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특집 下] 취임 1주년 김중겸 사장의 명암

▲ 서울 삼성동 한전본사.
[이투뉴스] '17개국, 67개 기관 방문, 비행거리 20만9702km.'

17일로 취임 1주년을 맞은 김중겸 한국전력공사(KEPCO) 사장의 숨가빴던 한 해를 말해주는 숫자들이다. "우물속에 안주하지 말고 새로운 세계로 도약해야 한다"고 입버릇처럼 말했던 김 사장은 불과 1년만에 지구 다섯바퀴 거리를 오가며 해외현장 최일선을 훑었다.

이를 통해 한전은 올해 12건, 내년 28건 등 모두 28건의 '프론트 로그(Front Log. 사업참여기회)'를 확보했다고 밝혔다. 매출의 97%를 내수시장서 올려온 한전이 비로소 광활한 글로벌 시장의 숨은 매력에 눈을 뜬 셈이다. 

앞서 1년전 김 사장은 취임식에서 "국내 전력산업 성장이 지속적으로 둔화돼 앞으로 국내 사업만으로는 수익창출에 한계가 있다"며 해외서 새 수익원을 창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2025년 한전 목표를 '매출 150조원, 해외매출 비중 50% 달성'으로 제시했다. '변화와 혁신'을 말할 땐 불도저 같은 추진력을, '신뢰와 소통'을 말할 땐 인문학을 강조하는 김 사장의 지난 1년과 한전CEO를 둘러싼 현안들을 짚어봤다.

1년간 지구 다섯바퀴 거리 훑으며 해외사업 발굴
지난해 9월 한전 제18대 사장으로 부임한 김 사장은 한전의 새 비전을 'Global TOP Green & Smart Energy Pioneer'로 정했다. 급변하는 전력산업 환경에서 과감한 변화와 도전으로 패러다임 전환을 주도, 한전이 세계무대서도 최고가 되자는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새 슬로건은 'All Together, Create Future'로 결정했다. 김 사장은 "직원 및 국가, 사회의 동반성장과 인류 행복을 위해 끊임없는 창조를 바탕으로 미래가치를 창출해 사랑받는 기업으로 변신하고 지속성장을 추구하자는 의미"라고 부연 설명했다. 

김 사장은 해외사업 추진방향과 관련, "국내서 이뤄지는 사업은 국민과 국가발전을 위해 공익성 개념으로 접근해 질 좋은 전기를 싸게 공급한다는 생각으로 일하되, 해외 사업은 절대 손해를 봐선 안된다는 생각으로 추진해야 한다"고 강조해왔다. 국내사업은 공익, 해외사업은 수익에 방점을 찍겠다는 얘기다.

실제 김 사장은 안으로는 한전-발전사간 거래규정 조정, 민간석탄화력 수익규제 등을 통해 전기요금 인상을 최소화하는 전력시장 거래제 합리화를, 밖으로는 해외사업 영역 및 포트폴리오 확대 등을 추진하는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특히 역점적으로 추진하는 해외사업은 최근 가시적 성과들이 나오고 있다.

한전은 5.6GW 규모의 아랍에미리트 원전건설 사업을 비롯해 7개국 13개 발전 프로젝트에 진출해 4.9GW 규모의 지분용량을 확보했다. 또 자원개발 부문에서 4개국 10개 프로젝트, 송배전 부문 6개 EPC사업, 컨설팅 12개 사업등이 동시에 추진되고 있다.

이밖에 수화력발전부문에서 프로젝트별 맞춤형 전략과 리딩디벨로퍼로서의 입지를 구축해 신규 수주를 늘리고, 이미 수주한 발전소의 적기준공을 통한 안정적 매출 확보에 주력하고 있다. 또한 풍력 등 해외 신재생에너지 발전사업을 지속적으로 확대해 신성장동력 발굴에도 힘을 쏟고 있다.

김 사장은 지난 4월 중국과 터키 등을 잇따라 방문한 뒤 임직원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해외출장 기간 내몽고초원에서 KEPCO마크가 아로새겨져 함차게 돌고 있는 풍력발전기를 보면서 KEPCO가 내수시장의 우물속에 안주하지 말고 새로운 세계로 도약해야만 한다고 거듭 생각하게 됐다"고 소감을 전했다. 한전의 해외진출을 얼마나 절실한 문제로 보고 있는지 간접적으로 느낄 수 있는 대목이다.

