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특집] 영국 등 4개국 물밑작업 시도
원전기업은 신용등급 하락세

[이투뉴스] 후쿠시마 사태 이후 유럽에서 새 원자력발전소를 세우는 것은 무척 어려운 일이다. 체르노빌 이후 안이해진 원자력의 위험성을 재차 각인시켰기 때문이다. 이런 가운데 유럽 일부 국가들이 핵발전소 신축에 국가 보조금을 지급해야 한다고 주장해 논란이 되고 있다.

독일 일간지 <쥐트도이첸 자이퉁>은 최근 "영국, 프랑스, 폴란드, 체코 등 4개 국가가 원전 신축을 계획하면서 유럽연합 위원회가 원자력발전을 재생에너지와 같은 온실가스 저감기술로 정의하도록 물밑작업을 벌이고 있다"고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이들은 유럽연합 위원회가 있는 벨기엘 수도 브뤼셀로 유럽 경제 및 에너지 장관 회의 전 정부 서한을 보냈다. 이 서안에는 '유럽연합이 원자력 발전을 재생에너지와 같은 온실가스 저감기술로 인정하고, 핵발전소 건설과 전력 공급 시 보조금이나 관세를 인정해야 한다'는 내용이 담겨있다.

◆ 원자력발전, 재생에너지·CCS와 동등한 경쟁?

해당 국가들은 일단 이같은 언론보도를 부정하고 있다. 프랑스 정부는 언론 보도와 같은 발의는 없었다고 해명했다. 유럽연합 위원회 역시 그러한 서한을 받은 적은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영국 에너지부도 "서신에 대해선 아는 것이 없다"고 일축했다.

그러나 지난달부터 영국 에너지부의 해당 인터넷 홈페이지에는 유럽연합의 에너지로드맵에 대한 새로운 견해가 게재돼 있다. "영국 정부는 온실가스 저감기술에 대해 유럽연합 보다 넓은 해석의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 재생에너지, 원자력발전, 이산화탄소 포집 및 저장기술(CCS) 등은 올해부터 동등한 조건 안에서 자유롭게 경쟁해야 한다. 그리고 관세 혹은 국가 보조금을 통해 지원받아야 한다"란 내용이다.

아울러 영국 정부는 데이비드 캐머론 영국 총리가 부임한 후 자유시장경쟁을 지지하고, 원자력발전 보조금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었던터라 이 같은 행보가 더욱 주목하고 있다.

◆ EU 핵발전 투자 '시들' 정부, 개입 선언

서한에 대해선 부인하고 있지만, 영국 정부가 원자력발전 보조금에 대해 유럽연합의 승인을 요구할 것은 자명해 보인다. 승인이 불확실해 보임에도 불구하고 이를 감수한다는 입장이다.

국가 자본 없이 핵발전소를 신축하자는 것은 영국 보수당과 자유민주당이 2010년 협의한 안건 가운데 하나였다. 그들은 글로벌 투자가들에게 원자력발전 신축을 권장해 자국시장에 끌어들였다.

그러나 지난 3월 캐머론 정부는 노선을 변경했다. 기대했던 투자가들이 투자를 잠정보류하자 자신들의 에너지 정책 실패를 예감한 것이다.

특히 지난달 독일의 전력공급사 RWE와 이온(E.ON)이 영국 2개 섬에 2개 핵발전소를 짓겠다는 계획을 철회한 것이 발단이었다. 이들은 "투자 규모가 너무 큰데다가 리스크 또한 적지 않다"고 설명했다.

유럽 언론들은 "이후 영국 정부가 섬 위에 국가 보조금 없이 핵발전소를 짓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판단했다"고 분석했다.

◆ 원자력기업 신용 하락…향후 국가 신용하락도 가능

원자력발전 투자가들이 투자를 보류하는 데는 경제적 이유가 우선이다. 유럽은 국내처럼 원자력발전이 저렴하다는 인식이 보편적이지 않다.

원자력발전에 대한 부정적인 시선으로 프로젝트 성사가 어려워졌음에도 불구하고 초기비용이나 운영비용에서 큰 혜택을 받지 못한다.

