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정림 변호사(법무법인 태림)

하정림 변호사(법무법인 태림)
하정림 변호사(법무법인 태림)

[이투뉴스 칼럼 / 하정림] 미국 몬태나 주법원은 어린이 및 청소년 16명이 몬태나 주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소송에서, 화석연료 친화적 법률조항의 위헌성을 인정하며 승소판결을 내렸다(Held v. State of Montana). 해당 소송에서 법원은 100여페이지에 달하는 판결문을 통하여, 몬태나 주가 화석연료 프로젝트를 개시 또는 갱신하는 경우 기후변화 영향을 고려해야 하며, 주 환경부가 화석연료 프로젝트에 대한 허가를 발급할 때 온실가스의 영향을 고려할 필요가 없다는 취지의 법률이 주 헌법에 명시된 깨끗한 환경에 대한 권리를 침해하여 위헌적이라는 판단을 내렸다. 

최근 세계 각국의 기후 관련 소송에서 전향적인 판결이 나오고 있다. 그러나 아직 한국에서는 냉혹하다. 필자가 농담처럼 말하는 것인데, 우리나라 재판정에서 변호사가 환경권의 “환”자만 꺼내도 재판부의 표정이 차가워진다. 우리나라에서 헌법상 ‘모든 국민은 건강하고 쾌적한 환경에서 생활할 권리를 가지며, 국가와 국민은 환경보전을 위하여 노력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헌법 제35조 제1항), ‘환경권의 내용과 행사에 관하여는 법률로 정한다’는 조항(헌법 제35조 제2항) 때문에, 별도의 국회법률이 없다면 헌법 자체로 구체적인 환경권을 주장하기 어렵다는 확고한 법리 때문이다. 실제 환경권이 문제되는 많은 사건들이 헌법상 환경권이 아닌, 소유권, 점유권에 기한 방해배제청구권 등 사법적 권리를 통한 침해구제라는 우회적 통로(?)로 주장되고 있다. 그러다 보니, 개개인에 대한 구체적인 침해(일조권, 소음, 진동 등)가 아니라면 사실상 환경권이라는 추상적 권리 자체가 인정되지 않는 경향이 있다. 

이러한 경향 하에 사법부는, (1) 일단 침해가 있으면 그때 다투어라(소의 이익), (2) 설사 다투더라도 매우 직접적인 침해를 당한 사람만 다투어라(원고적격)라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수많은 기후 관련 소송의 특성상, 큰 자본이 투자되어 실행이 되고 나면 그것을 다투는 것은 더 어려워진다. 예컨대 위 미국 몬태나주 판례처럼, 화석연료 발전소가 설립되기 전에 문제가 있다고 해서 착수가 안되는 것과, 이미 다 설립되어 주변 대기가 오염된 후에 다투는 것 중 어느 것이 효율적이겠는가? 후자의 경우 이미 발전소 자체에 새로운 이해관계자가 생기기 때문에, 더욱 큰 사회적 비용이 든다. 오히려 환경 분야야말로 사전적인 사법적 판단이 훨씬 사회적 비용을 줄일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판단의 진입 자체(본안요건 통과)가 어려운 상황이다.

사법부 입장에서는 확립된 법리에 어긋나게 전향적인(?) 판결을 하기 쉽지 않은 점이 충분히 이해된다. 결국 당사자, 그리고 대리인이 판사를 설득할 수 있을 정도의 충분한 근거를 가질 수 있어야 한다. 실무에서 뛰는 변호사 입장에서는 사법부의 판단 부담을 경감시켜줄 만한 관련 분야의 전문가 풀이 가장 절실하다. 아직 국내에서는 사법적 분야의 전문가와 기술적 분야의 전문가가 서로 교차되지 못하고 있는 경향이 있는 듯 하다. 환경, 에너지 분야에서의 전문감정인들이 더욱 늘어나야 한다. 또한 권위있는 학설과 논의, 그리고 여러 국민들의 여론적 지지가 새로운 해석의 바탕이 될 수 있다. 법은 ‘많은 사람들이 지키자고 약속한 최소한’이다. 그렇다면 많은 사람들이 심정적으로 동의한다면, 현행 제도 하에서도 여러 변화가 있을 수 있다고 보인다. 

이러한 견지에서 최근 국내에서도 다양한 기후소송이 제기되고 있다. 척박한 국내 기후 관련 환경에서 쉽지 않지만, 향후 새로운 불씨가 될 것이다. 과거 합헌으로 여겨지던 호주제, 낙태죄, 간통죄 등도 과거에는 합헌이라고 판단되었다가, 시대가 변화하여 위헌적인 제도로 판단받은 것들이다. 시대의 변화가 결국 레거시의 변화도 이끌어낼 것으로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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