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짜석유 근절 호응에 석유관리원 추진 탄력
취급 형태 계속 진화·실효성 여전히 의문

▲가짜석유 유형(자료=석유관리원)
[이투뉴스] 석유제품 전체 수급상황이 표시된 모니터에서 평소와 다른 움직임이 나타난다. 수급상황에 이상 징후가 포착된 것이다. 문제를 직감한 한국석유관리원은 빠르게 단속반을 현장에 파견한다. 발빠른 대응에 사업자는 가짜석유 제조 사실을 털어 놓게 된다.

가상이지만 석유관리원이 '석유제품 수급보고 전산시스템'을 통해 그리는 그림은 이렇다. 가짜석유를 근절하기 위해 모든 석유제품의 흐름을 들여다 보고 단속의 속도를 높이겠다는  계획이다.

하지만 수급보고 시스템 설치 대상자인 사업자들은 반대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다. 실효성이 떨어질 것이라는 게 가장 큰 이유다.

수급보고 시스템은 과연 가짜석유의 확실한 근절 대책이 될 수 있을까. 기대감을 나타내는 목소리는 크다. 하지만 우려도 만만치 않다.

◆석유관리원, 수급보고 시스템 도입 선언

수급보고 시스템 구축이 수면 위로 등장한 것은 일년이 채 안됐다. 하지만 논란 만큼은 그 어느 사안보다 뜨거웠다. 가짜석유와 직접적인 연관이 있기 때문이다.

가짜석유는 관련업계에서 사실 해묵은 소재다. 규모는 크지만 마땅한 근절 방안이 없어 사실상 두 손 놓고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단속도 그때 뿐이고 거듭될수록 제조수법이 진화하는 양상을 보이면서 완전한 근절보다는 사안에 따라 단속에 그치는 수준이었다.

바늘과 실처럼 석유에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것처럼 인식되기에 이르렀다. 업계 관계자들도 "완전히 막기는 불가능하다"고 말할 정도다.

이런 상황에서 석유관리원이 칼을 빼들었다. 수급보고 시스템을 도입해 가짜석유를 원천봉쇄하겠다고 나섰다. 석유제품의 흐름을 들여다 보면 단속이 가능하다는 주장이다.

수급보고 시스템 내용을 살펴보면 계획을 알 수 있다. 기본적인 골격은 정유사, 대리점, 주유소 등 국내에서 석유제품을 취급하는 모든 사업자를 POS, ERP 등으로 석유관리원과 전산으로 연결한다.

이를 통해 정유사에서 기름을 출하하면 어떤 제품이 얼마큼 어디로 이동하는지 체크가 되고 이를 받는 대리점이나 주유소에도 그 만큼 그대로 확인된다.

여기서 대리점은 주유소에 물량을 넘길 경우 또한 전달되며 주유소가 소비자에게 판매할 경우에도 거래 흔적이 그대로 시스템에 넘겨진다.

이렇게 정유사가 큰 물량을 넘기는 거부터 주유소가 소비자에게 소량을 판매하는 과정까지 오고간 물량을 모두 크로스 체크를 통해 매일 비교하겠다는 석유관리원의 목표다.

그렇다면 왜 제품의 흐름을 파악해 가짜석유를 잡겠다는 것인가. 이유는 간단하다. 어떤 석유제품에 다른 석유제품을 섞는 게 모두 가짜석유이기 때문이다.

석유관리원에 따르면 가짜석유는 조연제 또는 첨가제 등 명칭 여하에 관계없이 석유제품에 다른 석유제품 등을 혼합하는 방법으로 차량·기계의 연료로 사용하거나 사용하게 할 목적으로 제조된 것을 말한다. 유형은 고급휘발유+보통휘발유, 휘발유+용제·등유·경유, 경유+선박용경유, 경유+등유·용제·부생연료유, 휘발유+용제+BTX·알코올, 휘발유+신나, 휘발유+용제+BTX+MTBE·아닐린 등 다양하다.

업계에서는 이를 단순화해 가짜휘발유, 가짜경유로 구분해서 사용한다. 가짜석유는 수송연료가 대부분을 차지하는데, 휘발유와 경유가 그 중심에 있기 때문이다.

결국 수급보고 시스템을 통해 그 제품이 원래 맞는 용도에 쓰이는지만 확인하면 가짜석유 제조 자체를 원천봉쇄 할 수 있다는 논리다.

◆가짜석유 새 정부 지하경제 1호 타깃

빛이 있으면 어둠도 있다는 말을 기준으로 보면 가짜석유는 자연스런 현상이라 할 수 있다. 경영이 어려운 사업자가 최후의 수단으로 사용할 가능성은 언제나 존재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짜석유로 인한 엄청난 탈루세액 규모를 보거나 그 수법이 기상천외한 것을 알면 부당이득을 챙기기 위해 조직적으로 유통되고 있다고 밖에 해석할 수 없다. 가짜석유를 근절해야 하는 이유다.

가짜석유가 만들어지는 가장 큰 배경은 세금을 탈루하기 위해서다. 산업통상자원부가 2011년 10월부터 작년 9월까지 용역을 실시한 결과에 따르면 가짜석유 탈루세액은 약 1조900억원에 달한다. 각 석유제품에는 리터당 세금이 차등부과 되는데, 기존 제품에 싼 제품을 혼합해도 운행에 큰 문제가 없고 이를 통해 얻을 수 있는 부당이득이 막대하기 때문이다.

