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사고 충격파 잦아들자 신규 원전건설 붐 조짐
'편익이냐, 안전이냐' 정책결정 국민소통 필요

▲ 월성원전에 배치된 이동형발전차. 원전에 전력공급이 중단되는 만일의 사태 시 투입돼 비상전원을 공급하게 된다.

[이투뉴스] 오는 11일이면 동일본 대지진으로 후쿠시마 원전 사고가 발생한지 꼭 2년이 된다. 당시 쓰나미는 2만여명의 사망자와 실종자를 내고 가동중이던 후쿠시마 원전의 전원을 끊어 역사상 최악의 방사능 누출사고를 일으켰다. 지금도 원전 주변에선 정상치의 수백~수천배에 달하는 방사능이 검출되고 있다.

이 사고로 안전신화를 자랑하던 일본 원자력 산업이 회생불능의 치명상을 입었고, '원전 르네상스 시대'를 꿈꾸던 세계 원전시장도 빙하기 이전으로 되돌려졌다. 충격에 휩싸인 일본은 2030년까지 원전 비율을 '0'로 만드는 정책목표를 수립해 궁극적인 '탈(脫)원전'을 이루겠다고 공언했다. 원자력발전을 경제성장의 양분으로 삼으려던 세계 각국도 원전 신증설을 보류하거나 재생에너지를 대폭 확대하는 방향으로 전원계획을 재조정했다.

그러나 불과 2년 사이 원자력은 강인한 생명력을 발휘하며 부활을 꿈꾸고 있다. 원전 운영국들은 바닥에 떨어진 신뢰를 되찾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고, 일부 국가들은 폐기처분하려던 원전 증설계획을 다시 들춰보고 있다. 후쿠시마 사고를 반면교사 삼아 원전에 대한 안정성을 높이면 원전가동에 따른 위험도 낮추면서 늘어나는 전력소비량도 적기에 충당할 수 있다는 계산에서다.

◆후쿠시마 참사 발생 만 2년…다시 시동켜는 원전
12일 원자력 산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5월 '원전제로 선언'을 한 일본은 심각한 전력난에 봉착하자 같은해 7월 오이원전 2기를 재가동했다. 여기에 지난해말 총선에서 압승한 자민당은 원전 폐기정책을 원전 재가동 쪽으로 틀고 있다.

일본은 서일본에 위치해 지반이 안정적인 이카타와 센타인 원전부터 다시 가동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 원전은 원자로냉각수와 터빈을 돌리는 증기가 완전 분리된 가압경수로형(PWR)으로, 만일의 사고에도 비등수로형(BWR)인 후쿠시마 원전처럼 방사능 물질이 외부유출될 가능성이 낮다.

대표적 친(親) 원자력 국가인 프랑스는 노후원전 폐쇄를 반대할 정도로 산업 존속에 힘을 쏟고 있다. 프랑스의 주요 4대 노동조합은 2016년말 가동중단 예정인 피센하임 원전을 폐쇄하려는 정부의 움직임에 제동을 걸고 있다. 이들은 지난해말 정부 측에 원전 폐쇄 철회를 요구하는 탄원서를 제출하기도 했다. 프랑스 원자력규제기관인 원자력안전국(ANS)은 피센하임 1호기의 10년 수명연장을 승인했다.

경제위기 극복을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는 미국과 중국도 신규 원전건설에 속도를 내고 있다. 34년 만에 원전건설을 승인한 미국은 보글 3,4호기와 섬머 2,3호기를 비롯해 20기가 넘는 신규 원전건설을 추진하고 있다. 중국은 지난달 18일 후쿠시마 원전사고 이후 처음으로 훙옌허 원전을 가동했으며, 현재 원전용량의 2.5배 수준인 약 28.6GW의 신규 원전을 짓고 있다.

