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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력믹스는 ‘3020’ 전력시장은 ‘갈라파고스’
기저발전 줄고 재생에너지 대량 유입 시 기존시장 작동 불능
전문가들 "실시간 및 AS시장으로 선제적 재편 시급" 지적
  [467호] 2017년 08월 28일 (월) 06:21:27 이상복 기자 lsb@e2news.com
▲ 전근대적 현행 전력시장 제도로는 에너지전환 시대의 전력믹스를 감당할 수 없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사진은 인도 수즐론 풍력발전단지. ⓒ수즐론

[이투뉴스] 문재인 정부는 원전과 석탄화력을 점진적으로 줄여가면서 2030년까지 태양광이나 풍력 등 재생에너지 발전량 비중을 20%로 높이는 에너지전환에 팔을 걷어 붙였다. 이 기조와 속도라면 지난 수십년간 화석연료 위주로 채워진 한국의 전력믹스는 장기적으로 외형적인 면에서 큰 변화를 맞게 될 전망이다. 하지만 세계적으로도 유례를 찾기 어려울 만큼 전근대적인 전력시장 및 제도로는 이런 변화를 뒷감당할 수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갈라파고스처럼 변화에서 격리된 전력시장을 재설계하고 미리 정비해야 궁극적인 에너지전환도 가능하다는 것이다.   

27일 전력시장 전문가들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발전부문에 한해 부분적인 경쟁이 존재하는 듯 보이지만 실상은 발전-송배전(유통)-판매에 이르기까지 전 부문에 시장경쟁 원리 대신 정부규제와 독점이 작용하는 후진적 형태를 유지하고 있다. 경제학자나 발전사업자들이 “한국 전력시장을 시장이라 부르기도 민망하다”고 자조하는 이유다. 단적으로 국내시장에서 상품인 전기는 수요와 공급에 의해 가격이 결정되지 않고 정부 판단에 따라 후행 조정된다. 시장이라면 수요가 증가하면 가격이 오르고 반대면 가격이 떨어져야 하는데, 우리는 수급상황이 가격에 직접 영향을 주지 않으며 그렇다보니 가격이 소비자 의사결정의 변인이 못되고 있다.

독재국가를 제외한 모든 나라서 작동하는 시장 원리가 어째서 한국시장에서만 맥을 추지 못하는 걸까. 전문가들은 2000년대 초 구조개편 중단 이후 한시적으로 사용할 요량으로 도입해 장기간 유지해 온 변동비반영(CBP)시장과 수직통합적 독점구조를 원인으로 지목한다. CBP는 전력거래소가 급전 하루 전 예측한 수요에 대해 공급계획을 세우면, 각 발전기들이 자기 연료가격으로 입찰에 참여해 당일 원가가 저렴한 순서대로 수요만큼의 전력을 공급한 뒤 실제 거래량과 전일 계획량의 차이를 제약발전정산금(CON)이나 제약비발전정산금(COFF) 등으로 정산받는 제도다.

이때 한전소유 6개 발전자회사와 민간석탄은 미리 정한 정산조정계수 값으로 모기업 또는 판매사와의 적정이윤을 분배하고, 나머지 민간발전은 당일 시장가격(SMP)과 입찰에 응한 설비용량만큼의 보상비(CP, 신재생은 REC)로 수익을 챙긴다. 언뜻 시장요소가 가미된 듯 보이지만 실은 수급여건과 무관한 가격 책정, 수요에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가격, 한전 그룹사간 비(非)시장적 정산거래 등이 허용되는 비효율적 시스템이란 지적을 받고 있다.

이런 전근대적 시장 시스템이 무엇이 문제인지, 어떤 방향으로 개선해야 할지에 대해선 지난 십수년간 소모적 논쟁이 반복돼 왔다. 하지만 정부는 정치적 부담을 이유로, 기존 공기업 영역 참여자(한전 및 자회사)들은 시장경쟁이 공공성을 훼손할 것이라며 각각 수면위 논의를 꺼려왔다. 때로 소비자나 시민사회 진영 역시 "가격이 저렴하게 유지되면 그만이지 무엇이 문제냐", "그래도 민간기업보다 공기업 체제가 전력 공공성 측면에서 낫다" 등의 반응으로 본질을 비켜갔다.   

문제는 정부의 의욕적인 에너지전환에 따라 많게는 수십GW의 막대한 재생에너지 자원이 기존시장에 새로 진입하게 될 앞으로다. 먼저 햇빛이나 바람의 힘을 이용한 태양광과 풍력은 미래 발전량을 정확히 예측하는데 한계가 있다. 하루전 입찰시장에 들어와 급전 당일 약정한 공급량을 오차 없이 채운다는 보장이 없다. 만약 기상변화로 실제 발전량이 입찰량을 크게 하회하면 안정적 전력수급에 차질이 생길 수 있다. 지금처럼 수요-공급-가격이 제각각인 시스템에서 신재생 공백을 채우기 위해 긴급 투입되는 발전자원들에 상응한 보상이 돌아가지 않으면 대체 공급력 유인도 어려워진다.

현행 전력시장의 비효율 논란을 떠나 전력계통에 물린 400여기의 중앙급전 대형발전기에 적당한 수준의 가격을 지급해 가며 그날그날 수요를 충당해 온 지금까지의 방식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게 될 것이란 얘기다. 이는 에너지전환 가속화로 핵반응 열(熱)이나 석탄연소 열로 전력을 생산하는 기존 발전기들의 자리를 수시로 출력이 달라지는 수십만~수백만개의 태양광·풍력 발전기들이 대체하면서 본격화 될 가능성이 높다. 현행 하루전 시장을 분(分)단위 실시간시장과 AS(계통보조서비스)시장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하지만 정부와 산업계 관심이 발전원간 경쟁과 전력믹스 재편에만 쏠려 있어 서둘러도 수년이 소요될 시장 재설계 작업의 중요성과 시의성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게 관계자들의 하소연이다. 현장 전문가들은 시의적절한 정책지원과 관심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A 관계자는 "전력믹스를 바꾸는 용량시장적 접근은 어찌보면 어렵지 않다. 하지만 실제 원별 발전량을 바꾸는 에너지시장적 접근은 관련 제도나 시스템 일체의 변화를 요구한다"면서 "미리 준비하지 않고 한 걸음에 갈 수 없다. 정부와 국회부터 관심을 갖고 선제적 대응이 이뤄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다른 시장 전문가는 "지금의 시장체제와 왜곡된 가격은 장기적으로 소비자가 부담해야 할 비용을 더 유발하고 시장의 불투명성만 가중시킬 것"이라면서 "이번 정부의 에너지전환을 도태한 시장의 마지막 재편기회로 삼아야 한다"고 역설했다.        

이상복 기자 lsb@e2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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