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전하지 않으면 팔지 않는다' 옹고집
국산화 냉소 딛고 신뢰기업 '우뚝'

 

▲ 제주 월정리에 세워진 1.5mw급 한진산업 풍력터빈. 순수 국내기술로 제작된 1호 터빈이다.현재는 에너지기술연구원 소유다.
[이투뉴스 이상복 기자] 1984년 봄 부산시. 갓 대학을 졸업한 스물일곱의 공학도는 취업을 앞두고 있었다. 기계설계를 전공한 졸업생은 맘만 먹으면 내로라하는 대기업에 취직하던 시절이었다. 하지만 담당교수가 알선 한 첫 직장은 자본금 1000만원으로 출발한 업력 6년차의 중소기업이었다. 교수는 "작지만 세계 유일의 기술을 보유한 기업"이라며 추천했다. 그는 갈등했다.

이 회사는 수입에 의존해 온 슬리터(Slitter)와 로타리커터(Rotary cutter)라는 장비를 국산화하는 데 성공한 기업이다. 그보다 열 살이 많았던 젊은 사장은 "우린 틀림없이 성공할 거다. 사업은 돈도 벌어야 하지만 기술을 남겨야 한다. 우리 손으로 한국에서 펠렛타이저(Pelletizer. 펠렛성형설비)를 개발하고 싶다"며 공학도의 가슴에 불을 댕겼다. 2년 후 이 회사는 펠렛타이저를 국산화해 대기업에 납품했다. 수출길도 열렸다.

사장은 순번을 정해 직원들을 미국, 일본으로 유학 보냈다. 견문을 넓혀야 한다는 이유에서다. 그는 연구개발 책임자로 승진했다. 그러나 호시절도 잠시, IMF 위기 이후 화학섬유 시장이 중국으로 넘어가면서 부품산업도 일감이 줄었다. 미래 먹거리를 찾아야 했다. 이때 수시로 독일을 드나들던 사장과 그의 눈을 사로잡은 것이 있었다. 바로 풍력발전기(터빈)였다. 어차피 기술집약적 업종이 이 회사의 유일한 선택일진데, 여지껏 쌓은 정밀기계 엔지니어링 기술과 제어기술이라면 승산이 있겠다는 판단이 섰다.

이렇게 유럽 설계사와 손잡고 국산터빈 개발이 시작됐다. 기본 디자인은 설계사가, 상세 설계는 기계를 잘 안다고 자부했던 자신들이 맡았다. 중소기업이 재생에너지 불모지인 한국서 손수 풍력터빈을 만들겠다는 야심을 품은 것이다. 하지만 '꿈의 대가'는 만만치 않았다. 경험이 없다보니 그만큼 상용화가 더뎌졌다. 이미 매출보다 많은 개발비가 이 사업에 투입되고 있었다.

일부 직원들은 "그래도 시제품을 만들었으니 일단 알리고 내다팔아 돈을 벌어야 한다"며 발을 굴렀다. 그럴수록 사장은 "완전한 게 아니면 절대 (시장에) 내놓아선 안된다"며 버텼다. "80%의 기술력에 20%의 영업력이 더해진 물건을 내다팔면 그 20%의 모자람이 고객을 괴롭힌다"는 게 이유였다.  
▲ 한진 풍력터빈이 현장에 설치되고 있다. 내년까지 상반기까지 10기가 납품된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난관과 시행착오가 이어졌다.그런 사이 한국에서도 신재생에너지 개발의 중요성이 부각되기 시작했다. 수백억원의 정부 예산이 투입되는 첫 풍력 R&D 연구개발 과제도 나왔다. 뒤늦게 일부 기업이 뛰어들었다. 연구비가 부족했던 그들도 내심 기대를 걸었다. 하지만 어떤 이유에서였는지 풍력메이커론 원조에 해당하는 그들에게 기회는 주어지지 않았다.

당시 그들은 정부 연구사업인 750kW급보다 2배 이상 용량이 큰 1.5MW급을 개발하고 있었다. 어차피 시장 트렌드가 대형화로 흐르고 있어 750kW급은 곧 사양길을 걷게 될 것이라고 예측했기 때문이다. 규모가 작은 기업이 감당하기 어려운 연구개발과 투자가 계속됐다. 풍족한 정부자금을 수혈받은 기업들과 달리 '실패하면 망한다'는 절박감에 시달렸다.

