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일 오후 2시 국회의원회관. 바야흐로 국감(國監)의 계절이다. 그런데 국회는 텅텅 비었다. 경선치르랴, 지역구 주민 챙기랴, 의원님 모두 바쁘셨단다. 하긴 당의 호각소리에 맞춰 줄도 잘 서야 하고, 시험(총선)도 얼마남지 않았다.

 

그러니 두 달 남은 참여정부 안 살림이야 상임위 없다고 문제될 게 있으랴. 보좌관은 의원님 수행 가시고, 머리가 쭈뼛 뻗쳐오른 비서관들만 의자에 몸을 내던진 채 꾸벅꾸벅 존다. 아 얼마나 평화로운 풍경인가.

 

끼니도 거르며 전국을 한바퀴 돌고 왔다는 비서관의 달콤한 오수(午睡), 지금쯤 윤기가 흐르는 살찐 말을 타고 평원을 내달리고 있으리라.

 

어찌됐건 17일부터 국회에 한 판 멍석이 깔린다. 먼 고향에서 자신을 지켜볼 유권자들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이번 국감의 공략포인트는 '지방'이 될 것이란다. 산자부의 모 국장도 발빠르게 한몫 단단히 챙겼다는데, 평소 소원했던 지역구 주민들에게 뭔가 감동을 줘야 하지 않겠는가.

 

재래시장을 살리겠다든지, 산업단지를 유치하겠다든지. 그렇지 않으면 목청껏 나무랄 삿대질거리라도 필요하다. 어지간한 인연이 아니라면 어차피 같은 자리서 피감 기관장을 다시 만나기는 쉽지 않다. 적절한 제스쳐가 어우러질 때 같은 말도 호소력이 얻는다고 했다.

 

그래서일까, 일부 의원께서는 상대 대선캠프를 자극할 '뜨거운 감자'를 준비하시겠다며 심기일전 하고 계시단다. 피맛을 본 상어떼처럼 물고 늘어지다 보면, 어느새 파란 가을 하늘도 붉은 빛으로 물든 진짜 가을이 오리라. 그때 조직은 그의 순수한 충정을 못본 체하지 않으리라.

 

앗, 두 달 남았다는 사실을 잊지 말자. 올해 예결산 인심만큼은 서운하지 않게 두둑히 챙겨 주자. 정권이 바뀌면 누가 가계부를 이어받게 될지 모른다. 괜히 예산을 깎았다 동료의원에 원망을 들을 수 있다. 누가 아는가, 자신이 과천청사의 안주인이 될 수도 있다.

     

같은 시간 의원회관 소회의실. 30분 간격으로 두 가지 정책토론회가 열리면서 의원회관이 북적인다. 얼마전 당의 부름(?)을 받고 돌연 산자위에서 정무위로 적을 옮긴 김태년 의원이 연 고별토론회와 원자력여성모임이 주관하는 원자력심포지엄이다. 

 

이로써 산자위는 고지를 눈앞에 둔 9부 능선에서 성실한 소총수 한명을 더 잃었다. 한치 앞을 가늠하기 어려운 정치전에서 김 의원이 마지막으로 겨냥한 표적은 신재생에너지 확대다. 공공기관이 증ㆍ개축하는 3000㎡ 이상의 건물도 총 공사비의 5%를 신재생에너지 설비에 사용하도록 하는 법안이다.

 

어차피 그렇지 않은가. 그와 내가 아니어도 산자부는 움직이고, 에너지는 이동하며 또 한번의 가을은 지나갈 것이다.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이 태양광발전량을 한껏 늘릴 날이다. 

저작권자 © 이투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