 

▲ 김중겸 한전 사장이 임직원들을 대상으로 회사 경영상황을 브리핑하고 있다.

경영합리화와 누적적자 해소 등 난제 산적
김 사장은 왕성한 해외사업 드라이브 못지않게 고강도 경영합리화와 누적적자 해소에서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한전의 적자는 근원이 원가 이하의 전기요금과 현행 전력거래 시스템이 있다고 보지만 내부적으로 고강도 자구책을 통해 다시 한번 허리띠를 졸라매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를 위해 김 사장은 발전자회사를 포함해 전부문의 효율향상으로 1조1000억원 수준의 원가절감을 추진하고 부동산 임대, 누수수익 방지 등을 통해 6000억원 수준의 수익을 올릴 방침이다. 또 배정된 예산을 전액 회수해 매월 이익에 따라 집행 타당성을 재검토하는 초긴축 경영을 이어가고 있다.  

하지만 전기요금 현실화 없이는 이같은 자구책으로도 꼬리표처럼 따라다니는 만성적자를 해소할 수 없다는 점에서 김 사장의 고민은 되풀이되고 있다. 공을 들이고 있는 해외사업이 계속해 발목을 잡힐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최근 불거진 지경부와의 전기료 인상 갈등도 이런 절박한 상황이 배경이 됐다는 분석이다.

한전 간부들에 따르면 김 사장은 평소 "나는 사명감을 갖고 이 자리에 왔다"는 말을 자주 꺼낸다고 한다.

한전의 한 관계자는 해프닝으로 끝난 최근 사장 경질설과 관련, "김 사장은 공기업의 무사안일과 관료주의, 정부의 지시만 따르는 관행을 바꾸고 강도높은 자체개혁을 추진하라고 발탁된 사람 아니냐"면서 "원칙과 공익에 근거해 움직이는 그런 경영자를 불통(不通) 이미지로 몰고가는 것은 옳지 않다"고 말했다.  

다시 시험대 오른 민간기업  출신 CEO 
역대 한전 사장 자리는 군부 아니면 정부 고위관료 몫이었다. 중앙부처와 공기업 사이가 철저히 수직·상하관계였으니 어찌보면 그게 편했다. 한전 입장에선 때로 외풍을 막아줄 바람막이가 필요했을 터다.

그런 관행이 깨진 건 2008년이다. 처음으로 민간기업 CEO 출신이 사장으로 발탁됐다. '내부출신이나 정통관료로는 제대로된 공기업 혁신이 어렵다'는 생각이 측근들이 전하는 이명박 대통령의 신념이기도 했다.

김쌍수 당시 사장의 칼끝은 서슬이 퍼랬다. 수십년간 굳어져온 한전의 인사시스템과 업무관행, 경직된 문화까지도 칼을 댔다. 그러다보니 적잖은 반작용이 뒤따랐다. 경영효율화는 공공성 훼손을 명분으로 내세운 노조 반발에 부딪혔다.

발전자회사 통합 및 한국수력원자력 흡수시도는 정부의 노여움만 산 채 무위로 돌아갔다. 여기에 원가이하로 판매되던 전기요금이 결정타가 됐다. 정부가 요금현실화를 미루면서 한전 재정상황이 극도로 나빠졌다. 연료비 폭등으로 금새 적자가 수조원으로 불었다.

결국 김 사장 역시 임기만료를 앞두고 "공기업은 적자가 나도 괜찮냐, 전기요금 현실화 없이 한전 정상화도 불가능하다"는 말을 남긴 채 쓸쓸히 삼성동을 떠났다. 한전의 일부 주주는 그를 상대로 2조8000억원의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하기도 했다

김중겸 현 사정은 이런 상황속에 이명박 정부가 사실상 마지막 구원투수로 등판시킨 전문경영인이다. 그러나 그를 둘러싼 대내외 환경은 녹록지 않아 보인다. 변화를 두려워하기는 안팎이 마찬가지다. 김 사장이 이런 난관을 뚫고 강도 높은 공공기관 개혁과 경영정상화를 이뤄낼지 관심이 쏠리는 이유다.

이상복 기자 lsb@e2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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