하지만 이들의 기술자적 옹고집은 결국 일을 내고 만다. 2005년말 국내 최초, 최대의 1.5MW급 국산 터빈 시제품을 완성한 것이다. 설계부터 견본모델(프로토타입) 완성까지 1년여만에 끝낸 사례는 유럽에서도 드물었다. 이듬해 이 제품은 제주 월정리에 세워져 실증운전에 들어갔다. 명실공히 국산 1호 풍력터빈이었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이들은 같은해 독일 DEWI-OCC로부터 무려 5년기간의 정식 형식인증을 획득했다. 정식인증은 1년 단위 예비인증과는 차원이 다르다. 풍력사업에 뛰어든 대기업사도 최근에서야 국제인증을 준비하는 것을 보면 이들의 도전이 얼마나 앞서 있는지 가늠이 된다. 

때마침 정부와 신재생에너지공급의무협약(RPA)을 맺은 공기업들이 앞다퉈 재생에너지 시설 확충에 나선 때라 어느 때보다 시장 여건도 좋았다. 그는 '이제 우리 제품을 사려는 이들이 줄을 설 것'이라는 기대에 부풀었다. 

그러나 현실은 달랐다. 줄을 서기는커녕 발전사들을 찾아가 까다로운 국제인증을 통과했다고 설명해도 소용이 없었다. "세계 최고라는 B사의 터빈도 서 있는데 어떻게 너희 것을 믿을 수 있겠냐"는 냉소적 반응이 돌아왔다. 게다가 중소기업이 만든 국산품이라면 되레 문전박대하기 일쑤였다. 장점이어야 할 '국산'이 오히려 걸림돌이 된 셈이다.

환갑을 앞둔 사장은 '이들이 정녕 국민의 기업인가'라며 한두 번 눈물을 삼킨 게 아니다. 그 사이 에너지기술연구원에 팔린 이 발전기는 한해 4억원 이상의 발전수익을 거둬들이며 토종브랜드로 진가를 발휘했다. 하나 둘 그들의 기술력을 인정하는 사람들이 늘었다.

하지만 지난해까지 이들은 단 한 대의 터빈도 팔지 못했다. 다소 긴 실증운전 기간을 거치며 완성도를 높여가는 데 힘을 쏟았다. 의도하지 않게 얻은 3년간의 유지·보수 경험은 값졌다. 초기 콘트롤 시스템이 2년만에 100% 달라지는 것을 목격하고는 '역시 풍력은 인증도 인증이지만 오랜 경험이 더 중요하다'고 절감했다. 10여년간의 국산화 노력이 모두로부터 외면받던 그 순간에도 70m 상공 비좁은 터빈 허브(블레이드축 내부) 속에선 그들의 엔지니어가 목숨을 걸고 새벽을 맞고 있었다.

그리고 지난 3월, 국산 풍력터빈 개발 착수 10년만에 이 회사는 첫 공급계약을 체결했다. 수자원공사가 시화호 조력발전소 인근에 2기를 세우기로 한 것이다. 뒤이어 수년간 지근거리에서 이들을 지켜본 제주도가 지방보급사업 일환으로 모두 8기를 주문했다. 납기는 내년 상반기까지다.

내친 김에 이들은 틈새시장 공략을 위해 100kW급 소형풍력발전기도 선보였다. 풍력터빈의 대형화 추세를 맞추기 위해 2.5MW급 시제품도 내년 하반기 완료를 목표로 개발되고 있다. 시련의 시절이 그들을 담금질한 결과다. 아직도 이 회사는 기술이 가장 좋은 홍보요, 품질이 가장 큰 고객만족이라고 믿는다.

▲ 강태중 한진산업 상무이사(기술연구소장)

지난달 29일 경남 양산시 하북면 용연리 한진산업(대표이사 윤영술) 생산공장. 스물일곱의 그 공학도는 어느덧 지천명의 임원이 됐다. 강태중 한진산업 상무이사는 5000m²(약 1500평) 규모로 건립되고 있는 풍력전용 공장을 안내했다. 대량 생산체제를 위한 준비작업이 한창이었다.

풍력산업이 급성장하면서 아예 통째로 해외기술을 수입하거나 풍력기업을 인수하는 방식으로 사업에 진출하는 케이스도 늘고 있다. 국내외를 막론한 풍력산업의 무한경쟁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강 상무는 "규모로 밀어붙이면 대기업이 잠깐 반짝하겠지만 결국은 경험이 승부를 가를 것"이라며 "우린 그런 면에서 3~4년 앞서 있다. 어떤 회사가 생존할지 지켜보라"고 말했다. 

                                                                                                                               <양산=이상복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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