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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비상시 물정책은 각자 도생정책?
한무영 교수 / 서울대학교지속가능 물관리연구센터 / 건설환경공학부
[485호] 2018년 02월 05일 (월) 08:01:09 한무영 myhan@snu.ac.kr
한무영 교수
서울대학교
지속가능 물관리연구센터
/ 건설환경공학부

[이투뉴스 칼럼 / 한무영] 몇년전 구미시에서 며칠간 단수가 된 적이 있었다. 그때의 사회적 혼란은 엄청났다. 식수는 병물로 공급하고, 세탁은 나중에 한다지만 가장 큰 문제는 화장실에서 발생한다. 하루라도 화장실용수가 끊어지면 삶의 질은커녕 기본적인 인간의 존엄조차 지킬수 없다. 만약 동시에 여러 곳에서 단수가 되고, 정전도 함께 발생하는 일이 벌어진다면 재앙수준의 혼란이 예상된다. 이때 사회적 약자나 빈곤층부터 치명적인 피해를 입는다.

지진과 같은 자연 재해, 또는 전쟁이나 사고로 인해 상수원이 오염되거나, 관로의 파손, 정전 등에 의해 넓은 지역에 장기간 단수가 될 경우를 상상해 보자. 이에 대비하여 우리 정부는 어떠한 해결책을 준비하고 있을까? 아마도 현재는 시민의 희생만을 강요하거나, 각자 살길을 찾으라는 각자도생의 정책만 준비 되어 있는 듯하다.

현재 비상시의 급수대책은 안전행정부 소관이다. 도시의 주요 거점에 지하수를 수원으로 한 민방위 급수시설의 기준을 정하고 있다. 한사람당 하루 25ℓ(식수 8ℓ, 생활용수 17ℓ)의 물을 공급할 수 있도록 시설이 만들어져 있다. 이 계획은 수량, 수질, 관리면에서 몇가지 문제점을 가지고 있다. 펌프 등 시설이야 그 기준대로 설치되어 있겠지만, 지하수위가 낮아진 도시에서는 계획대로 수량을 확보할 수 없다. 이 양은 한번에 12ℓ 넘게 사용하는 수세변기 두 번 누르기도 어렵다. 근처에 불이라도 난다면 소방용수가 없어서 발만동동 구를 뿐이다. 여러 사람이 생산하는 화장실 오수도 처리, 처분대책을 마련해야 전염병 발생을 막을 수 있다. 오염된 지하수를 마시려면 수처리를 해야 한다. 정전에 대비해 발전기를 두지만 비상시 연료 공급이 안되면 이 또한 무용지물이다. 비상시에 이런 시설로 일부 사람들은 혜택을 볼 수 있겠지만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안정적으로 기준에 맞는 물을 공급할 수 있다는 보장은 없다.

물관리 책임부서인 환경부와 국토부에도 비상시 물공급 대책이나 매뉴얼은 없다. 평소 일인당 하루 평균 물사용량 280ℓ씩 공급하던 시스템에서 물공급이 중단된다면 시민들이 체감하는 불편과 불만은 상대적으로 더 클 것이다. 

서울시를 비롯한 지방자치단체에도 비상시 물공급대책은 없거나 미흡하기는 마찬가지이다. 만약 현재 우리 동네에 물이 장기간 단수되었을 때, 물공급을 위한 작동되는 매뉴얼이 있는지 확인해 보자. 특히 우리나라는 북한의 전쟁위협과 기후변화에 대비하여 더욱 더 철저한 대비를 하여야 한다. 눈앞에 보이는 위험만이 아니라 충분히 예측가능한 위험에 대해서도 현명하게 투자하고 준비를 하는 것이 올바른 지도자의 자세일 것이다. 

대안은 있다. 서울 광진구의 한 주상 복합건물에는 3천톤짜리 다목적 빗물저장시설이 홍수방지용, 수자원확보용, 비상용으로 각 천톤씩 만들어져 있다. 비상용으로 항상 천톤의 깨끗한 물이 저장되어 있다. 이물은 4천명 주민이 하루 25ℓ씩 10일간 사용할 수 있는 양이다. 언제라도 비상시 물을 사용할 수 있으니 주민들은 안심한다. 근처에 불이라도 나면 소방차 100대분의 물을 빨리 공급하여 골든 타임을 줄일 수 있다. 비가 오면 더 많은 물이 자동으로 저장된다. 서울시에서는 이런 시설을 만들 때 경제적 인센티브를 줄 수 있도록 조례가 만들어져 있다. 이 시설에 관한한 정부도, 건설업체도, 시민들도 모두가 만족한다. 이 빗물관리 시설은 국내외의 교과서에 실릴 정도의 우수사례로 소개되고 있다.

이와 같은 다목적의 물관리 거점시설을 신축건물마다, 또는 공공건물마다 도시의 곳곳에 만들어두고 민방위 급수시설, 소방시설로 함께 사용한다면 별도의 비용들이지 않아도 우리 도시를 더욱 안전하게 만들 수 있다. 홍수, 소방 등 비상시에 사용하면 적절한 경제적 보상을 해주는 제도를 갖춘다면,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관리할수 있어서 관과 민이 함께 안전한 사회를 만들 수 있다.

현재 정부와 사회에서는 물관리 일원화 논의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이때 비상시까지도 고려한 종합적이고 다목적인 물관리 대책의 체계적 검토가 필요하다. 물관리를 책임진 부서는 과거처럼 홍수방지, 물이용, 비상시대책을 따로따로 관리해온 방식을 벗어나야 한다. 국토이용, 도시계획, 환경보전, 비상계획 등과 맞물려서, 시민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하면서 이것을 적극적으로 유도하도록, 세금혜택, 보험료 감면 등의 제도를 잘 만들어 안전한 사회를 만들도록 해야 한다.

우리 도시의 지도자는 장래 다가올 물의 위기에 선제적으로 대응하는 안목과 지혜를 가진 사람이 돼야 한다. 비상시에 무대책으로 시민들 각자의 희생을 요구하기 보다는, 평시에 경제적이고 다목적인 제도와 정책을 만들어 시민들이 동참하도록 해야 한다. 비상시에 시민들이 물에 대한 안전을 보장받으려면 그러한 대책을 준비한 지도자를 선택해야 한다. 이것이 시민들이 물의 위기에 대비하여 각자도생하는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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