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투뉴스] 불길한 예감은 꼭 들어맞는게 세상사다. 그런데 올여름 전력수급에 대한 예감이 예사롭지 않다. 왠지 최악의 순환단전이 일어날 것 같은 전운이 감돈다. 백화점식 수급대책이 총동원 되겠지만 역부족일 듯 싶다. 현재 한반도의 전력사정은 도처가 지뢰밭이다. 전력부족도 문제지만 전력계통도 어느 때보다 위태롭다. 전후좌우가 천길 낭떠러지인 외줄 위에서 한발한발 내딛는 처지다.

우선 전력수급은 2~3기의 원전이 발전을 재개해도 안심할 상황이 못된다. 기저부하를 떠받치고 있는 가행 원전과 화력발전소가 불안하다. 이들 설비는 정비기간을 줄이거나 미뤄가며 무리수를 쓰고 있다. 발전소는 수십만개의 부품으로 구성된 최첨단 설비다. 정비중 깜빡 잊고 내버려둔 드라이버 하나 때문에 원전이 멈춘 사례도 있다. 피로도가 극에 달한 발전소가 고장을 일으켜도 전혀 이상할 일이 아니다.

전방위 원전비리 수사 결과도 우려스럽다. 이미 드러난 비리는 빙산의 일각으로 보는 게 맞다. 원자력 산업을 둘러싼 각종 부정부패는 그 뿌리가 원전 중흥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예측컨데 수사를 확대하는 과정에 고구마 줄기처럼 추가 비리가 드러날 것이다. 만약 현재 가동되고 있는 원전이 복마전에 연루된 것으로 확인되면, 규제기관도 가동정지란 원칙을 지키지 않을 방법이 없다. 비리제보가 봇물을 이루는 상황을 감안하면 개연성은 충분하다. 원전 추가정지는 상상조차 싫은 시나리오다.

전력수송의 대동맥이랄 수 있는 전력계통은 또 어떤가. 당장 손 쓸수 없어 응급처방만 받은 SPS(고장파급장치)가 전국적으로 60여곳을 헤아린다. 환부가 많으면 그만큼 생존률도 떨어진다. 멀쩡하던 환자가 복합감염으로 쇼크를 일으켜 목숨을 잃는 이치다. '당장은 괜찮으니까' 무시하다간 뜻밖의 대정전과 맞딱뜨릴 수 있다. 전문가들도 눈에 보이지 않는 계통 위험이 수치로 확인되는 전력예비율보다 치명적이라 말한다. 만약 이 문제로 블랙아웃이 난다면 당국은 이를 어떻게 국민에 설명하며, 또 누구에게 책임을 물을 것인가.

전력당국을 향한 국민의 민심이반도 기류가 심상치 않다. 반복된 원전 비리, 연중 전력수급 경보에 신경질적 반응을 보이고 있다. '사고친 사람은 따로 있는데 피해는 왜 국민이 봐야하냐', '싼값에 산업용 전기를 퍼주다보니 제값 낸 가정만 고생하게 생겼다' 등의 원성이 나오고 있다. 이렇게 여론이 격앙된 상태에 사용후핵연료 문제를 공론화하고 2차 에너지기본계획을 짜야한다니, 국가적 대사를 앞두고 안타깝기 그지없다.

본격적인 무더위가 시작되기도 전에 에어컨 시장이 역대 최대 특수를 누리고 있다고 한다. 하절기 전력피크 때 기온 1℃가 오르면 왠만한 화력발전소 1기에 해당하는 70만kW의 수요가 는다. 올여름은 예년보다 더 무덥고, 폭염일수도 과거보다 더 길 것이란 게 기상청의 전망이다. 더욱이 최근 전기사용량 증가는 누적 경제성장에 따른 자연스런 현상에 가깝다. 국내 전기료는 수요탄력성이 크지 않다. 전기료가 오른다고 2~3대씩 설치된 냉장고나 에어컨의 코드를 뽑을 사람이 많지 않다는 얘기다. 값싸고 질좋은 전기의 혜택을 장기간 누려온만큼 전기료 현실화에 대한 저항도 거세다. 총체적 난국이다.

이상복 기자 lsb@e2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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