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층조명] 이명박 정부 녹색성장 3년, 무엇을 남겼나
'녹색철학 부재' 임기응변 정책 봇물

▲ 지난 1월 열린 녹색성장 보고대회에서 이명박 대통령이 현안보고를 경청하고 있다. <ⓒ청와대>

[이투뉴스] "당장은 모르지만 5~10년 뒤가 걱정이다. 중국이 앞선다고 남따라 스케일만 키우는 게 정답은 아니다. 기술혁신이 없는 녹색성장은 모래 위에 쌓은 성이다. 그런 맥락에서 최근 그린에너지 혁신 기술개발에 공을 들이는 미국, 일본의 움직임을 예의주시할 필요가 있다." (前 공공기관장 A교수)

"정부가 할 일은 장(場)을 만들고, 거기서 민간이 기회를 찾게 하는 것이다. 녹색성장의 주인공은 정부가 아니다. 공기업이 주(主)가 되는 RPS(신재생에너지의무할당제)는 그래서 여러 문제를 안고 있다. 정부도 시장을 알아야 한다. 이제 국산이, 우리 산업이 살아 남을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고 힘을 실어줄 때다. 지금도 늦지 않았다." (손충렬 세계풍력협회 부회장)

"녹색정책은 녹색의 필요성에 대한 공감대 조성부터 출발해 합당한 조직화, 산업정책화가 필요한데 현 정부는 4대강과 원전수출, 막대한 R&D투자가 전부다. 인사도 전문성과 소신부재로 일관되고 있다. 중장기전략은 있는가. 눈앞에 보이는 것만 추진하는 정책을 고수하다보니 국가에 필요한 미래전략과 실행방안 수립을 등한시하고 있다." (그린에너지기업 N社의 CTO)

"녹색성장은 한마디로 토목건설이다. 정부가 꼽는 4대강과 UAE 원전수출이 특히 그렇다. 원전수출은 외산 핵심부품을 수입해 조립해서 내다파는 수준이다. RPS를 도입해도 또다른 토목공사인 조력발전 몫이 될 것이다. 녹색성장은 개발도상국이 압축성장과 녹색산업화를 동시에 꾀하는 개념이라 애초부터 우리실정과 맞지 않았다." (양이원영 환경운동연합 국장)

이명박 정부의 녹색성장 3년, 그리고 우리의 에너지정책에 대해 말해달라고 했다. 저탄소 녹색성장이 도처에서 연호될 때 이를 근심스럽게 지켜보던 이들의 평가는 인색했다. "녹색성장 강국 도약을 위한 발판을 마련했다"는 정부 자평과는 딴판이다.

2008년 이명박 대통령이 '저탄소 녹색성장'을 신국가 전략으로 천명하면서 출발한 녹색성장 정책이 반환점을 돌아섰다. 하지만 외부의 시선은 싸늘하다. 비전제시까지는 몰라도 정책 실행과정에 우리정부가 보여준 철학부재와 그로 인한 임기응변식 대응은 산업계에 골깊은 불신을 만들었다. 이런 식으로 후반전이 치러진다면 글로벌 경쟁에서 뒤로 밀려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그럼에도 온실가스 감축과 배출권 거래제, 신재생에너지를 필두로 한 그린에너지 확대, 녹색기술 개발과 성장 산업화 등 굵직한 현안은 여전히 강력한 추동력을 얻어 현 정부가 그어놓은 결승점을 향해 달리고 있다. 지난 3년에 대한 엄정한 재평가와 중간점검이 필요한 이유다.

◆ 한 바구니에 담긴 원자력과 신재생에너지

"가치가 다른 원자력과 신재생에너지를 한 바구니에 담은 것 자체가 실수다." 재독(在獨) 컨설턴트이자 전 대학교수인 K씨가 원자력산업화와 신재생에너지 동시육성을 공언한 현 정부 녹색성장 전략을 빗댄 말이다. 원자력을 녹색으로 규정한 것 자체가 첫 단추를 잘못 꿴 것이라는 지적이다.

그는 "원자력의 대안으로 신재생에너지를 늘리겠다는 것이라면 몰라도, 원자력은 그대로 하면서 신재생에너지도 늘린다는 것은 진정성이 없는 정책에 지나지 않는다"고 잘라 말했다.

실제 지난해 수립된 1차 국가에너지기본계획에는 우리 정부가 온실가스 감축과 에너지전환이란 시대적 요구를 어떤 전략으로 대응하는지 잘 보여주고 있다. 당시 수립된 20년 단위 에너지정책의 밑그림은 신재생에너지와 원자력발전의 동시확대로 압축된다.

