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력믹스변화 영향 도매시장서 자체흡수 골몰
전문가 "가격과 시장개념 없는 변화는 연목구어"

▲ 지난 10월 31일 국회에서 열린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산업통상자원부 종합 감사에서 백운규 장관이 의원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이투뉴스] 에너지정책 주무부처인 산업통상자원부가 이른바 ‘공짜 에너지전환’ 실언으로 자가당착에 빠져있다. 신고리 5,6호기 공론화와 새 정부 장관후보 인사청문회 과정에 원자력 진영이 제기한 ‘전기료 폭등’ 프레임을 '무비용 에너지전환'으로 맞대응한 것이 패착이다. 전문가들은 임기응변식 대응을 반복하기보다 선제적인 법·제도 개선과 전면적인 시장시스템 재설계를 통해 비용부담에 대한 과도한 우려를 불식시키고 에너지전환에 대한 공감대를 넓혀가야 한다고 조언하고 있다.  

3일 산업부와 에너지산업계에 따르면, 정부는 이달 중순 국회보고와 이달말 공청회를 거쳐 8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을 확정한 뒤 현재 마무리 수정·보완작업이 한창인 RE3020(2030년 재생에너지 발전량 비중 20% 달성 이행전략)계획을 발표할 예정이다. 이 과정에 정부는 8차 전력수급 설비믹스를 어떻게 발전량믹스로 구현할지, 또 이 계획이 중·장기적으로 발전원가나 요금에 어느 정도 영향을 끼치게 될지 등을 분석해 이를 공개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현재까지 정리된 주요 쟁점은 ▶설계수명 만료 원전 계획대로 폐지(10년 수명연장 금지) ▶신규석탄화력 추가진입 원천 봉쇄(5~6차 신규설비는 당진에코만 LNG연료전환) ▶제주도 긴급 LNG설비 추가반영 ▶재생에너지 출력변동성 대응자원 선제적 확충(양수발전) ▶폐지예정 노후화력 대체 LNG설비 반영 등이다. 2030년 기준 적정 설비예비율은 22%, 연간 최대피크 증가율은 1.3%, 예비율을 감안한 적정 설비용량은 122.6GW로 추정된다.

문제는 이런 전력계획이 기존 시장이나 원가구조에 어떤 파급영향을 줄지 고려하지 않은 채 '전기료만 오르지 않으면 된다'고 접근하고 있는 산업부다. 관가 소식에 정통한 복수의 업계 관계자들에 의하면, 정부는 6~7차 계획설비가 전력시장에 추가 유입될 경우 첨두전원 발전량 급감현상이 나타날 것으로 보고 이들 전원의 이용률 제고에 고심하고 있다. 하지만 필연적인 원가인상 부담을 기존 도매시장이 자체 흡수해야 한다는 전제로 해법으로 모색하다보니 묘수찾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전력믹스를 바꾸면 당연히 발전원가 등락요인이 발생할 수밖에 없는데 “에너지전환은 전기료 인상을 유발하지 않는다”고 호언한 탓에 이를 번복해야 할 결과가 애초 도출되지 않도록 온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는 것. 이전 수급계획 관성에 따라 향후 원전과 석탄화력이 대규모로 추가 건설되면 단기적으론 경제급전 원칙에 따라 도매가격이 하락하지만 장기적으론 가스발전 등 저탄소전원의 퇴출이 가속화 돼 전력믹스 균형이 무너질 수 있다.

이에 대해 정부는 첨두전원 변동비 일부 정상화로 이들전원의 경제성을 소폭 개선하고 내년 상반기로 예정된 발전연료 세제조정과 배출권 가격 원가반영 등으로 기존 급전순위에 변화를 유도한다는 구상이다. 하지만 이렇게 되더라도 원간 발전단가차가 워낙 커 해외처럼 실효적인 원별경쟁은 불가능하며, 급전순위 앞단을 새로 꿰차는 신규 기저전원 등쌀에 멀쩡한 첨두전원들이 대량 후단으로 밀려나 개점휴업 상태를 맞게 될 것이란 게 발전업계 분석 결과다.

원별 발전량 목표를 정한 뒤 이를 이행할 법·제도적 근거를 만들고, 이후 기존 시장운영시스템을 대대적으로 정비하지 않으면 에너지전환은 물론 수급안정조차 보장할 수 없다는 뜻이다.

익명을 원한 민간 전력시장 전문가는 "현 시점에서 가장 중요하고 시급한 일은 계약시장을 만들고 기존 현물시장의 정산체계를 바로 잡는 것이다. 원칙을 갖고 수급계획과 전력시장이 연계되는 계약시장을 도입하는 것이 사실상 유일한 해법"이라며 "본질적으로 법·제도를 바꾸지 않고 과거처럼 꼼수만 쓰려할수록 시장은 더 왜곡되고 장기적으로 소비자 부담은 가중될 것"이라고 직격했다.

이 관계자는 "장기간 전력산업이 관치로 유지되면서 사실상 시장이 소멸직전까지 왔고 자문을 구할 전문가풀도 제한적인 상황"이라며 "그럴수록 시장의 원칙과 원론을 존중하면서 모두가 그 지점으로 회귀해 길을 찾아야 한다. 낙후된 우리 전력시스템을 글로벌 스탠다드 수준으로 개선하려면 정부와 전력당국, 외부 전문가들이 머리를 맞대고 지금부터 열린토론으로 중지를 모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손양훈 인천대 경제학과 교수는 “정부가 전력믹스에 대해 굉장한 변화를 주려고 하는데, 모순적으로 가격은 낮게 유지할 수 있다고 공언해 혼란스러운 것이 사실”이라면서 “예측처럼 수요가 둔화되지 않는다면 장기적으로 요금인상은 불가피하며 만약 국제유가 급등 등의 큰 외부변화가 온다면 당장 5년 이내 에너지수급 안보도 무척 어려워 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손 교수는 “정부는 에너지전환을 얘기하지만, 불합리한 기존제도를 수정하겠다는 의지를 갖고 있는 것도 아니다. 과거 임시변통식 구조를 반복하지 않을까 우려된다”면서 “근본적으로 에너지시스템에 가격기능과 시장개념을 도입하지 않고 변화를 꿈꾼다는 것은 무모한 일이다. 독점사업자에게 앞으로도 장기간 정부지원금을 주고 연명시키겠다는 것인데, 산업생태계가 최악의 상태가 되지 않도록 선제적인 조치가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정부출연연구기관 한 관계자는 "(정부가)원전과 석탄을 줄여도 무작정 전기료가 오를일 없다고 하는 것은 지금으로선 궤변이다. 에너지전환 정책으로 원전 위험과 미세먼지를 줄이려면 우리도 그에 상응한 비용을 지불해야 하며, 장기적으론 지금보다 더 비용이 줄어든다고 국민을 설득하는 게 정도"라면서 "그렇게 해야 만약요금이 올라도 (국민이)납득하고 정책을 계속 지지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상복 기자 lsb@e2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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