포함, 전문가집단에서 오래전부터 일관되게 해오는 충고다.

"CEO 임기를 보장하던가, 사업을 보장해야 합니다. 과거 공기업에 해외자원개발 사업을 맡길 때 민간기업보다 장기적으로 운영할 것이란 기대가 있었는데, 정반대의 현실이 나타났습니다. 3년마다 사장 바뀌고, 3년마다 평가 받습니다. 오히려 민간기업 CEO가 훨씬 오래가고, 장기 투자를 하고 있는 상황이지요. 공기업이 자원개발을 계속하려면 포스코에 박태준 회장이 오래 했듯, CEO를 보장하거나, 이게 불가능하다면 사업은 보장해야 합니다"

CEO와 사업 보장은 책임을 가리기 위한 조치다. "최근 석유공사가 하베스트를 매각한다고 합니다. 실패했다는 인정이지요. 하지만 책임질 사람이 없습니다. 새 사장은 '내 임기 내의 일'이 아닙니다. 그때 의사결정한 사람리스트가 쫙 있고, 부서별 평가한 보고서가 있어야 합니다. 민간에서는 이와 같은 경우 책임자를 찾아 책임을 지게 합니다. 해고까지도 가능한 거지요"

허 교수의 주장은 책임을 묻는다면, 구입 당시 책임자가 엉터리임을 알 때 강하게 반대하고 외부압력에도 매입할 수 없다는 것이다. 자신의 밥줄이 끊길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은 공기업이 판을 벌이고, 정부가 시켜 했다하고, 망해도 책임을 안 집니다. 공기업 자체를 변혁해야 합니다. 성공에는 커다란 인센티브, 실패에는 냉정한 평가와 책임 묻기. 이렇다면 사업을 기획한 책임자가 공사 사장, 정치인 등의 외압에 대항할 최소한의 장치가 될 것입니다"

결국 해외자원개발이 다시 일어서기 위해서는 공기업의 노력과 이들 사업현실에 맞는 평가시스템. 이 두 가지가 동시에 개선돼야 한다는 말이다. 물론 사업 중 실패 확률이 높은 탐사 등은 이와는 별도로 운영해야 한다는 전제하에서다.

이윤애 기자 paver@e2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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