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원형 생태환경작가

최원형 생태환경작가
최원형 생태환경작가

[이투뉴스 칼럼 / 최원형] 해가 바뀌고 며칠 뒤 주문한 갈대 빗자루가 왔다. 빗자루 명인이 만든 빗자루는 점점 숱이 줄어들고 손잡이 부분이 망가져 대충 수리해서 10년을 넘게 썼다. 그러다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 주문한 빗자루였다. 80세가 훌쩍 넘은 빗자루 명인은 여전히 목소리가 정정하시다. 오래오래 빗자루 만들어주십사 새해 덕담을 전했다. 낡은 빗자루는 이제 베란다와 현관을 청소하는 용도로 임무가 바뀌었다. 국내 가전사에서 나온 청소기를 모두 사용해봤을 정도로 나는 청소에 진심이다. 글이 풀리지 않으면 청소하며 생각을 정리하는 버릇이 있다보니 하루에 두 번, 필요하면 세 번도 마다하지 않을 만큼 청소에 집착했다. 많이 썼으니 고장 나는 게 당연하다 생각했고 서비스센터에 다녀와도 얼마 못 가 또 고장이 나니 회사를 바꾸어가며 새 제품을 구입했다. 

일본의 비전력공방 운영자이자 발명가이기도 한 후지무라 야스유키 씨를 알게 되면서 내 인생에 빗자루가 들어왔다. 그는 전기 없이 가능하면 인간의 동력이나 자연에너지를 이용해서 물건을 작동시키는 연구를 한다. 그가 빗자루와 전기청소기의 효율성을 비교한 글을 읽었는데 무척 신선했다. 전기청소기는 시끄럽고, 줄이 닿지 않으면 플러그를 빼고 다시 꽂아야 하고, 온 집안을 끌고 다니면서 가구를 흠집 내는 일등 공신이고, 비싸고, 무거운 물건이라 평가했다. 지금은 저소음, 무선 청소기들이 나와 그가 지적한 몇몇 단점이 보완되고 있는 것으로 안다. 그러나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문제는 꽤 있다. 수명은 길어졌을까? 수리는 잘 될까? 수리할 수도 없는 고장이 발생하면 결국 폐기해야 할 텐데 전기청소기를 구성하고 있는 부품 대부분은 분해되어 자연으로 돌아가지 못한다. 처분이 요원한 전자폐기물 문제, 그리고 애당초 청소기를 제조하는데 필요한 원료를 채굴하는 문제까지 우리가 청소기를 사용하는 이면에는 심각한 문제들이 산적해 있다. 무언가를 얻게 되면 반드시 무언가를 잃게 마련이다. 

우리 집에는 동시대인들이 평균적으로 소유하고 있는 물건 가운데 없는 물건이 좀 된다. 텔레비전을 없앤 지 20년이 넘었다. 전기밥솥도 없다. 국산 제품이 나오기 전부터 사용하던 독일제 식기세척기도 없앤 지 10년쯤 되어 간다. 후쿠시마 사고 이후 에너지 문제에 눈을 뜨면서 벌어진 변화다. 전자레인지는 재작년에 없앴다. 고장이 나서 수리하러 갔는데 비용이 7만9천 원이 든다고 했다. 고쳐달라고 하니 서비스센터 직원이 오히려 당황해하며 내게 장황한 설명을 늘어놓았다. 전자레인지에는 주요 부품이 3개인데 이 3개의 부품가격이 대략 비슷하다고. 그러면서 제품을 오래 썼으니 수리한다고 해도 또 다른 게 고장날 가능성이 높아 결국 새 제품을 사고도 남을 비용이 든다는 거였다. 왜 완제품보다 부품가격이 이토록 비싸냐 물었더니 제품은 대량생산을 하지만 부품은 낱개 구입이라 그렇다고 했다. 수리 대신 신제품을 구입하도록 유도하는 합리적이지 못한 시스템에 동참하고 싶은 마음이 사라져 잠시 고민을 하다가 잘 폐기시켜 달라는 말과 함께 전자레인지를 두고 왔다. 

전자레인지는 주로 음식을 데우는 용도로 사용했는데 음식을 데울 방법은 전자레인지 말고도 ‘이미’ 있다. 전자레인지가 우리 삶에 등장하기 전에 다들 사용하던 바로 그 방법이다. 다만 조금 부지런해야 하고 조금 느린 속도를 받아들이면 된다. 그뿐이다. 구입한 지 5년도 안 된 제품을 오래 사용했다고 생각하는 게 자연스러운 세상에 살고 있다. 한번은 노트북이 문제가 생겨 수리하러 갔더니 3년 썼으면 오래 쓴 거라며 새 제품을 권유했다. 고쳐 쓰겠다고 하니 메인보드를 모두 교체해야 한다며 상당한 비용을 제시했다. 메인보드에 있는 자잘한 부품 가운데 일부가 고장이 나도 통째로 교체할 수밖에 없다는 답변을 들으며 분노가 치밀었다. 기업이야 부품보다는 제품을 파는 게 이윤이 더 남겠지만 쏟아지는 폐기물은 어떡하라는 걸까? 우주를 여행할 만큼 과학과 기술이 나날이 진일보하는 21세기에 왜 제품의 수명은 이토록 짧으며 수리하는 기술은 좀체 나아가질 못하는 걸까?

청소기를 멈추고 빗자루와 물걸레로 청소를 하면서 보이지 않던 집안 물건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빗자루가 닿는 곳의 물건을 살필 여유가 생겼다. 빗자루질하다 말고 ‘이 물건이 여기 있었네’ 찾던 물건을 발견하기도 하고 물건 위에 쌓인 먼지도 한 번씩 털어낼 수 있으니 개운하다. 빗자루 청소는 소음 대신 음악감상을 허락해줬다. 새 빗자루가 와서 낡은 빗자루랑 포개봤더니 절반 정도 줄어든 10년이 눈에 보였다. 낡은 빗자루는 여전히 더 줄어들 때까지 쓸 것이고 마침내 더는 못 쓰게 되었을 때 자연으로 돌아가 벚나무가 되어 새봄에 화사한 꽃을 피울 수도, 느티나무가 되어 한여름 시원한 그늘을 만들 수도 있다. 그럼에도 우리 집에도 여전히 전자제품은 있다. 결국 더 이상 사용할 수 없게 되었을 때 나는 또 하나씩 없앨 수 있을까? 대체할 방법이 있다면 ‘빼기’를 해 보려 한다. 빼기가 안 되는 물건이라면 나는 수리할 ‘권리’를 실현하고 싶다. 튼튼한 제품뿐만 아니라 수리가 수월한 제품을 생산하도록 기업에게 요구하는 시민의 목소리가 커져야 가능한 일이다. 그대, 함께 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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