영국이 2025년까지 계획한 원자력발전 계획을 성공시키려면 210조유로가 필요하다. 원자력발전을 통한 전력은 어떠한 가격 보조도 받을 수 없기 때문에 투자비용에 비해 경제적 리스크가 높은 상황이다.

아울러 신용 평가기관들이 원자력발전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는 전력회사들의 신용등급 하락을 고려하고 있다는 것도 주요 원인이다.

독일 일간지 <한델스블랫)>에 따르면 최근 많은 신용 평가기관들이 원자력발전 운영과 사고 상황에 따른 사회적 비용, 줄어드는 정부 혜택 등을 고려해 관련 기업들의 신용등급 조정을 고려하고 있다.

특히 RWE와 이온이 영국 원자력발전 프로젝트를 철회한 진짜 배경이 이 때문일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이들의 현재 상황이 신용 하락을 지켜볼만한 여유가 없다는 것이다.

아울러 평가기관들에 의한 신용등급 하락은 현재 제조회사나 전력공급사에 그치지 않고 향후 원전을 갖고 있는 모든 나라를 위협할 것이란 전망이다.

후쿠시마 사태 이후의 일본이 좋은 예다. 사고 이후 천문학적 사회비용을 부담해야 하는 일본의 다음 위험은 국가 채무와 원자력발전 위험에 따른 신용등급 재평가가 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EU·영국, 의견대립 불가피할 듯

그렇다면 이들 원자력발전 옹호 국가들의 주장은 받아들여질까. 현재로선 가능성은 적어 보인다.

그리니치 대학의 스테판 토마스 교수는 "유럽연합 회원 대다수의 입장은 분명하다"고 말했다. 에너지 컨설턴트 회사 이넨코(Inenco)의 톰 페링 연구원도 "절망적"이라며 "유럽연합에서 원자력발전을 지지하는 국가는 소수"라고 말했다.

그러나 자유시장경쟁을 지지하고 유럽연합에 적대적인 영국은 그대로 추진할 예정이다.

페링 연구원은 "영국정부는 원자력발전 신축에 보조금을 지급하는 것이 재생에너지에 투자하는 것보다 저렴하다고 여기고 있다"며 그들이 원자력발전에 대한 주장을 꺾을지 지켜봐야 한다고 밝혔다.

토마스 교수는 "영국정부는 잠재적 투자가들을 위해 국가 고정구매 가격을 실시하고 수년간 경제적 안정성을 보장하려 할 것"이라며 "그러나 유럽 연합이 어떠한 결정을 할지 국가적 논의는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영국정부가 계획하고 있는 탄소세 역시 논란이 예상된다. 영국의 발전소 운영자들은 내년부터 생산된 이산화탄소에 대해 톤당 16파운드를 물어야 한다. 이는 2020년까지 톤당 36파운드로 인상될 예정이다.

원자력발전과 재생에너지는 탄소세에서 제외되는데, 현재 일각에서는 유럽연합에서 보장하는 재생에너지 외에 원자력발전까지 제외되는 것은 일종의 보조금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브뤼셀에 위치한 유럽연합의 공정거래 보호국이 국가원조가 정당한 재생에너지와 국가보조가 불법인 원자력발전을 구별없이 보조하는 것을 지적할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영국정부는 현재까지 관세나 탄소세가 보조금으로 비춰지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입장이다. 영국 시장에서는 보조금이 자유시장경쟁의 위기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독일 전력공급사들이 원자력발전 계획을 철회한 이후 영국의 원자력발전 프로젝트 대부분은 프랑스 국영회사 EDF에너지가 지배하고 있다.

프랑스가 원자력발전 보조금에 지지하는 이유도 자국의 원자력발전 계획 외에 영국의 투자 계획을 지속하기 위함이다. 현재 영국의 드라이브가 계속될 경우 프랑스 국가 재정상황 역시 호전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프랑크푸르트=길선균 기자 yupin3@e2news.com>

<ⓒ이투뉴스 - 글로벌 녹색성장 미디어, 빠르고 알찬 에너지·경제·자원·환경 뉴스>

<ⓒ모바일 이투뉴스 - 실시간·인기·포토뉴스 제공 m.e2news.com>

저작권자 © 이투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