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PS로 못찾는 곳…출하 전 과정이 무인전자 시스템화

각종 보안시스템 불구 정량거래 신뢰는 여전한 과제

 

차량운전자의 지문과 차량카드 인식 후 입문 가능하다.

  

출하대에 진입하고 있다.

  

제품이 출하되고 있다.

 

[이투뉴스] 정유사가 운영하는 저유소는 사기업 소유이지만 전시 상황과 같은 국가 위급 시 특별히 관리·보호되는 '국가보안목표시설'로 지정돼 있다. 파괴되거나 기능이 마비될 경우 주변 지역 발전시설 가동이 일부 멈추고, 자동차 대부분이 움직일 수 없게 되는 등 국가경제와 안보에 미치는 영향이 심각한 시설이기 때문이다.

저유소는 GPS로 검색되지 않는다. 화재 사건 보도 외에 언론 보도도 거의 찾아 볼 수 없다. 저유소는 일반인에게 베일에 가려진 장소가 됐다.

문제는 주유소 업자들에게도 미지의 장소라는 점이다. 주유소 업자들 중 저유소에서 기름이 어떻게 관리되며, 출하돼 주유소로 도달하는 지에 대해 구체적으로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 이러다보니 정유사로부터 공급받는 기름이 정량에 미달된다며 고민하는 주유소 업자들 사이에 각종 의혹이 증폭되고 확산되는 건 어찌보면 자연스러운 일이다.   

기자가 인천의 한 저유소를 방문한 것은 지난 11일. 해당 저유소의 출하 전과정이 취재, 보도 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란다. 담당자들이 신경을 곤두세운 게 그대로 전해질 정도로 보안에 대한 주의는 각별했다. 

저유소 건물과 내 외부 시설 등은 비보도를 조건으로 했다. 저유소 내에서 담당자 허락 외에는 시설 사진 촬영도 전면 금지한다는 약속 후에야 취재가 가능했다.

방문 당일 입구에서 주민등록증을 제출 후 저유소에 들어섰다. 수송용 차량인 한 탱크로리가 저유소 입구에 들어서는 게 보였다.

"저유소 제품 출하는 전 과정이 무인전자시스템으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저유소 담당자의 설명이다. 

해당 탱크로리는 사전에 주유소에서 휘발유나 경유, 등유 등 필요한 제품과 용량을 전산으로 주문, 저유소 시스템에 해당 내용이 기록된 차량이다. 저유소에는 등록된 탱크로리와 운전자만이 출입 가능하다.

탱크로리는 저유소 입구에서 차량 RFID 카드와 탱크로리 기사 지문 인식 후 내부로 진입했다.

이때 차량 인식기 감지내용이 저유소 내 전산시스템에 입력되며, 탱크로리의 출하 예고 정보는 출하대의 컨트롤러에 전송된다고 한다. 

탱크로리는 배정된 출하대로 이동해 엔진 정지 후, 양쪽 앞바퀴에 고임목 설치, 접지선 연결 등의 안전조치를 취한다. 탱크로리 기사는 안전모와 안전화 등 안전용구를 착용 후 제품 출하 절차를 시작했다.

출하 과정은 제품에 따라 상이하다. 등유는 기사가 탱크로리 지붕에 올라가 안전벨트를 하고 유창 뚜껑을 열고 호스를 삽입한다. 휘발유는 기사가 바닥에 내려와 차량 좌측에 5개의 뚜껑을 열고 호스를 연결, 주입한다.

탱크로리 기사가 출하버튼을 누르면 해당 기계는 사전 주문량에 만큼 자동 인식, 출하된다. 기사는 출하대의 유류계량기를 보며 출하량을 확인한다.

출하를 마친 기사가 승차해 출구에 도달, 출입 때처럼 RFID를 인식한 후 전표를 받아 차량카드 번호, 유종, 출하량 등을 확인 후 출문을 나선다.

한참 도로를 달린 탱크로리가 주유소에 도착하자 주유소 담당 직원은 사다리를 타고 탱크로리 지붕에 올라갔다. 뚜껑을 열고, 계량기 보며 정량을 확인한다. 주유소 탱크로 또 한 번의 기름 이동을 마치고, 해당 전표가 주유소 담당자의 손에 쥐어지고 나서야 배송이 완료됐다.

