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배 건국대학교 전기전자공학부 교수

박종배 건국대학교 전기전자공학부 교수
박종배 건국대학교 전기전자공학부 교수

[이투뉴스 칼럼 / 박종배] 갑진년 들어 유가, 석탄 및 LNG 가격은 서서히 안정화되고 있다. 1월 kWh당 발전원별 연료비 단가는 석탄 72원, LNG 165원, 유류 351원으로 글로벌 에너지 위기가 극에 치달았던 작년 1월보다 각기 43%, 36%, 7% 감소하였다. 작년의 계통한계가격(SMP)과 정산단가는 kWh당 167원, 138원으로 역대 최고 수준을 보인 ’22년 대비 각각 15%, 10% 감소하였다. 작년 11월까지의 한전의 전력 판매단가는 kWh당 152원 수준으로 정산단가보다 높아 역마진의 구조에서는 벗어나고 있다. 작년 전력판매량은 ’22년 동기간 대비 마이너스 성장(-0.3%)을 보였으며, 특히 산업용 전력판매량은 1.7% 상당 수준 감소하였다. 한편, 작년의 전력공급은 기저발전기인 원자력과 석탄, 신재생 등이 지속적으로 늘어나 144GW에 이르고 있다. 작년의 추세는 올해도 지속되어 수요 정체, 공급 증가, 연료가격 안정화 등 시장 가격에 미치는 세가지 주요 요인 모두 하방으로 작용할 것으로 판단된다. 하지만, 홍해와 중동지역의 지정학적 위험 증가로 연료가격의 불확실성은 여전히 높은 측면, 글로벌 에너지 위기 이전인 ’21년의 SMP와 정산단가가 94원/kWh, 95원/kWh에 불과하였다는 점, 한전의 누적 부채가 204조에 이르고 있어 정상적인 기업 운영이 어려운 상황 등을 고려할 때, 한전을 중심으로 한 전력산업계의 어려움은 올해도 지속될 것이다. 한전의 비상 경영과 자구책, 원가를 반영하는 전기요금 체계 구축 등이 실행되어야 하지만, 한전 영업비용의 80% 내외를 차지하는 구입전력비의 원천인 도매전력시장의 대대적인 개혁이 반드시 이루어져야 한다. 

우리나라 도매전력시장은 2001년 개설 당시의 유아기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 연료비를 중심으로 하는 비용기반의 의무적 풀시장, 하루전 에너지시장(kWh)만의 운영에 따른 실시간 에너지시장의 부재, 1, 2, 3차 예비력에 대한 보조서비스 시장의 부재, 비탄력적인 용량(kW) 보상 제도, 발전사업자와 판매사업자 사이의 물리적·재무적 계약 시장의 부재, 에너지가격에 대한 지역적 가격 신호의 제공 한계, 전력시장과 계통운영 인프라의 괴리, 발전과 판매의 겸업 금지 등 문제점들을 일일이 나열하기도 어려운 지경이다. 연간 거래 금액이 조만간 100조원에 달하는 도매전력시장의 비효율성은 비용 상승에 따른 소비자 전기요금 부담 증가, 사업자들의 리스크 증가, 사업자 사이의 공평성 저하, 신기술과 신산업 시장 진출 저해 등 그 부작용이 무시할 수 없는 수준에 이르고 있다. 다행히 이달부터 제주 시범사업을 실시하기로 결정함에 따라 실시간 시장과 보조서비스 시장, 신재생에너지의 입찰 제도 등이 새로이 도입되고 이는 우리나라 도매전력시장의 대대적인 변화의 출발점이 될 것이다. 제주 전력시장의 대대적인 변화에 따라 기존 발전사업자 뿐만아니라 신재생 및 새로이 출범하는 통합발전사업자(VPP)들은 빠르게 적응하고 솔루션을 구비해야만 시장에서 우위를 선점할 수 있을 것이다. 

전력 당국과 전력거래소 및 관련 기관들은 사업자들의 시행 착오와 혼란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정보를 제공하고 교육을 실시하여야 한다. 비록 제주 시범사업에서 수요측 입찰과 실시간 가격의 시장 부하에의 적용, 이중 정산에 따른 위험을 관리할 수 있는 가상 입찰 등의 시스템의 도입, 일반 발전기의 가격 입찰, 제주지역에서의 모선별 가격(LMP) 적용은 전력계통과 시장운영 인프라 등의 한계로 도입되지는 않지만, 15분 단위의 실시간 에너지시장과 보조서비스 시장의 도입은 도매전력시장 가격 신호의 정교화의 측면에서 큰 의의가 있다. ’25년말에 실시될 예정인 육지 전력계통은 제주보다 99배나 큰 전력시장이고 복잡성 또한 비교 불가의 수준이다. 도매전력시장 개편에 있어 필요한 과제는 상당히 많지만, 우선은 경쟁 활성화를 통한 비용 절감 효과가 큰 부분부터 차근차근 시행할 필요가 있다. 제주 시범사업 영역에 추가적으로 육지 전력시장의 수도권-비수도권 구분에 따른 지역적 가격 신호의 제공, 시장과 경쟁 기반의 양수와 에너지저장장치 유인, 일반 발전기 가격입찰제도 도입, 발전사업자와 판매사업자의 계약 시행 등이 이에 해당한다. 제주 시범사업에서 전력 당국, 관련 기관, 사업자의 적응과 학습이 절실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올해는 전력거래소가 운영하는 도매전력시장의 외부에서도 상당한 변화가 발생할 것으로 보인다. 오는 6월부터 시행되는 분산에너지 활성화 특별법에 따른 특화지구내 전력거래는 일종의 전력구입계약(PPA)에 해당하는 물리적 거래이다. 또한, 올해 전기사업법 개정으로 허용되는 송전혼잡지역의 발전사업자와 신규부하 사이의 PPA 제도 또한 물리적 거래에 해당한다. PPA 계약 조건은 전기소비자와 공급자 사이에 자율적으로 결정될 사항이지만, 이에 대한 송배전망 이용료와 보완 공급 약관 등은 중립적인 관점에서 결정되어야만 한다. 

전력계통의 운영도 이들 사이의 전력거래는 물리적 거래이므로 다른 중앙급전발전기와는 달리 원칙적으로 자기 급전(Self Scheduling)에 해당한다. 즉, 급전권이 전력거래소에서 해당 계약자에게 넘어 감을 의미한다. 하지만, 안정적 전력계통 운영을 위하여 자기 급전 발전기에 대한 제어가 필요한 상황이 발생할 수 있으므로 이때 계통 기여에 대한 비용 지급 등에 대한 의사결정도 향후 논의되어야 한다. 이는 마치 시장참여 신재생에 대하여 용량요금을 추가적으로 지급하는 것과 동일한 논리이다. 올해는 우리나라에서 실질적으로 쌍무계약과 의무적 풀 시장이 공존하는 원년이 될 것이므로 전력시장, 전력계통, 사업자 위험 관리 등 제반 제도를 사전에 정비해야 한다. 

20년 이상 정체된 도매전력시장의 변화와 개혁이 하루 아침에 이루어질 수 없다. 향후 10년의 도매전력시장 개선 로드맵을 만들고, 우선 시급한 사항부터 변화시켜야 한다. 물론 전기요금 정상화와 경쟁 도입과 같은 소매전력시장의 개혁도 동행되어야 한다. 한 걸음을 떼지 않으면 열 걸음, 백 걸음을 갈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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