이밖에 인도는 2050년까지 전체 전력의 25%를 원자력으로 공급한다는 계획을 세웠고 남아프리카공화국도 2030년까지 960만kW의 원전을 짓는 내용의 중기 전력개발계획을 확정했다. 러시아, 폴란드, 카자흐스탄, 브라질 등도 기존 원전건설계획을 유지하고 있다.

◆ 기로에 선 한국 원전, 국민적 동의 얻을까 
세계 6대 원자력발전국인 우리나라도 사실상 기존 원전확대 정책을 고수하고 있다. 원전 안전성 향상을 위해 2015년까지 1조1000억원을 투입, 가동중인 원전의 안전성을 획기적으로 향상시키되 신규 원전건설은 차기 국가에너지기본계획 수립 시 국민정서를 고려해 결론을 내리겠다는 복안을 내놓고 있다.

이 과정에 원전 운영당국인 한국수력원자력은 후쿠시마 원전사고 후속대책으로 2015년까지 20개 원전에 지진 자동정지설비를 설치하는 한편 이동형 발전차량 확보, 무전원 수소제거설비 설치 등을 완료해 원전의 안정성과 비상대응 능력을 크게 높인다는 방침이다.

한수원 관계자는 "우리나라의 에너지수입률은 2011년 기준 96.5%인 반면 '전력의 외딴섬'이어서 독일처럼 주변국에서 전력을 수입할 수도 없다"면서 "전력공급의 안정성이 에너지안보와 직결된 만큼 신재생에너지가 원전을 대체할 수 있을 때까지 두에너지원의 공존이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 고리원전 해안에 새로 설치된 해일 방어용 방벽.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안전성 강화 차원에 설치됐다.

새 정부가 원자력 대신 신재생에너지를 전향적으로 확대하는 정책을 입안한다고 해도 이에 대한 국민적 동의와 절대적 지지가 필요한 상황이다. 원전을 단계적으로 폐지하고 감소량 만큼을 화력으로(석탄화력:LNG:중유=6:3:1)으로 대체하는데 필요한 비용은 2030년까지 약 170조원으로 추산된다. 

이 과정에 전기요금은 56% 인상요인이 발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값싸고 풍족한 전기혜택을 누려온 국민들은 어떤 이유에서든 전기료 인상을 마뜩찮아 한다. 지난해 전기협회가 성인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에 의하면, 전기요금 현실화에 찬성하는 의견(25%)은 반대(29%)보다 4%P나 낮았다.  

원자력의 위험을 떠안고 가는 것도, 그렇다고 탈원전을 위해 직접 비용을 지불하는 것도 내키지 않아하는 국민의 이중적 태도는 미래지향적 에너지정책 수립에 있어 최대 걸림돌이다.   

조용성 고려대 교수는 "신재생에너지로의 전환은 여러모로 긍정적이지만 그런 선택에 따라 국민들이 감내해야 하는 게 무엇인지 시사하는 바가 크다"면서 "결국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는 우리의 몫이고, 그 선택에 따른 결과와 책임 역시 우리가 짊어져야 할 것임을 분명히 인식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원자력 비율을 현행대로 유지하거나 일부 확대하는 정책을 밀어붙이는 것도 부담스럽기는 마찬가지다. 원전 기자재 납품비리, 잦은 원전 고장 등으로 실추된 신뢰를 회복하려면 지금보다 더 강도높은 원전 운영당국의 쇄신과 노력이 뒤따라야 하고, '앞으로 달라질테니 일단 믿어달라'는 설득만으론 대국민 신뢰를 정상화시키기에 역부족이란 지적이 많다.

이원근 국회입법조사처 입법조사관은 "원전의 확대나 축소 등 핵심 쟁점에 대한 정책결정은 반드시 대국민 신뢰와 공감을 바탕으로 이뤄져야 한다"며 "잠재적 위험을 감수한 당장의 편리를 선택할 것인가, 편리를 포기한 안전을 택할 것인가, 이 둘을 동시에 취할 대안을 발견할 것인가 소통하고 공감을 구할 때"라고 말했다.

이상복 기자 lsb@e2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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