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존 조직 완전 해체… 원점서 '새판짜기' 시도

 

▲ 에너지기술평가원 '새판짜기'에 돌입한 이준현(사진 원내) 원장의 행보에 안팎의 관심이 증폭되고 있다. 사진은 서울 대치동 에기평 신사옥 전경.

 '한국판 NEDO' 에너지기술평가원(이하 '에기평')에 묘한 정적이 흐르고 있다. 지난 5월 취임한 이준현 원장의 '새판짜기'가 3개월째 현재 진행형이기 때문이다. 올해로 출범 2년차를 맞은 에기평은 최근 유관기관 소속 인력에 대한 물리적 통합을 마무리하면서 2기 체제의 서막을 올렸다.

그러나 취임 직후 칼부터 빼든 새 수장은 결단에 앞서 장고에 들어간 상태다. 더욱이 '이준현식' 새 진용은 앞으로도 2개월이 더 지나야 윤곽을 드러낼 것으로 보인다. 에기평의 향배를 궁금해하는 안팎의 관심이 갈수록 증폭되는 이유다. 도대체 에기평 내부에선 지금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

◆[원칙 1] 아무도 믿지 않는다 = 이달초 에기평은 전략기획본부장 자리를 놓고 공모를 실시했다. 이 직위는 새 진용에 대한 틀을 짜고 조직 전반을 총괄한다는 점에서 원장에 이어 서열 2위로 간주되고 있다. 하지만 이 공모에 참여한 9명의 내외부 인사는 너나 할 것 없이 고배를 마셨다. 이 원장이 '적임자가 없다'는 이유로 공모를 물렸기 때문이다.

이를 두고 직원들 사이에선 무성한 뒷말이 오갔다. 대체로는 "신중하게 하다보면 그럴 수도 있을 것"이라는 반응을 보였지만, 일부 직원들은 "(원장)입맛에 맞는 사람이 없었다는 얘기가 아니냐"며 각을 세우기도 했다. 지금도 이 자리는 평가관리본부장이 겸직하고 있다.

이미 1기 체제의 골격은 온데간데 없이 사라진 상태다. 출범부터 요직을 맡아 초대원장과 호흡을 맞춰 온 간부 대부분이 변방으로 밀려나 있다. 심지어 당시 고위급에 있던 한 간부는 한동안 한직을 전전하다 최근 본부 산하 13개팀의 일원으로 발령이 났다. 이 원장의 인사스타일을 보여주는 한 단면이다.

한 간부급 관계자는 "원장께서 에기평의 밑바닥부터 새로 판을 짜겠다는 생각을 하고 계신 것 같다"며 "나 역시 마음을 비우고 주어진 일에 몰입하려 애써보지만 아무래도 신경이 쓰이고 몸을 낮추게 되는 게 사실"이라고 분위기를 전했다.

◆[원칙 2] 보여지는대로 평가한다 = 에기평 임직원들은 지난 24일까지 '자기혁신 60(Self-Innovative Program)'이라는 프로그램의 수행계획을 전원 제출했다. 스스로 자신의 혁신과제를 정한 뒤 향후 60일간 자성과 자기 혁신을 통해 이 과제를 실천한다는 게 이 프로그램의 내용이다.

이를 통해 직원역량을 강화하는 한편 조직문화를 혁신해 이 결과를 새로운 에기평의 전략으로 삼겠다는 게 이 원장의 구상이다. 하지만 이 프로그램의 상징적 의미는 단순한 조직 혁신을 뛰어넘는다. 오는 9월 수행평가가 완료되면 이 결과가 그대로 차기 인사에 반영될 공산이 크기 때문이다.

이런 배경을 알아차린 임직원들은 수행계획 구상부터 제출까지 각별한 공을 들일 수밖에 없었다는 관계자의 전언이다. 한 부서의 직원은 "일에 쫓긴다고 소홀히 할 일이 아니라고 생각돼 고민을 많이 했다"면서 "짧은 시간 안에 최대의 성과를 보여줘야 한다는 중압감이 만만치 않다"고 말했다.

◆ '혁신'에 대한 엇갈린 평가 = '혁신'을 화두로 꺼내든 이준현 원장에 대한 안팎의 평가는 '지지'와 '우려'로 엇갈리고 있다. 한 해 1조원 가까운 R&D 자금을 관장하는 기관으로서 새 시스템 도입이 불가피하다는 주장과 신생조직에 무리한 혁신을 요구하는 것 자체가 무리라는 반응으로 나뉘고 있다.

평가원 설립에 관여한 한 민간기업 관계자는 "일정이 쫓겨 설립된 에기평을 다시 원점에서 재정비하는 일은 의미있는 작업으로 볼 수 있다"면서 "여러 기관의 인력이 모인 만큼 출신이나 개인성향이 업무에 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새 틀이 만들어지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반면 유관기관의 한 관계자는 "인사를 전제로 한 혁신 요구는 '줄서기'나 '성과주의', '충성경쟁' 등의 부작용과 아직 기본기도 갖춰지지 않은 조직에 혼란만 부추길 수 있다"고 우려하면서 "특히 임기의 3분에 1 가량을 조직정비에 할애하는 것은 조직 안정을 위해서라도 기관장이 다시 생각해 볼 문제"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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