정부는 1% 안팎인 신재생에너지 공급비율을 2024년까지 8.9%, 2030년까지는 12%로 높이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원전 14기를 새로 지어 현재 34% 수준인 원자력 발전비율을 2024년 48.5%, 2030년에는 59%까지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상반기 수립될 2차 수급계획에서도 일단 이 기조는 유지될 것으로 예상된다.

원자력의 경우 에너지소비가 꾸준이 늘어난다는 가정 아래서도 비교적 단기간에 대량증설이 가능하고, 당장은 탄소배출 이슈로부터도 자유로운 편이기 때문이다. 신재생에너지가 전면에 내세워졌지만 실질적인 녹색성장 수단으로 간택된 에너지는 원자력인 셈이다.

양이원영 환경연합 국장은 "에너지다소비 산업구조를 개선할 생각은 하지 않고 장기 에너지수요를 부풀려 부족한 에너지는 원자력 밖에 대안이 없다고 말하는 게 현 정부의 녹색성장"이라고 말했다.

▲ 신고리 1호기 건설현장.

◆ 철학부재로 임기응변식 정책양산 '악순환'

이처럼 '녹색철학'이 부재한 가운데 양산된 각종 정책은 잦은 시행착오와 혼선을 초래했다. 주무부처인 지식경제부 역시 전통 화석에너지와 신재생에너지, 원자력에너지 사이에서 무게 중심을 잡지 못하고 순환인사 때마다 예고없이 정책을 흔드는 난맥상을 드러냈다.

이런 과정에 탄생한 재생에너지 확대정책이 산업창출 효과를 거두지 못한 채 일부 대기업이나 해외자본의 손쉬운 먹잇감으로 넘어가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수순. 특히 손바닥 뒤엎듯 즉흥적으로 양산된 그린에너지 보급정책은 산업계 혼란과 대정부 불신의 빌미를 제공했다.

일례로 신재생에너지의무할당제(RPS) 도입을 앞두고 2009년 급조된 발전차액 연간한계총량제는 심각한 후유증을 남기며 현재까지 송사로 이어지고 있다. 당시 태양광발전사업에 진출했다 갑작스런 정부 시책변화로 큰 손해를 입었다는 한 사업자는 "정부 정책에 적극 동조하는 쪽이 결국은 손해를 보고, 그 책임도 전적으로 떠안아야 한다면 앞으로 누가 정부를 믿고 따르겠냐"고 반문했다.

오락가락 정책에 대한 논란이 불거지자 뒤늦게 정부는 '산업화' 카드를 꺼내 들기도 했다. 원자력과 신재생에너지를 수출상품으로 키워 국부를 창출한다는 구상이다. 이를 위해 정부는 매년 2조원대의 막대한 연구개발 예산을 관련분야 연구에 쏟아붓고 있다. 그러나 빈약한 내수시장을 기반으로 성장한 이들 산업이 세계적 경쟁력을 확보하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더 소요될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다.

◆ 녹색성장 궤도수정 불가피…콘트롤 타워 재정비 시급

초유의 일본 원전 사고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원자력 안전에 각별히 신경쓰되 신규 원전건설은 기존 계획대로 추진한다'는 방침을 분명히 한 상태다. 그러나 자의든, 타의든 원자력을 위시한 이명박 정부의 녹색성장 전략은 갈수록 거센 궤도수정 압력을 받게 될 것으로 보인다.

국내 원전 신규건설과 고준위 원자력폐기물 처리장 확보가 갈수록 어려워질 것이 명약관화하고, 이렇게 되면 원자력이 중심이 되는 장기 에너지수급계획도 수정이 불가피해지기 때문이다.

노동운 에너지경제연구원 녹색성장연구본부장은 일본 대지진과 관련한 최근 보고서에서 "원전 안정성 및 국민 수용성을 고려해 녹색성장 전략을 보완할 필요가 있다"며 "원자력발전을 대체할 신재생에너지에 대한 투자 및 신재생에너지와 스마트그리드를 연계시킨 정책추진 확대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녹색성장의 좌표 재설정보다 콘트롤타워의 기능부터 정상화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각 부처 상위 기구로 현안을 총괄 조정할 현 녹색성장위원회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한 채 '옥상옥(屋上屋)' 조직으로 전락하고 있다는 비판도 곱씹어봐야 한다.

산업계 한 관계자는 "녹색위가 목표관리제나 배출권거래제를 둘러싼 부처간 갈등이나 산업계와의 갈등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오히려 4대강 사업이나 원자력 확대를 위한 위원회 정도로 인지되고 있다"며 "이런 난맥상이 현 정부의 소통이상, 지휘부 부재와 맥을 같이하는 것이 아닌지 짚어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상복 기자 lsb@e2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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