징수목적 동떨어진 사업에 예산 '줄줄'
신재생에너지 분야 예산 증액은 미흡

국민 호주머니에서 걷힌 전력산업기반기금이 '눈먼 돈'으로 전락하고 있다. 전기요금의 3.7%를 일괄적으로 징수해 조성되는 이 기금은 2007년 1조2883억원, 올해 1조4877억원(예정) 등으로 매년 집행규모가 늘고 있다.

14일 전기사업법(제49조) 등에 따르면 애초 이 기금은 신재생에너지 개발 및 보급, 전력수요 관리, 도서ㆍ벽지 전력공급 지원, 전력산업 연구개발 등 공익사업에 사용되도록 용처가 제한돼 있다.

특히 이 기금은 '신재생에너지 촉진법'이 신에너지 및 재생에너지로 정의한 태양, 바이오, 풍력, 수력, 지열, 수소 등의 발전사업을 우선 지원토록(제1항)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지금까지 이 기금은 징수목적과 동떨어진 사업에 막대한 예산이 투입되는가 하면, 원금보장도 안되는 투기목적의 파생상품에 투자돼 수백억원이 날아가는 등 '주인없는 돈'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주인 없는 돈'의 용처 = <이투뉴스>는 지식경제부 위탁을 받아 전력산업기반기금을 운용하고 있는 전력기반조성센터로부터 2007~2009년 기금집행 내역을 입수했다.

이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기금으로 집행된 예산은 모두 1조5401억원으로, 이 가운데 가장 많은 예산이 투입된 곳은 전원개발 및 전력공급지원사업(3196억원)이다. 이 사업은 도서지역의 자가발전시설 운영이나 농어촌지역의 전기공급 지원을 목적으로 하며, 전기사업법(49조 4항)에 그 근거가  명시돼 있다.

그러나 전원이나 전력공급을 목표로 하는 이 사업 명목으로 지원된 또 다른 2개 사업의 집행내역을 살펴보면 고개가 갸우뚱해진다. 1438억원 규모의 무연탄발전 지원과 335억원 규모의 열병합발전 지원 사업이 포함돼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들 사업은 석탄산업 지원 및 집단에너지 사업 지원을 허용한 전기사업법 기금 운용 테두리 범위내에 있다. 하지만 열병합발전 지원사업 예산의 대부분이 특정 지역난방 공급지역 열요금 인하에 사용된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드물다.

발전소 주변지역 지원을 위해 사용된 내역을 보면 그나마 이 정도는 양호한 축이다. 기금 징수 취지가 무색해지는 수준이다. 지난해 센터는 대국민 홍보사업에 109억원, 용도가 불분명한 특별지원사업에 423억원을 집행했다. 심지어 민간환경감시기구를 지원한다며 26억원을 쓴 경우도 있었다.

겉으로 보면 발전소 지역주민을 위해 집행되는 것으로 볼 수 있으나, 홍보나 민간기구 지원은 우호적 여론 형성을 위한 활동이란 점에서 국민보다는 발전사업자 스스로를 위한 용도로 이해될 수밖에 없다.

이에 대해 정부 당국자는 "기금은 전력품질 향상과 요금인상 억제 등의 효과를 통해 국민에게 혜택이 가도록 집행되고 있다"며 "법이 규정한 목적에 부합되도록 매우 효율적이고 제한적으로 사용되고 있어 용도를 벗어났다는 주장은 인정할 수 없다"고 말했다.

국민 세금으로 조성된 기금이 리스크가 높은 투기목적 파생상품에 투자돼 공중분해된 사례도 있다.

센터는 2007년 주가지수연계펀드(ELF)에 기금을 투자, 지난 2년간 771억원의 평가손실을 봤다. 원금도 보장 안되는 투기상품에 쏟아부은 공익자금이 제 목적에 쓰여보지도 못하고 증발된 셈이다. 이로 인해 전력산업기반기금은 지난달 기획재정부가 내놓은 기금운용실적에서 혹평을 받았다.

◆ 신재생분야 예산 '증가세' = 징수목적에 부합되지 않게 사용된다는 지적에도 불구하고 신재생에너지 분야의 예산은 큰 폭으로 늘어난 것이 사실이다.

2007년에 각각 1046억원, 760억원에 그쳤던 신재생에너지 개발, 신재생에너지 보급 예산은 지난해 각각 1793억원, 1755억원으로 급증했고, 올해는 각각 2122억원, 2182억원이 집행될 예정이다.

여기에 1240억원 규모로 책정된 신재생보급 융자사업 예산을 합하면 전체 예산의 약 40%가 이 분야에 투입된다는 계산이 나온다.

전력기반조성센터 관계자는 "올해 5045억원으로 시작해 2011년 7187억원, 2013년 7929억원 등으로 신재생에너지 분야의 예산을 꾸준히 늘려 국정과제의 원활한 수행을 도울 예정"이라며 "그러나 민간부담이 어려운 의무지원 사업의 예산을 줄이는 것도 쉬운 문제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반면 신재생에너지 업계 한 사업자는 "타 용도로 사용되는 예산의 10%만 줄여도 지금처럼 발전차액이 모자라 사업을 위축시키는 일은 없을 것"이라며 "전력산업기반기금이 목적에 맞게 충실히 사용될 수 있도록 충분한 감시가 우선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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