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지·송전망·계통운영 첩첩산중인데 전기본만 혈안
"원자력은 카르텔 아니냐", "수술대 없이는 공멸"

▲신고리 5,6호기 건설현장
▲신고리 5,6호기 건설현장

[이투뉴스] 윤석열정부의 '원전 늘리기' 무리수에 전력 전문가들은 물론 일선 공직자들도 혀를 내두르고 있다. 정부는 우선 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 신규원전을 반영하는데 총력전을 펴고 있지만, 첫 관문을 넘는다해도 남은 행정절차와 부지확보, 송전선로 확충, 계통운영까지 앞으로 해결해야 할 현안이 첩첩산중이어서다.

21일 <이투뉴스> 취재를 종합하면 산업통상자원부는 18일 전력정책심의회에서 11차 전기본 워킹그룹을 통해 장기 전력수요를 과학적으로 정밀하게 전망한 뒤 이를 바탕으로 탄소중립 등의 정책목표가 조화된 전원믹스를 도출하겠다고 공언했다. 특히 "신규원전 도입 등으로 비용효율적인 전원믹스를 구성하는 공급능력 확충방안을 구체적으로 검토하겠다"면서 10차에 이은 원전 추가반영을 노골화하고 있다.

통상 전기본은 수요전망 분과가 미래 전력수요 증감여부를 판단한 뒤 신규 설비 건설이 필요할 경우 어떤 발전원으로 공급할지 구체적 계획을 세우는 절차를 밟아왔다. 하지만 이번처럼 수요전망 작업도 시작하지 않은 상태에서 정부가 신규원전 반영을 기정사실화 한 것은 처음이다. 전력정책에 관여하는 한 당국자는 "(산업부가) 그만큼 (윗선압박에)쫓기고 있다는 뜻"이라며 "다들 어리둥절한 상태"라고 했다.

◆ 마음 급한 산업부 = 전력업계와 전기본 참여 후보위원들에 따르면 11차 계획작업은 이달말 총괄분과위 및 하위분과 위원 킥오프 회의를 시작으로 최소 연내 정부 실무안(초안)을 마련하는데 목적을 두고 숨가쁘게 추진될 예정이다. 이와 관련 정부는 최근 전 정부에서 임명된 전력정책심의회 위원 대부분을 임기만료를 이유로 대부분 교체한데 이어 막바지 전기본 위원 인선작업을 벌이고 있다.

가급적 이달내 총괄분과위 첫 회의를 열고, 내달 하위 분과위 세부회의를 본격 시작하는 등 계획을 공식 착수한다는 방침이다. 업계 관계자는 "전력정책심의회 때 일부 위원들이 미래 불확실성을 고려해 원전확충이 불가피하다는 의견을 냈다고 한다"면서 "전기본은 시작도 안했지만, 수요가 크게 늘어나니 무탄소 전원 공급을 늘리려면 원전을 더 지을 수밖에 없다는 방침이 세워진 셈"이라고 말했다.

물론 정부가 아무리 속도를 낸다해도 전기본 수립 일정 자체를 단축하는 일은 만만치 않다. 기본적인 수요전망 작업에 최소 수개월이 필요한데다 이번 계획부터는 정부안이 나와도 전략환경영향평가외에 기후변화환경영향평가도 추가로 받아야 한다. 연내 초안이 완료된다해도 이들 환영평 작업과 공청회, 국회보고 절차까지 마치려면 최소 내년 상반기는 되어야 계획확정이 가능하다는 계산이 나온다.

전기본 위원으로 참여 예정인 한 학계 인사는 "신규 원전 반영의 근거를 마련하는 계획인데다 뒤탈이 날 수 있으므로 정부도 졸속으로 대충 계획을 만들지는 못할 것"이라며 "야당이 포함된 국회 보고절차 등을 감안하면 실무안 수립기간을 줄인다는 건 큰 의미가 없다. 납득할만한 근거를 확보하는 게 가장 중요한 문제"라고 평가했다. 

◆ 막막한 전력당국 = 속도전에 나선 산업부와 달리 전문가들과 당국자들은 고개를 가로젓고 있다. 신규원전을 짓는다는 결정이 11차 전기본에 담기더라도 계획의 이행력을 담보하기 어려운 환경이어서다. 이에 대해 8, 9차 전기본 수립에 참여한 전력계 한 인사는 "원전부지도 없고, 송전선로도 건설도 어렵고, 송전선로 건설 재원도 없는 '3無' 계획이 될 것"이라고 일축했다. 

이 인사는 사견임을 전제로 "원전건설은 다년간의 지역 수용성 확보, 지정구역 고시 및 부지매입 등 사전 작업이 모두 완료되어도 부지확정까지 15년이 넘게 걸리는 과업인데, 수급계획에 한줄 넣는다고 건설이 확정되는 것은 아니"라면서 "부지가 있다해도 송전선로 건설계획 수립과 실제 건설은 완전 별개다. 한전이 적자로 송전선 확충을 완전히 손놓고 있는 상태라 말처럼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수도권 반도체 특구 필요전력을 원전으로 공급한다는 구상에 대해서도 정부가 RE100 캠페인에 대한 인식이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다국적기업 한 전력전문가는 "반도체 공장들이 CF100(원전 등 무탄소 100%)을 하면, 애플 등이 RE100으로 인정해준다고 하더냐"고 반문하면서 "삼성전자나 하이닉스는 바이든정부 압박에 해외공장 건설부터 생각한다는데, 어느 세월에 공장을 짓고 전력을 끌어댈 것"이냐고 혀를 내둘렀다.

그는 "반도체공장에 7GW가 필요하니 10GW가 필요하니 말들은 많지만 한전은 송전선로 건설한 비용을 어떻게 조달하고, 비용이 있다고 한들 제때 건설이 가능하기나 한 것이냐"면서 "재생에너지가 카르텔이라면, 원자력은 카르텔 아니냐. 답도 안나오는 얘기를 정책이라고 만든다는데 한심하다. 그러다 발전공기업이나 한전 어디가 공중분해 되어봐야 정신을 차릴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정부 실무를 맡아보는 전력당국도 갑갑증을 호소하기는 마찬가지다. 원전 약 30%, 재생에너지 8% 전력믹스에서도 계통운영에 심각한 어려움을 겪고 있는데 정부가 여건은 생각도 하지 않고 추가원전 건설계획만 밀어붙이고 있기 때문이다. 

익명을 원한 한 당국자는 "원전을 감발하지 않는다면 나머지 비중앙발전기들을 제어할 수 있어야 하고, 그럴려면 절차와 기준, 형평성을 충족하는 종합 계획이 마련돼야 한다"며 "현 상태는 기준도 없고 배전에 물려있는 재생에너지 제어실행도 어렵다. 송배전이 합쳐진 유럽 TSO체제나 미국 ISO체제 등 해외와 여건이 달라 무엇하나 쉽지 않다. 비상선언 이후 수술대에 올리지 않으면 모두 공멸"이라고 경고했다. 

이상복 기자 lsb@e2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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