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기 지향 재무적 투자 보다 공정사회 지향 시회책임투자가 대세
잘 나가는 증권맨서 변신, 불혹 넘겨 영국 유학 블루오션 개척

 

[이투뉴스] 11년 전 그는 소위 '잘 나가는 증권맨'이었다. 13년 넘게 증권업계에서 잔뼈가 굵은 그는 탁월한 투자 안목으로 수익을 올리며, 메리츠증권, SK증권, 동방페레그린증권을 거쳐 현대증권 지점장 자리에까지 올랐다. 그런 그가 지금은 사회책임투자(SRI) 전문가로 손 꼽힌다.

주식투자와 사회책임투자는 투자라는 공통분모를 갖고 있지만 '어떻게, 어디에' 투자할 것인가라는 기준에서는 간극이 있다. 주식투자는 투자 결정시 기업의 재무적 성과만을 따져 최고의 수익을 내는 게 목적이지만 사회책임투자는 재무적 성과뿐 아니라 환경·인권·노동·사회·지배구조 등 비재무적 측면까지 고려해 장기적 관점에서 투자하는 방식이다.

지난 달 <한국형 사회책임투자>를 출간한 류영재 ㈜서스틴베스트 대표이사를 지난 17일 강남에 있는 그의 사무실에서 만났다.


"증권업계는 일종의 '카지노'다. 한국사회에서 투자는 투기에 가까운 도박이나 다름없다."

류 대표는 단기투자의 재미에 빠진 한국 주식시장에 대해 온화하지만 냉정한 어투로 이같이 평가했다. 한때 증권업계에서 촉망받던 그가 한국 주식시장에 이토록 냉엄한 평가를 내린 데는 사회책임투자라는 신념이 작동했기 때문이다.

때는 2000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던 '바이코리아 펀드'가 불공정 시세조정으로 밝혀지며 이익치 현대증권 회장이 구속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류 대표는 "그때 (나는) 바이코리아 펀드를 가장 많이 판매한 사람 중 한 명이었고, 사건을 접하면서 일종의 '죄책감'을 느끼고 사직서를 제출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해 7월, 41살 나이에 영국 유학길에 올랐다.

우연찮게 같은 달 영국 정부는 사회책임투자에 큰획을 그은 연금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연금투자자는 투자에 있어 환경·사회·지배구조(ESG)를 고려해야 한다는 게 개정된 연금법의 골자다. 영국 금융가에서는 이를 두고 갑론을박을 벌였다.

그는 이 두 사건을 겪으며 사회책임투자를 접하고는 MBA에 가려던 생각을 바꿔 기업의 사회적 책임으로 유명한 애시리지 비즈니스 스쿨(Ashrdge Business School)에 들어갔다. 졸업 뒤 영국 최대 연금펀드인 헤르메스(Hermes) 연금펀드에서 프로젝트 컨설턴트로 경력도 쌓았다.

2004년 한국에 돌아온 그는 한국에 제대로 된 사회책임투자 컨설팅기업을 하나 만들겠다는 생각을 실현했다. 그것이 지금의 ㈜서스틴베스트다. 류 대표는 "증권업계 동료들에게 사회책임투자 자문회사를 차리자고 제안을 했지만 다들 생소하고 의아하게 여기며 번번이 거절하기 일쑤였다"고 말했다. 사회책임투자는 당시 한국 증권가에서조차 낯선 개념이었다.

그러다 2006년 세계 4위의 자산규모를 가진 국민연금이 1500억원을 SRI 펀드에 투자하기로 하면서 SRI 펀드 시장을 촉진하는 계기가 됐다. 같은 해 '장하성 펀드'가 사회 이슈로 떠오르면서 사회책임투자에 대한 인지도는 더 높아졌다. 장하성 펀드는 지배구조가 불량한 기업에 투자해 적극적으로 경영에 참여함으로써 지배구조를 개선하고 수익도 챙기는 일종의 SRI 펀드다.

현재 국내 SRI 펀드 시장규모는 3조원으로 부쩍 성장했다. 국민연금을 시작으로 사학연금, 공무원연금, 기업퇴직연금 등이 SRI 시장에 참여하고 있으며, 앞으로 투자기관이 더 늘어날 전망이다.

이 가운데 서스틴베스트가 컨설팅에 참여하고 있는 규모는 7500억원 정도. 그가 SRI 시장을 "블루오션(Blue Ocean)"이라고 말하는 까닭이다. 아직 미개척지이기 때문에 앞으로 발전가능성이 그만큼 크다는 의미다. 그는 "그럼에도 아직까지 국내 기업들은 이에 대해 무관심하다"며 "여전히 기업의 ESG 정보는 신뢰성이 낮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사회투자책임은 건전한 투자시장을 형성할 뿐 아니라 일반 주식형 펀드보다 수익도 높기 때문에 SRI 펀드 시장이 커질 것으로 낙관했다.

그는 국내 투자시장을 패스트푸드에 비유했다. 누구나 싸고 간편하게 먹을 수 있지만 건강을 해친다는 면에서 단기투자가 만연한 국내 투자시장과 비슷하다는 것이다. 그는 "국내 투자시장은 투기적 속성이 너무 강하다. 증권사에서 잘못된 투자문화를 주입한 탓도 있다"면서 "증권회사는 매매 수수료만 챙기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런 상황을 역전시키기 위해 그가 내놓은 대안이 사회책임투자다. 그는 "패스트푸드보다 '가정식 백반'이 몸에 좋은 것처럼 기업의 ESG를 고려한 장기적 투자가 투자시장의 건정성을 높일 것"이라고 확신했다. 단기호재나 부도덕한 이익, 투기적 거래로 얻어진 이익은 언젠가 다시 기업에게 비용으로 전가된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는 "앞으로 서스틴베스트를 한국을 대표하는 ESG 컨설팅 회사로 키우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국내 기업은 물론 국내 투자를 추진하는 해외 SRI 펀드를 대상으로 마케팅을 펼치겠다는 계획이다. 현재는 영국 런던에 본사를 둔 기업의 환경영향평가 회사인 트루코스트(Trucost)와 파트너십을 맺고 있지만 올해 외국 관련 기업들과 파트너십을 맺을 계획이다. 회사를 키우는 것과 더불어 일반투자가를 대상으로 올바른 투자교육을 하고 싶다는 바람도 내비쳤다.

김선애 기자 moosim@e2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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