최근 적발된 가짜석유 제조·판매업자 등을 보면 규모가 상상을 초월한다. 서울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는 전국 각지에 주유소를 차려놓고 가짜석유를 만들어 판매한 혐의로 조모씨를 구속했다.

경찰에 따르면 그는 서울, 경기, 충북 등지에 11개 주유소를 차려놓고 2010년 1월부터 지난 2월까지 가짜석유 1230만 리터를 제조·판매해 200억원 상당을 편취한 혐의를 받고 있다.

앞서 작년 9월에는 서울 수서경찰서가 가짜석유를 제조해 시중에 유통한 혐의로 조직 총책 서모씨 등 21명을 검거해 6명을 구속하고 15명을 불구속했다. 이들은 2009년 10월 말부터 원료 3억2000만 리터를 사들여 시가 1조597억원어치의 가짜석유를 만들어 판매한 혐의다. 1조원대 가짜석유는 역대 최대 규모다.

이 처럼 가짜석유 규모가 방대하자 새 정부도 그 어느 때보다 이를 근절하는데 주력하고 있다. 세수 확보를 위한 지하경제 양성화의 타깃이 된 셈이다. 이후 가짜석유 근절을 촉구하는 목소리는 한층 거세졌고 수급보고 시스템 도입을 촉구하는 지적도 많아졌다.

최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가짜석유 불법유통 및 세금탈루 근절 방안' 정책토론회 참석자들은 시스템 도입에 한 목소리를 냈다.

김장실 새누리당 의원은 "수급보고 시스템이 구축되면 가짜석유 단속 뿐만 아니라 취급이나 탈세를 목적으로 한 무자료 거래, 유가보조금 부정 수령 등의 불법행위까지 근절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허은녕 서울대 교수도 "IT 강국인 한국이 아직 전산시스템을 구축하지 못한 것은 이해가 잘 안된다"며 수급보고 전산시스템 조기 실현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나타냈다.

강경성 산업통상자원부 석유산업과 과장 역시 "발로 뛰는 현장단속만으로는 가짜석유 근절에 한계가 있으므로 수급보고 전산시스템 등 근원적인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 같은 분위기에 힘입어 수급보고 시스템 도입을 추진하고 있는 석유관리원의 계획은 한층 탄력을 받은 모양새다.

◆구체적 시스템 없어 논란 지속

계획대로만 된다면 수급보고 시스템을 반대할 논리가 빈약하다. 가짜석유는 반드시 근절해야 하고 이를 위해 어떤 식으로 든 방법을 찾아야 하기 때문이다.

지방의 한 주유소 사업자는 "가짜석유 때문에 기름을 싸게 파는 주유소 한테 경쟁에서 밀려 답답한 상황이다"라며 "심증은 가는게 물증이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하지만 각론에 들어가면 상황이 좀 다르다. 현재 추진되곤 있지만 큰 그림만 있지 세부적으로 어떻게 시스템이 구축되는지 구체적인 계획이 없는 것이다.

사업자들이 반대 목소리를 내는 것도 이런 배경이 가장 큰 요인이다. 사업자로서 내 거래 정보가 외부로 나가는 것에 자체에 민감한 반응을 보일 수밖에 없다.

석유관리원은 이와 관련해 유종과 물량만 보는 것인 만큼 우려할 사태는 없을 것이라고 말하고 있지만 구체적인 시스템이 나오기 전까지 논란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사업자들 단체인 관련협회에서는 실효성을 문제 삼고 있다. 가짜석유는 그 형태가 다양하다. 진화 형태도 기상천외하다. 수급보고 시스템만으로 그 모든 것이 근절될지는 미지수라는 게 이들의 논지다.

게다가 일단 시스템이 구축된다고 해도 얼마나 근절효과가 있을지 명확하지 않다. 조사가 되거나 수치상으로 발표된 바가 없다. 예컨대 약 400억원을 들여 시스템을 구축했지만 단속은 제자리 걸음이고 가짜석유는 여전히 활개친다면 예상낭비라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최근 가짜석유 취급 형태가 또다시 변하는 움직임이 감지된 것도 수급보고 시스템의 실효성에 의문을 낳고 있다. 지방의 경우 화물차에 경유 대신 등유를 넣고 다니는 차가 종종 있다. 화물차 업주와 주유소 등이 짜고 조직적으로 움직임인 결과로, 엄밀히 보면 가짜석유의 범주를 벗어난다. 혼합된 형태가 아니기 때문이다. 대신 용도와 다른 곳에 사용했기 때문에 단속대상이다.

그러나 이 같은 움직임은 수급보고 시스템에 드러나지 않을 확률이 크다. 주유소는 제품을 정상적으로 팔지만 주유는 외부에서 은밀하게 이뤄지기 때문이다. 시스템 외에서 벌어진 일에 대해서는 이상징후를 발견하기 어려운 것이다.

이에 수급보고 시스템만 구축되면 가짜석유가 모두 근절될 것으로 말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현장단속을 더 강화하는 게 실효성이 높을 것이라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업계 한 관계자는 "단속률을 높이려면 공사현장이나 화물차가 다니는 길을 조사하는게 실효성이 높을 것"이라며 "주유소 내에 별도의 시설을 갖추고 가짜석유를 파는 것은 옛말"이라고 말했다.

조만규 기자 chomk@e2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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