전 과정이 무인 전산화 및 시스템화 된 배송. 완벽해 보였다. 하지만 여전히 짚고 넘겨야 할 몇 가지 과제도 눈에 띄었다.

우선 주유소의 주유기 사용오차와 같이, 저유소에서도 존재할 사용오차 문제다. 현행법은 저유소도 주유소와 같이 법적 오차범위(±0.5)를 정해 5년 주기로 검정 후 봉인하도록 돼 있다. 점검은 기표원의 검정기관인 한국기계전기전자시험연구원이 한다. 

하지만 5년 주기는 기계마모, 환경 변화 등 현실적 변화 요인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한다는 한계가 지적된다. 각 정유사들이 자체적인 검정 보안책을 마련, 운영해 자발적으로 이를 메우고 있다.

하지만 시기와 방법은 제각각이다. SK는 분기마다 자체적인 검증을 실시하고 이상 시 한국기계전기전자시험연구원에 검정을 요청한다. 현대오일뱅크는 2개월 간격으로 주유기 보수 업체를 통해 점검한다. 에쓰오일은 1년에 한 번 검증한다.

법적 검정기간의 현실적 조정이 필요한 이유다. 자발적 점검은 소홀히 해도 제도적 처벌 수단이 없다. 비슷한 경우 주유기 검정 기간은 3년 주기지만 3년 내에도 오차범위가 법적 허용범위를 훌쩍 뛰어넘는 주유기가 발견된다. 반면 외부에서 자체 검증을 소홀히 하는 정유사의 저유소를 발견해내기는 어렵다.

또 저유소 내 철저한 출하 관리만으로 '정량'이 보장되는 게 아니다. 주유소까지 무사 배송돼야 한다. 탱크로리 기사가 배송 중 기름을 빼돌리다 적발되거나 화재가 발생한 일이 왕왕 있다는 것이다.

이에 SK, 현대오일뱅크 등 정유사들은 탱크로리에 GPS를 설치해 차량의 이동 경로를 실시간으로 확인한다. 경로를 이탈하거나, 비정상적으로 정차하는 경우 즉시 확인이 가능하다. 여기에 더해 SK는 올해 ‘전자봉인’도 도입했다. 저유소에서 탱크로리로 출하 후 덮은 유창 뚜껑이 주유소 도착 전에 개봉되면 SK저유소 전산실에 이상 신호가 전달된다.

하지만 각종 시스템 도입에도 한계가 없을 수 없다. GPS 설치는 각 정유사 책임수송차량에 한하고 있다. 한 정유사 담당자는 "정유사가 직접 배송하는 책임수송차량 외에 자기수송차량(주유소 업자가 직접 탱크로리 기사를 고용해 배송)은 탈법 행위를 추적할 방법이 없다”며 “기름을 빼돌리는 탱크로리 기사의 상당수가 여기에 해당한다"고 전했다.

그는 전 수송차량에 이동 경로를 추적하는 GPS만 설치해도 불법적인 이탈의 상당수는 막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정유사가 자기수송차량에 무료로 GPS를 설치해 주겠다고 제안했지만 거절당했다며 의아스러워했다.

저유소->탱크로리->주유소로 이동하는 전 과정을 취재하자 머리에 단 하나의 단어가 떠오른다. '불신'이다.

정유사는 무인전자시스템, 전자봉인, GPS 등 최첨단 시설을 도입해 관리하는 데 믿지 못하는 주유소 업자들이 이상하다는 입장이다. 반면 주유소 업자들은 실제 공급받는 기름이 정량에 미달하는 데 어떻게 믿으라는 말에 그저 고개를 끄떡이냐고 반문한다.

정유사와 주유소 업자 간 확실한 정량거래 확인을 통한 신뢰를 쌓을 방법을 찾는 것. 관련 정책을 준비하는 정부가 찾아야 할 답은 거기에 있다.
 
이윤애 기자 paver@e2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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